세계적으로 제일 이른 시기..'보존유적' 등록
- 이승현 기자
- 입력 2021.07.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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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학술연구집단은 지금까지 발굴이 진행된 평양시 대성구역 림흥동 일대 고구려 유물 유적에 대한 종합적 연구 결과 고구려가 1세기초부터 이 지역을 중요한 지역 거점으로 삼았으며,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발전된 문화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고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1일 최근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학술연구집단이 림흥동 일대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 유적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1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고구려 역사를 해명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학술연구집단은 지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9년동안 이 일대에서 고구려 당시 건물터의 일부, 2개의 고구려 우물(1, 2호), 벽돌로 축조한 1개의 지하구조물과 많은 기와조각, 질그릇 조각 등을 발굴했다.
이 유물 유적들은 림흥동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발굴 당시에는 내부시설만 기본적으로 남아있고 우물벽 윗 부분 일부는 파괴되어 있었다.
1호 우물은 밑바닥을 잔 자갈과 모래, 진흙으로 다진 다음 한 변의 길이가 98cm, 높이 56cm인 정사각형의 나무방틀을 설치한 뒤 그 위에 4각추 모양으로 다듬은 돌들로 처음에는 8각형, 다음에는 원형의 평면을 이루도록 벽체를 쌓아 올렸다.
우물안에는 돌 바둑판 조각, 기와 조각, 질그릇 조각, 쇠가마 조각, 수레굴렁쇠 조각, 옻칠한 나무단지 조각, 나무조각 등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2호 우물은 밑바닥을 1호 우물과 같이 다진 다음 직경이 100cm 되는 정팔각형의 나무방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160cm 높이까지 강 자갈로, 나머지는 납작한 돌로 우물벽을 쌓아 올렸다.
이 곳에서도 많은 질그릇 조각들돠 진흙으로 만든 바둑판조각, 숫돌, 참빗 등이 나왔다.
림흥동 일대에서는 또 4개의 주춧자리돌이 있는 건물터와 땅을 파고 그안에 강돌을 채워넣은 2개의 배수시설, 동서길이 200cm, 남북너비 150~160cm, 높이 90cm 정도의 지하벽돌 구조물도 발굴되었으며, 그 주변에서 여러 종류의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연구집단은 1호 우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돌 바둑판 조각이 고구려의 바둑판으로서 세계에서 제일 이른 시기에 속하는 19줄자리 바둑판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 줄에 5개의 화점이 있는 고구려의 바둑판이 고려를 거쳐 조선왕조 말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도 밝혔다.
우물에서 지하수를 다시 여과했다는 것과 세척에 편리한 나무방틀의 기능도 해명하여 고구려 우물에서 수질을 높이는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알아냈다.
북한 고고학학회는 림흥동 일대 고구려 유물 유적들이 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으며, 비상설물질유산심의평가위원회에서는 이 유적들의 가치를 평가해 림흥동 고구려 우물 1호와 2호를 보존유적으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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