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희한한 병이 많다. 최근에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병도 있다는 걸 알았다.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비증세까지 나타나서 걷기가 힘들어지고, 이런 근육 무력증이 점점 상체로 올라가면서 피부 밑으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 얼굴 근육의 씰룩거림, 눈동자가 초점이 안 맞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척추 이상이나 뇌 이상 때문이 아니라 자가 면역체계의 교란으로 빚어지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길랑바레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매년 1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고 심하면 호흡곤란으로 죽기까지 하는 희귀병인데 아직도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르고 그러니 확실한 치료법도 없다고 한다.
그저 외부 세균이나 오염물질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마련된 면역체계가 어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오작동하면서 오히려 자기 몸의 말초신경을 공격하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인 것 정도로 알려져 있다.
내 몸을 방어해야 할 면역체계가 오히려 내 몸을 공격한다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그러나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우리 몸에서 육체적으로만 일어나는 일인가.
도덕성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약간씩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적절한 도덕성을 장착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도덕성이 그런 나쁜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방지한다. 이런 정신적 도덕성 면역체계가 우리로 하여금 파렴치한, 혹은 범죄인이 되는 것을 방지해 준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 도덕성이란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도둑놈 사기꾼 성추행범에서부터 살인마까지 날뛰는 아비규환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종종 너무 높은 도덕성을 장착한 사람들이 마치 ‘길랑바레 증후군’처럼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기가 소속된 집단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나 걱정된다.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그렇게 높은 도덕 기준을 두고 살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어쩌면 아주 자주) 그렇게 높지 않은 도덕 기준마저 어기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회 평균적인 도덕적 인간임을 자부하며 살고 있다.
이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몸이 철벽같아서 아예 병균의 침탈을 받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저 힘겹게 이겨 낼 뿐이다.
우리 도덕성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유혹을 받으며 때로는 무너지더라도 대부분 건강하게 이겨내곤 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도덕적 면역체계가 그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심지어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는 ‘길랑바레 증후군’마저 그다지 치사율이 높지 않고 대체로 시간이 갈수록 증상의 자연 경감 후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 그다지 높은 도덕 기준을 두고 사는 것 같지 않은 인간들이 남의 도덕성을 헐뜯으며 날뛰는 것이다. 그것은 ‘길랑바레 증후군’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병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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