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카드빚·부부싸움에서 벗어난 지금... 집 없다고 기죽어 있을 당신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20.07.19 10:52최종 업데이트 20.07.19 10:52양정숙(hayun9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퇴근길에 찍은 우리 동네 이 많은 집 중에 내집이 없다는 것이 새삼 서러웠다 | |
ⓒ 양정숙 |
나는 무주택자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가장 조롱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무주택자였을 것이다. 무주택은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8년 전 그 결정에 대해 정말 내 손목을 부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후회가 분노, 좌절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몰려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나의 무주택 기간 8년이 떠올랐다.
내가 무주택자로 전락(?)한 것은 2012년이다. 그리고 2020년이 된 지금까지 약 8년간을 전세로 살아왔다. 나는 생애 첫 집을 5년간 살다가 팔았다. 입주하던 날 가슴이 벅차 잠을 못 이뤘던 그 집을 결국 팔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슴 벅차게 집을 사고 알게 된 것들
첫째, 빚이 너무 많았다. 24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약 1억2000만 원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나와 남편은 IMF 직후인 1998년 결혼했는데, 그때 얻었던 신혼집이 전세 3000만 원이었다. 출발 금액이 적었으므로 2억 원가량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도저히 빚을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5%가량이었다.
매달 이자로만 50만 원을 내면서 5년을 버텼다. 5년이 지나자, 원금상환부담이 덮쳐왔다. 매달 80만~90만 원을 상환해야만 해야 했다. 그것도 약 30년 동안이나. 60살이 넘도록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게다가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를 하지 못했던 때라 원금을 미리 상환할 여력도 없었다. 둘째, 신용카드로 생활비 돌려막기를 했다. 빚만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달 대출금 상환하는 것만 신경 쓰고 나머지 가정 경제는 엉망이었다.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긁는다→명세표가 날아온다→월급으로 카드값을 꾸역꾸역 갚는다→다시 신용카드를 쓴다' 이 패턴이 매달 반복되고 있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회사에서 퍼가니까 늘 집에 현금이 말랐다. 그래서 또 카드를 긁다 보면 내가 매달 얼마를 쓰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카드 명세표를 열어보는 것이 성적표 받는 것처럼 두려워졌다. 그래도 집이 있다는 안도감과 집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서 이 패턴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셋째,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당시 내가 살던 신도시는 특정 대기업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대기업 사원을 남편으로 둔 그들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씀씀이를 가지고 있었다.
사교육비로 아이 하나당 백 단위를 쓰는 것은 보통이었고, 중형 이상급의 자동차를 전업 주부 엄마들도 타고 다녔다. 연말에 상여금이라도 받고 나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명품가방을 하나씩 장만해서 모임에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부내와 경제적 안정감은 나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들볶는 일이 많아졌고, 없는 살림을 쥐어짜서 아이를 사교육에 몰아넣었다.
나의 열등감을 가족을 통해 해소해 보려는 짓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내가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집을 팔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결국 집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집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시가 어른들의 걱정은 그냥 무시했다. 대출금 일부를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그분들의 노후 자금을 내 집 밑에 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집값이 더 뛰면 어쩔래"라고 길길이 반대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집을 내놓은 지 약 10개월 후, 집이 드디어 팔렸다!
그동안 집값이 올라서 얼마 정도 시세 차익을 남겼지만, 대출금을 상환하고 세금, 복비를 제하고 나니까 변두리 지역에 전세를 얻을 돈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전세자금 대출을 약 3000만 원가량 더 받았다.
집을 팔지 않았더라면 못했을 것들
집을 전세로 옮기면서 가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마이너스 통장도 없앴으며, 신용카드를 가위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오로지 현금만을 가지고 생활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제윤경씨의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를 읽었는데, 가정 경제를 구조적, 가시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신용카드를 썼을 때는 보이지 않던 수입과 지출의 현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항목별로 나누어 통장을 만들어 관리하고 정해진 금액 내에서만 돈을 썼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면 저축부터 했다(전세자금 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싸고 그나마 소액이라 금방 갚았던 것 같다).
현금이 돌기 시작하자, 저축과 노후 준비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민 연금에 임의가입자(당시 나는 전업주부였다) 자격으로 가입하고 개인연금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약관내용과 보장액도 모르고 난잡하게 넣어놓았던 보험 중 과도한 보험은 해지하고 손품을 팔아 직접 보험을 설계하여 필수적인 보험만 남겨놓았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도 줄였다. 그러기 위해서 전에 살던 아파트 엄마들은 의도적으로 '손절'했다. 그리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파트타임 강사일을 시작했다. 자동차는 '굴러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지 않았고, 온 가족 휴대폰도 현금을 주고 사고 알뜰 통신사에 가입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할부금이나 빚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을 살다 보니, 이제 남편과 나의 월급이 입금되면 자동으로 돈이 각 항목에 맞게 착착 이체되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12월이 되면 다음 해의 변화된 소비 항목에 맞춰 각 통장에 이체될 금액을 조금씩 수정해 두기만 하면 되었다. 저축액도 상당히 늘어갔으며, 검소한 소비 패턴은 생활화되었다.
남의 집 자식들과 비교할 일이 없어지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게 되었고, 다행히 아이들도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나름대로 알아서 공부를 했다. 남편과의 다툼도 줄어들고 우리의 노후 준비를 위한 대화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가정 경제도 안정되고 여유자금도 확보되어서 슬슬 외곽의 집이라도 사볼까 했는데, 이번에 부동산 문제가 터진 것이다.
▲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 |
ⓒ 연합뉴스 |
다시 전세를 선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의 매매가가 1억 원 이상 오른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게 최근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겨우 두 달 말이다. 남들은 오른 집값에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데, 나 혼자만 복장이 터져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집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내가 그동안 헛짓을 했구나... 부동산은 경제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사회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 불안, 욕망 등의 심리가 함께 맞물려서 돌아가는 게 부동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경제책 몇 권 읽고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울분과 좌절이 잦아들면서, 조금씩 이성을 찾게 되었다.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세를 살 뿐이고, 남들은 1억 이상을 벌었지만, 아직 그 집에서 살고 있으므로 1억을 실제로 손에 쥔 집은 사실 몇 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제 집을 사야겠다'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마침 집을 사려고 했고, 모아둔 돈도 준비되었는데 턱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나의 상실감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했다. 집을 안 사면 된다.
8년 동안,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했고, 작은 아이는 고1이므로 2년 후에는 그도 독립을 할 것이다. 학군이나 통학거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셋집 선택이 매우 자유로워진다. 게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책상, 옷가지 등의 짐들이 사라지므로 더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가도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사를 다녔는데, 그 짬밥으로 두 명 사는 집을 이사하는 건 껌이다. 그리고 집을 사지 않아서 남는 여유자금은 노후 준비자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전세 살아?"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나는 집을 살 기회를 놓쳤지만, 그동안 저축으로 모은 꽤 많은 종잣돈을 집을 사는데 '꼬라박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낼모레 오십인데 아직 전세 살아?"라는 남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집을 사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남들에게 내가 몇 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지 알게 하고 싶은 욕망만 잠재우면 된다.
남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떠벌릴 때 자존심을 버리고 '부럽네'라며 가볍게 말해줄 수 있는 멘탈만 갖추면 된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이 8년간 단련했던 검소한 생활은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그 산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기회다. 그러나 탄탄하고 검소한 가정 경제를 만들어 놓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둘을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직 집이 없다고 기죽지 말자.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만약 집이 없다면 어떨까?
집이 없다고 죽지는 않는다.
대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된다.
내 노동과 자유를 남들의 시선과 바꾸면 된다.
- <내일의 부>, 조던 김장섭, 트러스트북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