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선 이 영화부터 한편 보시죠. 11분짜리 <억압받는 다수> (클릭하시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영화인데 중학교 도덕교사인 배이상헌 교사가 자신의 양성평등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 등으로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수업배제 및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억압받는 다수>라는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1300만명 이상이 보았다는 프랑스 단편영화다.
배이상헌 교사가 가르치는 도덕교과서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 상황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 요소를 찾아서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는 <억압받는 다수>를 ‘양성평등’을 설명하는 영상자료로 활용했다는 이유로 광주교육청이 경찰에 고발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직을 못한 상태다.
|
|
▲<사진 : ‘억압받는 다수’ 영화의 한 장면>
|
<억압받는 다수>는 ‘여성이 남성을 두고 희롱하는 사회’,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지, 성희롱을 당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남성의 모습’을 그린 성이 뒤바뀐 사회를 풍자한 영화다. 여성이 주가 되고 남성은 매일 성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은 주인공을 보며 지나가는 여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희롱한다. 주인공은 아이를 맡기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한 무리를 만나 성적인 모욕과 폭행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이 신고를 위해 경찰서에 갔는데 그곳은 온통 여자들뿐, 남성은 커피 심부름을 하는 존재이다. 경찰서로 찾아온 부인은 주인공을 달래는 듯하다가 자신의 승진을 이야기하고, 차를 타러 가던 중 둘은 말다툼을 하게 된다. 혼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며 걸어가는 부인의 모습을 멀리서 비추고, 이어 누가 뒤따라오는 듯한 느낌에 두려워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여성(부인)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출처 : 루나글로벌스타)
배이상헌선생님의 <억압받는 다수> 사건(?)을 보면 2001년 김인규교사 (비인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의 홈피에 임신한 부부의 누드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던 사건이 기억난다. 결국 그는 개인의 창작적 권리를 보수적인 교육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환원시킨 판단으로 해직, 3개월 정직처분 후 복직됐지만, 그의 이름 뒤에는 아직도 ‘누드 사진교사’라는 닉네임이 따라 다닌다. 교사의 수업시간에 활용한 자료를 문제 삼는 대한민국의 교육부. 교사의 성교육을 믿지 못해 ‘성교육 표준안’까지 제시해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성교육 현실이다.
‘야동’이나 ‘야설’ 그리고 ‘자위’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가면 안 된다.’, ‘여성은 예뻐야 하고, 남성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여성들은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남성들은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남성의 성욕은 여성에 비해 매우 강하다’,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다르다’... 교육부가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이다. 이 표준안에는 배꼽티, 짧은 치마, 딱 붙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은 모습을 여성의 바른 옷차림으로 제시하는가 하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성교육 표준안’이라며 제시해 놓고 있다.
지난 해 12월 15일 한겨레신문의 [세상읽기] “배이상헌, 직위해제당한 한국 성교육”의 주제의 중앙대학교 김누리교수 칼럼을 보면 성평등을 주제로 한 ‘세계적인 수작’을 수업 교재로 삼으면, 한국의 교사는 ‘성비위범’으로 몰렸다며 한국의 성교육을 개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중모럴 사회’”라고 진단한다. “공적으로는 너무도 엄숙한 성윤리가 지배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상적으로 성이 거래되고 착취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사는 사회’가 오늘날 한국사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수많은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접대 사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의 진단처럼 오늘날 n번방사건을 비롯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성추행, 성폭력은 성교육의 부재가 만든 결과가 아닐까?
김누리교수는 “독일 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주의자, 즉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강한 자아는 어떻게 길러내는가? 김교수는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고 한 말을 소개하면서 ‘약한 자아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우리의 자아가 너무도 약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강한 자아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조건이며 올바른 성교육은 강한 자아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독일의 성교육. 성적 억압을 통해 죄의식을 내면화시키는 우리나라 성교육. 위선적인 엄숙주의로는 어떻게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