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공정위 출석하는 김규봉 감독 고 최숙현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된 김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 권우성
한 젊은 선수가 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알리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가 수년간 모은 녹취록에는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괴롭힘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지난 6월 26일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등장했다. 경주시청은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을 곧바로 직무정지 시켰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2일 "선수 출신인 최윤희 문체부 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으며 여야 의원들도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향후 전망을 다소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체육계에서 폭행, 성폭력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강력한 재발 방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바뀐 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6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심석희 선수 등) 체육계 폭력 문제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당시에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개혁을 지시하지 않았나. 그런데 오늘도 같은 환경에 노출된 선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고, 혁신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해왔다. 그게 하나도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숙현 선수는 여러 번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난 2월 경주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수사 당국에 가해자들을 고소했으며 4월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6월엔 대한철인3종협회와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을 접수했다. 그러나 해당 기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해자를 방관했다. 정용철 교수는 "범죄자 몇 명 잡아서 처벌하는 수준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체육계의 고질적이 문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 체육시민연대, 인권과 스포츠 등 스포츠ㆍ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폭행 당사자인) 팀 닥터나 감독, 선배 선수들을 처벌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아주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수준의 처방이 있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3개월 지나면 흐지부지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특히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에 대해 더이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며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조재범 사건 때도 이기흥 회장은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책임자를 처벌하는) 선례가 안 생기니까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고개만 숙이면 지나갈 일이라고 체육계 전반이 인식하고 있다. (최 선수) 발인 다음 날 골프나 치고, 그걸 관계자는 또 자랑스럽게 페북에 올리고. 그 정도의 수준으로 사안을 보는 것이다. 전혀 고치거나 개선할 의지나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한편 이날(6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요청에 답하기 위해 모인 단체'라는 이름으로 모인 40여 개 스포츠·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독립성, 전문성, 신뢰성, 책임성이 보장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라고 요구했다.
해당 기자회견에도 참석한 정 교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없어, 구호만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대해서도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질타했다.
"책임 지고 누구 하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없다. 그냥 남의 얘기하듯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 한다. 대한체육회장이나 문체부 장관이나 모두 책임지고 조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 자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 양 언론이나 국회에 발언을 하고 있다. 긴급 현안질의에서도 결국은 (대한체육회 회장과 박양우 장관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하지 않았냐. 그게 면죄부를 준 거다. 사과한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 되면 상임위도 하나마나다.
시민단체를 꾸리고 개혁해나가겠지만 승산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 여야 의원들은 정치적 이득에 따라 피해자를 이용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저는 비관적으로 본다. 과거 조재범 전 코치 사건 때보다도 훨씬 공격 지점이 무디다. 하나마나한,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더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 진술 들은 피해자들, 바로 손 떨면서 억울해 해"
정치권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최 선수의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왜 이렇게 부모님까지 나서서 가혹하게 자식을 검찰, 경찰 조사를 받게 했나", "(가해자들을) 징계할 다른 절차가 충분히 있고, 제명을 할 수도 있는 방법이 있는데"라며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또 최 선수 동료에게는 "지금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체육 선수 전체가 맞고 사는 줄 안다", "경주시청이 독특한 것 아니냐", "남자친구와의 문제는 없었냐"는 등 문제를 축소시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임 의원은 이에 "보수언론의 음해"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임오경 의원은 대한체육회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 분이 여당 의원으로, 문광위 민주당 의원으로 들어가 있는 게 문제다. 뭘 잘못하고 있는지, 왜 비난받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보수언론의 음해라는 해명은, 상황 판단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상임위 차원의 조사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한 정용철 교수는 이날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김규봉 감독에 대해서도 뻔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가해자로 꼽히는 팀 닥터도 감독의 지인이다. 팀 닥터가 (피해자를) 때리면서 '내가 미리 널 때려야 감독이 안 때릴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폭력을 했다더라. 감독이 오늘(6일) 국회에서 '안 때렸다'고 부인하던데, (그렇다고 해도) 묵인이나 방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감독의 진술을 듣는 피해자들이 바로 손을 떨면서 억울해하더라.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발뺌하고 사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정용철 교수는 2012년 논문 '한국에서 핸드볼 선수로 살아가기'를 통해 체육계의 성폭력과 폭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제자가 은퇴한 여자 핸드볼 선수 4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를 가지고 쓴 논문이었는데, 체육계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반향은 크지 않았고 그로부터 8년이 흘렀지만 상황도 변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과거보다 체육계 폭력 문제의 "빈도는 줄었을지라도 범죄는 오히려 지능적으로 변했다"고 평했다.
"(녹취록이나 피해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폭언, 폭행 이런 것들이 상시적으로 있었다더라. '나가 죽으라'는 말도 자주 했고, 또 실제로 선수가 죽은거다. 거기 있던 선수들은 언어 폭력이 그만큼 일상적이었던 거다. 게다가 선수들을 때릴 때 그냥 때리는 게 아니라, 이런 건 문제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니가 나 한대 쳐라, 니가 나 쳤으니까 나는 정당방위야' 하고 때린다고도 했다. 오히려 더 수법이 교활해진 것이다. 은폐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도 고발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가해자들은 이미 낌새를 알아채고 이걸 막으려 압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 최숙현 선수 유족, 문체위 방청석에서 지켜봐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나와,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아무개 선수, 김아무개 선수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특히 정용철 교수는 지난해 2월 발족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체육분야의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이번 사고에 더욱 참담한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해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 폭력-성폭력 사태로 불거진 체육계 폭력, 성폭행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출범했다. 1년여 간 전국에서 간담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7차례 권고안을 발표하는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힘써왔지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정용철 교수는 정부가 이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답을 알고 있다며 "스포츠혁신위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그 문제의 원인, 방법을 모두 규명해서 발표했다. 그런데 문체부의 실현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이 여러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혁신위에서 체육계에서 폭력과 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원인, 일이 벌어졌을 때 책임져야 할 사람과 그 방법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이를 통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윤리센터가 생겼다. 원래 취지는 인권센터였는데 이것 역시 미래통합당에서 반대하면서 윤리센터로 바뀌었다. 초안에서 조금씩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세세한 부분도 하나하나 진행이 안 되고 있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고 스포츠 기본법을 만들고. 스포츠혁신위에서 발표한 권고안에 모두 답이 쓰여 있다. 답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를 추진할 정책권자들이 의지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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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공정위 출석하는 김규봉 감독 고 최숙현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된 김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 권우성
한 젊은 선수가 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알리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가 수년간 모은 녹취록에는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괴롭힘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지난 6월 26일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등장했다. 경주시청은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을 곧바로 직무정지 시켰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2일 "선수 출신인 최윤희 문체부 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으며 여야 의원들도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향후 전망을 다소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체육계에서 폭행, 성폭력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강력한 재발 방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바뀐 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6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심석희 선수 등) 체육계 폭력 문제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당시에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개혁을 지시하지 않았나. 그런데 오늘도 같은 환경에 노출된 선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고, 혁신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해왔다. 그게 하나도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숙현 선수는 여러 번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난 2월 경주시에 민원을 제기하고 수사 당국에 가해자들을 고소했으며 4월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6월엔 대한철인3종협회와 국가인권위에도 진정을 접수했다. 그러나 해당 기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해자를 방관했다. 정용철 교수는 "범죄자 몇 명 잡아서 처벌하는 수준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체육계의 고질적이 문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 체육시민연대, 인권과 스포츠 등 스포츠ㆍ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화를 그대로 보여줬다. (폭행 당사자인) 팀 닥터나 감독, 선배 선수들을 처벌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아주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수준의 처방이 있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3개월 지나면 흐지부지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특히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에 대해 더이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며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조재범 사건 때도 이기흥 회장은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책임자를 처벌하는) 선례가 안 생기니까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고개만 숙이면 지나갈 일이라고 체육계 전반이 인식하고 있다. (최 선수) 발인 다음 날 골프나 치고, 그걸 관계자는 또 자랑스럽게 페북에 올리고. 그 정도의 수준으로 사안을 보는 것이다. 전혀 고치거나 개선할 의지나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한편 이날(6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요청에 답하기 위해 모인 단체'라는 이름으로 모인 40여 개 스포츠·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독립성, 전문성, 신뢰성, 책임성이 보장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라고 요구했다.
해당 기자회견에도 참석한 정 교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없어, 구호만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대해서도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질타했다.
"책임 지고 누구 하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없다. 그냥 남의 얘기하듯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 한다. 대한체육회장이나 문체부 장관이나 모두 책임지고 조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 자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 양 언론이나 국회에 발언을 하고 있다. 긴급 현안질의에서도 결국은 (대한체육회 회장과 박양우 장관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하지 않았냐. 그게 면죄부를 준 거다. 사과한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 되면 상임위도 하나마나다.
시민단체를 꾸리고 개혁해나가겠지만 승산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 여야 의원들은 정치적 이득에 따라 피해자를 이용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저는 비관적으로 본다. 과거 조재범 전 코치 사건 때보다도 훨씬 공격 지점이 무디다. 하나마나한,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더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 진술 들은 피해자들, 바로 손 떨면서 억울해 해"
정치권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최 선수의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왜 이렇게 부모님까지 나서서 가혹하게 자식을 검찰, 경찰 조사를 받게 했나", "(가해자들을) 징계할 다른 절차가 충분히 있고, 제명을 할 수도 있는 방법이 있는데"라며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또 최 선수 동료에게는 "지금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체육 선수 전체가 맞고 사는 줄 안다", "경주시청이 독특한 것 아니냐", "남자친구와의 문제는 없었냐"는 등 문제를 축소시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임 의원은 이에 "보수언론의 음해"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임오경 의원은 대한체육회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런 분이 여당 의원으로, 문광위 민주당 의원으로 들어가 있는 게 문제다. 뭘 잘못하고 있는지, 왜 비난받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보수언론의 음해라는 해명은, 상황 판단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상임위 차원의 조사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한 정용철 교수는 이날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김규봉 감독에 대해서도 뻔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가해자로 꼽히는 팀 닥터도 감독의 지인이다. 팀 닥터가 (피해자를) 때리면서 '내가 미리 널 때려야 감독이 안 때릴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폭력을 했다더라. 감독이 오늘(6일) 국회에서 '안 때렸다'고 부인하던데, (그렇다고 해도) 묵인이나 방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감독의 진술을 듣는 피해자들이 바로 손을 떨면서 억울해하더라.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발뺌하고 사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정용철 교수는 2012년 논문 '한국에서 핸드볼 선수로 살아가기'를 통해 체육계의 성폭력과 폭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제자가 은퇴한 여자 핸드볼 선수 4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를 가지고 쓴 논문이었는데, 체육계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반향은 크지 않았고 그로부터 8년이 흘렀지만 상황도 변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과거보다 체육계 폭력 문제의 "빈도는 줄었을지라도 범죄는 오히려 지능적으로 변했다"고 평했다.
"(녹취록이나 피해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폭언, 폭행 이런 것들이 상시적으로 있었다더라. '나가 죽으라'는 말도 자주 했고, 또 실제로 선수가 죽은거다. 거기 있던 선수들은 언어 폭력이 그만큼 일상적이었던 거다. 게다가 선수들을 때릴 때 그냥 때리는 게 아니라, 이런 건 문제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니가 나 한대 쳐라, 니가 나 쳤으니까 나는 정당방위야' 하고 때린다고도 했다. 오히려 더 수법이 교활해진 것이다. 은폐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도 고발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가해자들은 이미 낌새를 알아채고 이걸 막으려 압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 최숙현 선수 유족, 문체위 방청석에서 지켜봐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나와, 최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아무개 선수, 김아무개 선수의 답변을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특히 정용철 교수는 지난해 2월 발족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체육분야의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이번 사고에 더욱 참담한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해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 폭력-성폭력 사태로 불거진 체육계 폭력, 성폭행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출범했다. 1년여 간 전국에서 간담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7차례 권고안을 발표하는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힘써왔지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정용철 교수는 정부가 이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답을 알고 있다며 "스포츠혁신위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그 문제의 원인, 방법을 모두 규명해서 발표했다. 그런데 문체부의 실현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혁신위의 권고안이 여러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혁신위에서 체육계에서 폭력과 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원인, 일이 벌어졌을 때 책임져야 할 사람과 그 방법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이를 통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윤리센터가 생겼다. 원래 취지는 인권센터였는데 이것 역시 미래통합당에서 반대하면서 윤리센터로 바뀌었다. 초안에서 조금씩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세세한 부분도 하나하나 진행이 안 되고 있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고 스포츠 기본법을 만들고. 스포츠혁신위에서 발표한 권고안에 모두 답이 쓰여 있다. 답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를 추진할 정책권자들이 의지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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