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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9일 수요일

장기기증 원했던 대학생 돌연사…기증단체에 조의금 기부한 친구들

이보라·이창준 기자 purple@kyunghyang.com


입력 : 2020.07.30 06:00 수정 : 2020.07.30 09:04


성인 되자 바로 어머니와 함께 ‘장기·각막·조직기증’ 등록
조혈모세포 기증 약속 땐 “생명 살릴 수 있는 가치있는 일”

고인이 지난 1월 인도에서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 봉사단 활동을 하고 있다. 송연창씨 제공

고인이 지난 1월 인도에서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 봉사단 활동을 하고 있다. 송연창씨 제공

지난 5월24일 대학생 이모씨(22)가 서울 서대문구의 자취방에 쓰러져 있었다. 이씨와 연락이 닿지 않던 여자친구가 이씨를 발견했다. 돌연사였다. 이씨는 평소 지병이 없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학생군사교육단(ROTC)에 합격해 연말 훈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이씨의 죽음은 가족을 비롯해 친구들에게 갑작스럽게 닥쳤다.

코로나19 여파로 장례식은 가족 위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씨의 친구들은 조의금을 모아 전달하려 했다.

“부조 안 받으려고 합니다. 좋은 데 쓰길 바라요.” 이씨의 어머니인 이모씨(52)는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사양했다. 이씨의 친한 형이던 송연창씨(23)는 이씨가 평소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한 기억을 떠올렸다.

송씨는 “고인이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장기기증을 하지 못했지만 그의 뜻을 뒤늦게라도 잇고 싶었다”고 했다. 송씨와 이씨 친구 강수빈씨(21)는 지난 8일 친구들과 모은 조의금 70만원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기부했다.

고인의 친구인 송연창씨(왼쪽)와 강수빈씨가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조의금 7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송연창씨 제공

고인의 친구인 송연창씨(왼쪽)와 강수빈씨가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조의금 7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송연창씨 제공

이씨의 어머니는 29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이의 친구들이 말을 너무 예쁘게 해석했어요. ‘좋은 데 쓰라’고 한 것은 그냥 ‘부조는 안 받겠다’는 뜻이었어요. 우리 아이가 짧은 생을 살다가 갔지만 이런 좋은 친구들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면 괜찮은 삶을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씨는 2018년 5월 법적 성인이 되자 어머니와 함께 뇌사 시 장기기증·사후 각막기증·조직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이씨는 어머니와 우연히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기증을 결심했다. 이씨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죽으면 서로 미련 없이 동의해주자고 했어요. 가족 동의가 있어야 장기기증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죽고 나면 껍데기인 시신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기증을 결심했어요.”

이씨와 그의 어머니는 마주 앉아 장기기증 희망 등록 신청서를 썼다. 이씨의 어머니 운전면허증에는 장기기증 희망을 뜻하는 분홍색 스티커가 붙어 있다.

유족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이씨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을 돕는 사람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조혈모세포 기증도 약속했다.

이씨 어머니가 말했다. “저는 조혈모세포 기증까진 무서워서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건데 훨씬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이씨는 대학 시절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활동과 해외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했다. 지난 1월 인도 첸나이에서 집짓기 봉사도 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누군가를 도우면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씨는 말했다. “갑작스러운 죽음만 아니었다면 고인은 꼭 장기기증을 했을 거예요. 조의금이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쓰인다면 고인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그를 만난다면 술 한잔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300600025&code=100100#csidx0682d6e42ae75ab97d3f1ad0e08ac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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