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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4일 일요일

대통령이 말하니 민식이법만... 속타는 피해 부모들

19.11.24 17:14l최종 업데이트 19.11.25 07:23l


 해인-태호 가족 및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지난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앞에서 어린이생명안전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어린이 안전한 관련한 법안 심의를 촉구하고 있다.
▲  해인-태호 가족 및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지난 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앞에서 어린이생명안전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어린이 안전한 관련한 법안 심의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가 인간성을 상실했다. 사람들을 이렇게 실망시켜도 되는지 모르겠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이후 큰 주목을 끌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지난 21일 통과한 '민식이법', 그리고 아직 심사조차 받지 못한 어린이생명안전법안(해인이법, 한음이법, 태호유찬이법, 하준이법)을 두고서다.

분수령은 11월 28일이다. 이날 행안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오르려면 우선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부터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11월 28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개최 여부를 두고 여야간 온도 차가 보이고 있다. 행안위 여당 간사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8일 목요일에 법안심사소위를 열어서 다른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을 심사할 것"이라면서 "이는 여야간 합의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28일 개최라고) 합의한 적은 없다, 열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먼저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담긴 법안의 처리를 바라는 부모들 속만 쌔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인천 송도 사설축구클럽 어린이통학차량 추돌사고로 아들 태호를 잃은 김장회씨는 "황교안 대표가 단식하고 있지 않나, 여야간 정쟁으로 법안 처리가 안 될까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정기국회가 20대 국회 마지막이다.

아이들 지키자는 법, 왜 한꺼번에 심사받지 못했을까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고(故) 김민식 군의 부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 군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국회는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장비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을 발의했다.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고(故) 김민식 군의 부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 군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국회는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장비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을 발의했다.
ⓒ 연합뉴스

당초 국회에 올라간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5개였다. 해인이법(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 표창원 의원 발의), 한음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권칠승 의원 발의), 태호유찬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정미 의원 발의),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강훈식 의원 발의, 이상 행안위),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 민홍철·이용호 의원 발의, 이상 국토위)이 바로 그것(법안 세부 설명은 기사 하단 참고).

이들 법안은 여야간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으로 분류된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행안위 소속의 한 의원은 "민식이법에 반대할 국회의원이 있겠냐"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동안 처리는 더뎠다. 어린이생명법안 중에는 3년 전에 발의된 법안이 있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중요한 법안이지만 이슈가 되지 못하면서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린 탓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정치하는엄마들이 힘을 합쳐 법안 이슈화에 전력을 다했다. 부모들은 청와대 청원, 국회 앞 기자회견,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법안 통과 동의서 작성 요구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면서 '법안 심폐소생술'을 해왔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첫 질문으로 언급된 민식이법만이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상태.

홍익표 민주당 의원(행안위 간사)은 "21일 민식이법 외에 다른 법안들도 심사를 받으면 좋았겠지만, 당시 법안 심사자료가 미비했다"라며 "이제 다른 법안들의 심사자료도 준비됐으니 2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행안위 처리 속에 '행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와 국회의원들이 국민과의 대화 이후 여론을 살핀 듯하다"라며 "그에 따라 상임위에서 민식이법 심사자료부터 준비한 것 같다"라고 짚었다. 이어 "행안위가 할 수 있는 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21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오늘 민식이법만이라도 통과시키자'고 말했다"라며 "국민과의 대화 이후 뭔가 바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듯한데, 그 사이 법안 처리를 기다리는 다른 부모님들은 속이 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회의원들 먹고사니즘에 빠져 어린이 생명안전 놓치면 안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왼쪽)과 야당 간사인 이채익 한국당 의원(오른쪽).
▲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왼쪽)과 야당 간사인 이채익 한국당 의원(오른쪽).
ⓒ 윤성효·남소연

민식이법을 제외한 다른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의 행안위 심사가 예상되는 날짜는 11월 28일. 그렇다면 이날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는 열릴 수 있을까.

여야간 온도차가 존재한다. 홍익표 의원은 "여야가 합의해 28일에 열린다"라는 입장이지만, 이채익 의원은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의원은 "민식이법을 제외한 다른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면서도 "지금 여야가 대치 정국에 있는데 돌파구가 마련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그가 말한 '대치 정국'이란 패스트트랙에 올라 탄 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선거법 개정안)을 뜻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청와대-국회를 오가며 단식을 진행 중이다.

장하나 활동가는 "다른 부모님들은 혹시라도 국회가 정쟁에 휩싸여 올스톱될까봐 걱정하고 있다"라며 "국회가 멈춰버리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민식이법도 본회의에서 처리가 안 될 수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면 해당 상임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본회의에 오를 수 있기 때문.

그는 "자식 잃은 부모들이 국회까지 찾아와 의원들에게 '법안 처리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라며 "이런 부모들을 앞에 두고 정쟁이나 파행을 한다면... 정치가 인간성을 상실한 거다, 정치가 사람들을 이렇게 실망시켜도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속상해했다. 이어 "민식이법 하나 통과된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지켜지는 게 아니다, 다른 법안이 모두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장하나 활동가는 "선거법이나 공수처법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향한 법안이다,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먹고사니즘'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오는 28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개최 여부가 '국회의 인간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은 법안 처리에 보다 전력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민주당은 다음주 어린이 안전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해 당정협의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1일 "정기국회 내 처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면서 "당정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어린이 생명 및 안전과 관련된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20대 국회에 발의된 어린이생명안전법안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과 하준·태호·유찬·민식이 부모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어린이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과 하준·태호·유찬·민식이 부모들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어린이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 해인이법 : 어린이 안전에 대한 주관 부처를 명확히 하고, 어린이 안전사고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의무화하자는 법.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2016년 어린이안전 기본법으로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표 의원은 지난 8월 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으로 다시 발의했다. 해인이는 2016년 4월, 용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어린이집의 응급조치가 늦어 세상을 떠났다.

▲ 한음이법 : 2016년 7월,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던 한음이가 동행 교사의 방치로 통학차량 안에서 세상을 떠난 뒤 만들어진 법. 같은해 8월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어린이통학버스 운영자가 버스에 영상기기 장착, 모니터로 자동차 내부·후방·측면 등을 확인하게 하자"며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 태호유찬이법 : 지난 5월 인천 송도의 한 사설축구클럽 통학차량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냈는데, 승합차 안에 있던 태호군과 유찬군은 세상을 떠났다. 태호와 유찬이가 타고 있던 차량은 노란색 승합차였고, 부모들도 어린이통학차량인줄 알았다. 하지만 사설축구클럽은 법이 규정하는 어린이통학버스 운영 대상이 아니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차량을 어린이통학버스 신고대상에 포함되도록 하자'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 민식이법 :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김민식군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만들어진 법.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스쿨존 내 신호등, 과속 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자'며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 하준이법 : 2017년 10월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에서 육안으로도 구분하기 힘든 경사도로에서 굴러 내려온 차량에 하준이가 치여 사망한 뒤, 이와 같은 사고를 막자며 발의된 주차장법 개정안이다. '운전자의 주차시 안전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경사진 구역에 주차 안내표지판 설치 의무화'(민홍철 민주당 의원) '지자체장이 주차장 경사도 등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주차장 고임목 설치 및 안내 표지를 구비'(이용호 무소속 의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용호 의원의 법안은 지난 21일 국토위에 상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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