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5곳 복잡한 미로 통과…2주 뒤에도 기억 유지
» 유럽 해안 바위지대에 서식하는 유럽꽃게. 물속에 사는 갑각류도 육지의 동료인 곤충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른다. 한스 힐레베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미로학습에 나선 생쥐는 여러 갈래 길에서 막다른 골목을 피해 목표에 도달하는데, 반복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인다. 척추동물뿐 아니라 꿀벌과 개미 등 곤충도 이런 공간학습 능력을 보인다.
뇌가 작아 복잡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해양 무척추동물 가운데는 문어가 예외적으로 미로찾기를 한다. 예외의 목록이 늘어났다. 꽃게도 미로학습을 통한 뛰어난 공간학습 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드워드 포프 영국 스완지대 해양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럽꽃게를 대상으로 한 미로학습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꽃게들은 4주에 걸친 실험에서 5개의 갈림길이 나오는 복잡한 미로를 통과했으며, 2주일 뒤에도 학습한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 포프 박사가 미로실험 장치 앞에서 유럽꽃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스완지대 제공.
포프 박사는 “우리는 개미와 꿀벌 같은 곤충이 놀라운 지적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의 물속 동료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며 “그런 점에서 게가 곤충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더라도, 이처럼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중요하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미로학습은 3∼5일 굶긴 꽃게가 으깬 홍합에서 풍기는 냄새를 따라 목표지점으로 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출발해서 곧 우회전한 뒤 나오는 2개의 들머리를 묵살하고 다음 모퉁이에서 좌회전하는 식으로 올바른 선택을 5번 거듭해야 성공한다. 쥐 실험과 비슷한 난이도이다.
» 꽃게의 미로실험 장치 얼개. 왼쪽이 출발점이고 오른쪽 으깬 홍합이 도착점이다. 통로는 10㎝ 폭이고 가로는 75㎝, 세로는 50㎝이다. 로스 데이비스 외(2019) ‘바이올로지 레터’ 제공.
매주 한 번씩 한 실험에서 꽃게 12마리는 4주 만에 막다른 골목에 막히지 않고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실험을 거듭할수록 목표지점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축됐고 실수가 줄었다. 그러나 3주 이전에 성공한 게는 없었다.
연구자들은 “게들이 실험에서 뛰어난 공간학습 능력을 보였다”며 “게들이 얼마나 갔는지 거리를 추정하고 일련의 회전 방향 순서를 기억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마치고 수조를 깨끗이 청소한 뒤 먹이를 놓지 않고 다시 미로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2주 전 실험에 참여한 게는 처음 온 게보다 훨씬 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먹이로 가는 길을 기억해 두었다는 얘기다.
게와 새우 등 물속에 사는 갑각류는 곤충과 함께 절지동물에 속하지만, 곤충에 견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가재 두뇌의 뉴런 수는 9만 개인데, 꿀벌은 100만 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뇌가 크거나 뉴런 수가 많다고 정교한 행동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어린 유럽꽃게. 초록색을 띤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포프 박사는 “공간학습은 아주 복잡하다”며 “갑각류가 어떻게 그것을 해내는지 알면, 그 능력과 나아가 일반적 학습능력이 동물 사이에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에 비춰 야생 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터와 숨는 장소를 기억했다가 능숙하게 찾아가는 행동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유럽꽃게는 고통을 회피하는 법을 학습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동물복지와 관련해 주목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꽃게야 미안해 너도 아팠구나).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avies R, Gagen MH, Bull JC, Pope EC. 2019 Maze learning and memory in a decapod crustacean. Biol. Lett. 15: 2019040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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