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임대료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독일 베를린시가 내년 1월부터 주택 임대료를 5년간 아예 동결하는, 전례 없이 파격적인 조처에 나서 독일 전역이 떠들썩하다. 위헌 논란도 불거지고 있지만, 도심 세입자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청년층 주거 부담을 대폭 줄이는 데 주로 목표를 둔 이번 조처에 전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 베를린 시정부는 지난 10월22일 주택 임대료 동결을 담은 ‘베를린시 주택임대료 법안’을 합의 통과·발표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발효된다. 베를린 의회(상원)를 조만간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이 법안에 따르면,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약 150만채)은 지난 6월18일(법안 초안 발표일) 당시 임대료를 기준으로 향후 5년간 기존 세입자에게 주택 임대료를 더 인상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임대료 동결 조처는 독일 16개 주 가운데 최초다. 다만 수도·전기·난방비는 동결 대상이 아니다.
2022년부터는 물가 상승률(약 1.3% 예상) 정도만 인상을 허용하고, 임대인의 주택 개보수 비용이 발생해도 극히 제한된 수준만 인상을 용인하기로 했다. 베를린세입자협회는 “적정하고 더 많은 임대를 제공하는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거주자는 약 85%가 세입자다. 다만 2014년 이후에 건축된 주택은 이번 임대료 동결이 적용되지 않는다.
새로 임차계약을 맺는 세입자들도 임대료 상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번 법안은 새 임대계약에 대해 1제곱미터당 9.80유로(10.90달러·2013년 당시 평균 임대료)를 임대료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임대인이 이를 어기면 무려 50만유로(6억2천만원)를 벌금으로 물린다. 나아가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기존 임차계약도 이 상한선의 20% 이상은 부과할 수 없도록 묶었다. 20% 이상이면 세입자가 해당 관청에 신고해 임대료를 인하할 수 있게 하는 추가적인 법을 내년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베를린 시당국은 이 업무를 처리할 대규모 인력 채용(250명의 임대료 관리위원)을 계획 중이다.
베를린 임대료는 오랫동안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견줘 싼 편이었으나 2008년 이후 두배 이상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매맷값은 거의 3배로, 임대료는 2배 이상 뛰었다. 개보수한 집은 임대료가 4배가량 오르기도 했다.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면서 전세계의 투자자가 몰려오고, 창업 열풍이 일면서 한해 평균 4만8천여명이 새로 유입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임대주택으로 흘러들어오는 층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도심에 살던 노인과 아이들을 둔 가족들이 임대료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고삐 풀린 임대료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급기야 “아파트 수천채를 소유한 거대 임대기업의 임대용 집들을 몰수하자”는 급진적 시민청원 운동이 작년에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임대료 동결안을 발의한 카트린 롬프셔 베를린시의원(좌파당·베를린 도시개발주택부)은 지난달 28일 베를린 지역민방 <에르베베>(RBB)와 한 인터뷰에서 “임대료 폭등은 베를린만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 전체 대도시의 문제다. 우리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의회의 사민당 원내총무 라에드 살레도 최근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앞으로 독일의 다른 주들도 베를린 임대료 동결 정책을 모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를린 세입자협의회는 “이번 조처로 ‘사회적 임대료’ 정책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장에서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임대료를 넘어 주거복지 차원의 임대료 정책이 도입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대사업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베를린의 임대업자단체 ‘하우스운트그룬트’는 “베를린 주택시장의 미래는 암담하다”며, 임대료 동결은 근본 해결방안이 될 수 없고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사설에서 “장기적으로 신규주택 건설 및 주택투자가 감소하면서 주택난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임대료 동결·상한 법안은 독일 헌법재판소에 회부돼 위헌 여부를 다투고 있다. 울리히 바이스 베를린 훔볼트대 명예교수(헌법 및 건축법 전공)는 ‘5년 동결’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고, ‘상한선의 20% 제한’ 규제는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어느 다세대주택으로,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미친 임대료” 등 임대료 인상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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