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똥 말고 무른 똥 섭취…단백질, 비타민 등 영양분과 미생물 풍부
못 먹게 하면 성장 억제, 영양실조…소가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은 원리
» 토끼가 소화가 덜된 자기 똥을 먹는 것은 몸집 작은 초식동물의 숙명과도 같다. 소의 되새김질과 근본적으로 같은 행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토끼에게는 자기 똥을 먹는 독특한 식습관이 있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이런 행동의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토끼는 자기 똥을 먹어 성장과 발달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는다. 똥을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수 있다.
집에서 기르는 토끼를 자세히 보면, 낮 동안에는 섬유질이 많은 단단한 똥을 누지만 밤이 되면 무른 똥을 배설한다. 지름 5㎜로 단단한 똥보다 작고, 점액에 싸여 반짝이며, 포도알처럼 뭉쳐있는 이 무른 똥을 토끼는 빼앗길세라 얼른 먹어치운다.
‘자기 분식’이라 불리는 이런 행동은 토끼를 비롯해 풀을 먹는 소형 동물인 새앙토끼, 비버, 기니피그, 포섬 등에서도 관찰된다. 소화하기 힘든 섬유소가 가득한 풀 등 거친 먹이를 소화하는 데는 미생물 발효가 필요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몸집이 작은 초식동물은 몸속에 큰 장관이 들어찰 공간이 없을뿐더러 신진대사가 빨라 에너지를 빨리 공급받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여기서 진화한 방법이 자기 분식이다. 먹이에서 일단 소화 가능한 부분부터 대충 양분을 섭취해 배설한 뒤 다시 이를 먹어 소화한다는 전략이다. 마치 소가 여러 개의 위를 이용해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다. 토끼는 4번까지 자기 똥을 되먹는데, 위산에 미생물이 죽지 않도록 점막으로 둘러싸 똥을 보호한다.
» 최종적으로 배설한 단단한 똥에 비해 무른 똥은 작고 점막에 싸여 반짝이며 한 곳에 몰려있다. 에이미 홀스 (2008), ‘토끼의 자기 분식’
조사 결과 무른 똥에는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지방산이 풍부하고 섬유질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다량의 미생물이 들어있다. 자기 분식을 하지 않으면 단백질 섭취량이 15∼22% 줄어들고, 비타민 B2(리보플래빈)는 전혀 섭취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장관의 미생물군이 양과 질 모두 저하돼 소화능력 감소, 면역시스템 발달 지체, 병 저항력 약화 등 생리적 부작용이 생긴다. 무른 똥을 못 먹게 했더니 토끼 새끼의 성장이 절반으로 줄고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보고도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애완토끼 복지 지침’에서 “토끼가 똥 먹는 것을 막지 마라” “무른 똥이 너무 없거나 많으면 수의사를 찾으라”며 무른 똥을 건강 지표의 하나로 삼고 있다.
» 섬유질이 많은 거친 식물을 주요 먹이로 삼는 토끼에게 자기 똥을 다시 먹어 소화하는 일은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임이 드러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최근 나온 연구는 무른 똥 섭취를 막자 성장 억제는 물론이고 간에서 일어나는 지질 대사가 저해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왕 야동 중국 허난 농대 수의학자 등 중국 연구진은 토끼를 두 무리로 나눠 한쪽 토끼는 자기 분식을 하지 못하도록 한 뒤 90일 뒤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무른 똥을 먹지 못한 토끼는 똑같은 사료를 공급받고도 체중 증가가 현저히 떨어졌고 지질 대사와 관련한 유전자 발현이 뚜렷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연구에서 비타민 A1(레티놀) 대사는 토끼의 성장과 발달에 핵심 구실을 하는데, 무른 똥을 먹지 못하면서 대사가 월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자기 분식의 악영향을 분자 차원에서 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 연구는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투명한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지난달 11일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adong Wang et al, Transcriptome analysis of fasting caecotrophy on hepatic lipid metabolism in New Zealand rabbits, bioRxiv, doi: https://doi.org/10.1101/49395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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