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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7일 목요일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유가족·노조 참여한 진상조사위 구성해야”

노조·유족 등, 서울시청 앞서 진상조사 참여 보장·책임자 처벌 촉구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1-17 17:36:24
수정 2019-01-17 17: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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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서지윤 간호사의 휴대전화 메신저 내용.
고(故) 서지윤 간호사의 휴대전화 메신저 내용.ⓒ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새서울의료원분회 제공

'분위기가 무서워 일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외롭고 서럽다', '사람을 유령 취급했다', '상근직인데 퇴근을 못 했다' (유족이 공개한 고(故) 서지윤 간호사의 휴대전화 메신저 내용)
최근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의 한 간호사가 사망했다. 현재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 지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사망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민, 노동조합, 유가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주최로 '서울의료원 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서울시 진상조사위원회 시민, 노동조합, 유가족 참여보장 요구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기자회견에는 서 간호사의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이 참석했다.
"엄마, 나 이제는 '태움'이 뭔지 알 것 같아" 
'넌 그것도 모르냐'며 무시.."누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가 연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진상조사위 구성과 노동조합, 유가족의 참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가 연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진상조사위 구성과 노동조합, 유가족의 참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서 간호사의 어머니는 "이 아이가 병동에서 근무할 때는 '태움'이라는 자체가 뭔지 몰랐다고 했던 아이였다"며 "행정부로 가고 12월 29일 집에 내려와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 나 이제는 태움이 뭔지를 알 것 같아'라고 했다"며 흐느꼈다.  
이어 "병동에서 밝고 행복했던 아이가 거기 내려가 불과 며칠 사이에 그런 말을 했다는 데에서 거기서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당했고 힘들었는 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누나가 사망한 마지막으로 병원에 출근했던 날 CCTV 속 누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출근을 했다"며 "병원의 노동시간도 명확하지 않았고, 출근 및 퇴근도 일정치 않았고, 근무시간 외 초과근무도 허다했다"고 설명했다. 또 "저희 누나는 책상조차 없었다"며 "슬리퍼 끄는 소리로 앞담화 뒷담화를 하며 직원을 욕했다"고 전했다.  
그는 "출근을 일찍 했으면 위로를 해주고 격려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출근을 일찍했다는 이유로도 혼났다. 잘 한 일에도 혼났는데, 못하면 얼마나 더 크게 혼났을까 짐작이 간다"며 "누나는 늘상 '나 오늘 밥 한끼도 못 먹고 일했다', '물 한 번도 못 먹었다'고 이야기 했다"고 밝혔다.
남동생은 "누나가 경력 7년차임에도 '넌 그것도 모르냐' 이런 얘기를 하며 누나를 핍박했다"며 "이 이야기로 인해 누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퇴근한 서 간호사가 "'내가 뭐하는 지 모르겠다', '오늘 어리버리 하다왔다'"고 했다며, "누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지시로 인해 무시받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행정부서 출근 후 12일만에 극단적인 선택 
병동에서 일할 당시엔 "정신적으로 힘든 것 없어"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서울의료원 간호병동에서 2013년 3월부터 2018년 12월 11일까지 5년 간 근무했다. 유족들은 서 간호사가 가족들에게 병동 근무 당시에는 '몸은 힘든데, 정신적으로는 힘든 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후 서 간호사는 행정부서로 부서이동을 했고,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행정 간호사로 일했다. 그는 행정부서로 자리를 옮긴지 12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서 간호사는 1월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유서에는 '나를 발견하면 병원으로 가지말라', '우리 병원 사람들은 조문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고인의 유언을 따라 유족들은 병원 사람들에게 조문을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장례식을 마친 1월 7일, 남동생은 가족과 함께 화장터로 이동하던 중 서울의료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 간호사는 왜 출근을 안하냐'고 물었다. 분노한 그는 '누나는 죽었다. 끊어라'는 요지로 답했다고 한다. 병원 측은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는데 행적조차 몰랐고 이틀만에야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유족은 "8일 오후 병원에 찾아갔지만, 병원장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며, "9일 오후가 돼서야 병원장 연락이 왔고, 왜 이제 왔냐고 묻자 본인은 보고를 못 받았다고 발뺌했다"고 말했다. 이어 "(8일) 병원에 찾아갔을 때, 팀장급 직원들이 우리를 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통탄했다.
유족·노조·외부전문가 참여한 진상조사위 구성 촉구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가 연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진상조사위 구성과 노동조합, 유가족의 참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가 연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진상조사위 구성과 노동조합, 유가족의 참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서 간호사와 함께 병원에서 일했던 동료들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았다.
김경희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서울시 공무원의 감사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절대 알 수 없다"며 "누가 서울시 공무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전에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된 진상조사단이 꾸려지지 않고, 이 사건이 마무리 된다면 서울의료원의 직장 내 괴롭힘은 더욱 교묘해지고 집요해질 것"이라며 "서울의료원에서 직원들이 숨쉬고 일할 수 있도록 인권·노동과 관련된 전문가 및 시민단체, 노조가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이날 노조, 유가족 및 외부 전문가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병원장과 간호부장은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며 "간호부장 1명만 개인 잘못으로 해임해 끝내는 게 아니고, 확실한 진상조사로 인해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서울의료원의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지난 11일부터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서울의료원은 감사실, 노무사, 변호사, 행정 인력 등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시작하다 중단했다. 유족들은 조사를 받아야 하는 병원 사람들이 개입돼 있다고 항의하며 진상조사위원회 재편성을 요구했다.  
민중의소리는 서울시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유족과 노조·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서울시는 2016년 구의역 김 군 사고 이후 노조·사측·민간·정부로 구성된 25명의 진상조사단을 통해 7개월 동안 조사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이후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결과보고서를 통해 개선안을 내놨고, 서울시는 이에 맞춰 단계적으로 지하철 현장 안전, 안전 인력 고용 문제를 개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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