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km 여정의 비밀…뱀장어는 여전히 신비롭다
해류 갈아타며 수천 km 이동해 성장과 산란…수수께끼에 싸인 생태
» 담수와 바다를 오가는 수수께끼의 생활사를 지닌 뱀장어는 광어 다음으로 중요한 양식 어종이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물고기이기도 하다.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생태 연구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달 들어 제주에 가늘고 투명한 실뱀장어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필리핀해에서 태어나 해류를 갈아타는 긴 여행을 마치고 겨우 뱀장어 꼴을 갖추었다. 2월엔 남해안, 3월부터는 서해안 강하구로 실뱀장어가 무리 지어 몰려들 것이다.
최근에야 밝혀진 산란지
육지 하천의 배가 노란 황뱀장어는 5∼8년 자라면 바닷물고기인 은뱀장어로 바뀌어 먼바다로 산란 여행을 떠난다. 은뱀장어가 실뱀장어가 돼 돌아오기까지 수수께끼에 싸인 생활사가 자세히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대만 등에 분포하는 동아시아뱀장어가 필리핀과 괌 사이,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해저 산맥에서 산란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91년이었다.
»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 유생은 대륙붕 근처에서 성체 꼴을 갖춘 실뱀장어로 변신한다. 현재 양식은 실뱀장어를 강하구에서 잡아 기르는 방식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수심 100∼200m의 깊은 바다에서 깨어난 뱀장어 유생은 나뭇잎 모양의 댓잎뱀장어가 돼 조류를 따라 수천㎞를 이동하다 대륙붕 근처에서 실뱀장어로 탈바꿈한 뒤 육지 하천이나 강하구로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뱀장어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유생은 무얼 먹고 자라는지 등 자세한 내막은 아직 잘 모른다.
우리나라는 2016년 새끼 뱀장어의 알을 부화시켜 기른 뒤 다시 그 새끼를 얻는 이른바 ‘뱀장어 완전 양식’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이뤘다. 이 기술을 6년 먼저 개발한 일본이 1960년대부터 태평양 망망대해를 뒤지며 기초 연구를 쌓아왔음에 비춰,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이다. 그러나 인공 증식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뱀장어의 생태와 한살이에 대한 기초 연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뱀장어는 바다가 고향이다. 번식을 위해 먼바다로 향하는 뱀장어는 눈과 꼬리가 큰 심해어 모습으로 바뀐다. 아무리 깊고 큰 호수라도 뱀장어가 산란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사례가 나왔다. 홍양기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현 국립중앙과학관) 팀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소양호에서 등은 검은색, 복부는 진한 갈색으로 바뀐 후기 은뱀장어 1마리씩 채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 결과 겉모습과 달리 정작 생식소는 발달하지 못한 ‘유사 은뱀장어’였다. 홍 박사는 “댐에 고립된 뒤 생식소가 발달했다 바다로 가지 못하자 도로 흡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낮밤 수심 바꾸며 이동
첨단 관측장비를 이용해 뱀장어 이동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도 잇따른다. 뱀장어 몸에 위성추적장치를 붙이는 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이들이 강하구에서 번식지까지 바다 밑바닥을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니라 매일 수심을 바꾸며 유영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히구치 다카토시 등 일본 연구자들의 지난해 연구를 보면, 산란지인 마리아나 해저 산맥 근처에 놓아준 뱀장어는 낮에는 563∼885m 깊이에서 헤엄치다 해가 지면 좀 더 얕은 수심 182~411m로 올라와 이동했다.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 유생은 서쪽으로 흐르는 북적도 해류를 따라 이동하다 구로시오 해류를 만나면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최근 연구 결과 납작하던 댓잎뱀장어가 통통해지고 길이가 짧아지면서 스스로 헤엄치는 실뱀장어로 ‘변신’하는 지점은 대만 동쪽 해역으로 밝혀졌다.
» 알에서 깨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뱀장어 유생(렙토세팔루스). 대만 동쪽에서 실뱀장어로 탈바꿈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일본 연구자들은 지난해 이곳에서 탈바꿈(변태) 중인 유생 28마리를 채집해 이를 확인했다. 또 이들 유생은 북적도 해류에서 구로시오 해류로 갈아타는 이제까지 알려진 경로 말고 대만 동쪽의 소용돌이 해역을 통해서도 동아시아로 확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륙붕에서 실뱀장어로 탈바꿈
조류에 떠밀려오던 뱀장어 유생은 대륙붕 근처에서 실뱀장어로 바뀌는 탈바꿈을 하는데, 이때부터 나침반을 가진 듯 지자기를 감지해 육지로 접근한다는 사실이 유럽과 동아시아뱀장어에서 각각 2017년 확인됐다. 실뱀장어는 육지로 방위를 맞추고 밀물 때는 물살을 타고, 썰물 때는 바닥에 붙어 물살을 거스르며 육지로 향했다.
» 동아시아에서 뱀장어 서식지는 1970∼2010년 사이 77%가 사라졌다. 실뱀장어 소상률은 90% 이상 줄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08년 부터 동아시아뱀장어의 멸종위기 등급을 ‘위험’으로 유지하고 있다. 오픈 케이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뱀장어는 2017년 3015억원 규모인 1만1000t을 생산해 넙치 다음으로 중요한 양식 어종이다. 현재의 양식은 자연산 실뱀장어를 잡거나 수입해 기르는 방식인데,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포획량과 수입량이 모두 급격히 줄고 있다. ‘완전 양식’ 기술이 개발됐다지만 아직 분양할 단계는 아니다.
가장 앞선 일본도 연간 1500마리의 새끼 뱀장어를 생산하는 수준이다. 양식기술 개발에 참여해 온 김신권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종묘 대량생산이라면 연간 1만 마리 수준은 돼야 한다”며 “이 기술은 아직 실험실 단계”라고 말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연적인 뱀장어의 번식과 성장 환경을 양식장에서 고스란히 재현하는 일이다. 김 박사는 “무엇보다 잘 성숙된 알 확보와 새끼들이 먹을 사료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성장 과정 아직 100% 몰라
뱀장어가 산란지인 해저 산맥까지 가면서 성숙하는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호르몬 주사를 놓아 산란을 유도한다. 당연히 자연적 성숙과는 거리가 있다.
어린 뱀장어 먹이 조달도 큰 문제다. 갓 태어난 새끼의 사망률이 매우 높고 척추가 휘는 등 기형도 많다. 김 박사는 “애초 상어 간을 먹이로 썼지만 최근엔 ‘바다 눈’과 성분이 비슷한 먹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 눈’은 죽은 플랑크톤 등 유기물이 뭉쳐 눈처럼 심해로 가라앉는 물질로, 갓 태어난 뱀장어의 먹이로 추정되고 있다.
뱀장어 생태 전문가인 황선도 해양생물자원관 관장은 “자연을 흉내 내려면 먼저 충분히 알아야 한다”며 생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설사 완전 양식으로 뱀장어 종묘의 대량생산이 이뤄지더라도 생물 다양성, 비용, 안전성, 맛 등 심미적 요인 등을 고려하면 자연적인 뱀장어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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