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것은 바보 사관이다.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에 성서 기자들은 역사를 뒤집어쓰고 있다. 창세기가 제일 처음 이야기이고, 출애굽기가 그 다음이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이들 이야기는 기원전 4세기 경 바빌론 포로기에서 당한 처참한 경험을 들어 쓴 것이 창세기이고 출애굽기이다.
우리도 역사를 이렇게 쓰지 않고 편년체로 역사 서술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따위 역사책은 오히려 역사를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 할 것이다. 아래 이야기는 아즈텍이 스페인한테 당한 경험이 우리가 일본한테 당한 그것과 너무 같아서 타산지석으로 귀감삼아 쓴 것이다. 아즈텍과 북미주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속임수에 망한 경험이 있다.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착륙 우주여행을 앞두고 미 서부 모하비 사막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달의 표면과 유사한 동시에 나바호와 호피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이들 우주 비행사들이 인디언 원주민 노인과 우연히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이 원주민이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우주비행사는 달 탐사를 위해 지금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노인은 잠깐 침묵을 하다가 달나라에는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는데 달에 가게 되면 꼭 자기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비행사들이 노인에게 “무슨 말을 전하기를 원하느냐”과 하니 노인은 자기들의 고유한 언어로 몇 마디 중얼거렸으나 비행사들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 무슨 뜻이요” 하고 묻자, 그 말은 우리와 정령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기지로 돌아온 비행사들은 원주민 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말의 의미를 통역해 달라고 했다. 통역사는 원주민의 말을 이렇게 번역을 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위의 글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403-4)에 나오는 한 토막의 일화이다. 하라리는 전쟁사로 학위를 받아 전 세계 전쟁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다. 아래 이야기들 역시 그의 책에서 발췌하여 설명을 부연한 것이다.
해방이 되자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고 했다. 배우지 못한 민중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았었다. 그러나 유학까지 갔다 온 이승만 같은 식자들이야 말로 소련에 속고 미국의 거짓말에 다 넘어갔다. 그리고 민중들에게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설파하고 주입시켰다.
서울역과 시청 앞 광화문 광장을 휘저으며 양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떠도는 부대들, 이들이 바로 이들 식자들한테 기만당하고 속은 자들이다. 기독교회 안은 이런 우중들의 집합소와 같다. 인디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속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앞세우고 그들의 말에 경청을 하면 타산지석으로 통일에 귀감이 될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항해한 것보다 조금 뒤인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멕시코에 상륙했다. 그 사이에 스페인은 이미 카리브제도의 여러 섬들을 이미 다 점령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카리브 연안에는 마야 인들이, 그리고 지금의 멕시코 시 주변에는 아즈텍 인들이 살고 있었다. 코르테스의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고작 4-5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아즈텍 인들을 섬멸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자.
아즈텍들은 자기들의 눈앞에 나타난 이 미지의 인간들의 정체를 몰랐었다. 심지어는 하늘에서 내려 온 신들로 여기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스페인들은 아즈텍들이 무지하고 미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을 철저하게 속이기로 했다. 어떻게 속였고 아즈텍들은 어떻게 속았는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만 가지로 도움이 된다.
1519년 7월 멕시코 해안에 닻을 내린 날은 화창한 날씨였다. 해변가에 모여 나온 아즈텍들은 이 외지의 인간들을 신기하고 나아가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마 이들이 자기들을 모조리 섬멸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코르테스는 이 구경꾼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평화적인 목적으로 왔다. 너희 지도자에게 우리를 안내하라”고 하면서 코르테스 자신은 스페인 왕의 평화 사절단을 이끌고 왔다고 자처했다.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코르테스는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탐욕스럽게도 잔인무도한 군인들을 끌고 왔으며, 그는 스페인 왕의 사절도 물론 아니었다.
그 당시 아즈텍의 지도자는 몬테주마 2세(1502-1520)였다. 코르테스의 말을 그대로 들은 현지인들은 그의 호위무사가 되어 그를 몬테주마 2세에게 안내한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와 접견하는 바로 그 순간에 몬테주마 2세의 경비병들을 모두 학살하고 몬테주마 2세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이 때 경비병들은 고작 나무 곤봉과 돌칼 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고, 코르테스의 군인들은 강철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래도 선군정치가 왜 필요한지를 모르는가?
아무리 강철무기를 들고 있다고는 해도 자기 군인들은 기백 명에 불과하고 자기는 수십만 명의 아즈텍 군인들과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코르테스는 얼마나 간이 컸으면 어떻게 이 위기를 뚫고 멕시코를 점령할 수 있었던가? 그는 간이 컸을 뿐만 아니라 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우리 아즈텍을 속이고 지금도 우리를 속이고 있는가에 촉각을 세우고 보아야 할 것이다.
코르테스는 수하에 기백 명뿐인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증원군은 무려 1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기백만의 아즈텍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던가? 일본이 조선을 먹을 때도 군인 기백 명에 불과했었다.
여기에는 원주민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코르테스가 계속해대는 거짓말에 몬테주마 2세도 아즈텍 인들도 다 속아 넘어갔다. 그 어떤 무기보다도 ‘어리석음’이야말로 가장 취약하고 아니 가장 위험천만한 침략의 통로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 아즈텍이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를 궁전에 가두어 놓고 마치 왕은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꾸몄고, 스페인 대사로 위장한 그는 손님인 것처럼 위장하였다. 일본이 고종을 가두어 놓고 자기들은 전권대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나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아즈텍 조직은 중앙집권적이었고 이는 최대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아즈텍의 중추 신경을 건드리고 마비시켜 놓으니 몬테주마 2세는 식물인간으로서 왕권을 구사해 나갔고, 신하들도 그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만 치면 그 구조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중앙집권적이라도 지도자는 인민을 위해 인민은 지도자를 위하는 호혜적인 관계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부족장들의 반란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몬테주마 2세(1502-1520)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지금의 온두라스, 니카라과에 해당하는 지역을 원정해 영토 확장에 성공, 이들 부족들로 부터 공물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여러 부족들로부터 공물을 받아낸 것 때문에 반감을 사서 코르테스가 이끄는 군대가 아즈텍을 공격했을 때에 여러 부족장들이 오히려 코르테스에게 협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로 몬테주마 2세도 부족장들도 어리석었다. 코르테스는 먼저 몬테주마 2세를 사로잡고 다음에서는 이들 부족장들도 모두 처형 내지 노예로 삼고 말았다. 남북 어느 쪽도 외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151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의 군대가 테노치티틀란을 침공하는 것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 대신 코르테스의 군대가 도착하자 그를 환대해 자신들의 권위를 강조하려 했다. 결국 테노치티틀란의 중심부가 점거되었고, 코르테스의 협박으로 아즈텍 병사들이 코르테스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1만 명의 전사를 소집해 대응했으나, 코르테스가 이끄는 불과 400명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코르테스는 아즈텍의 내부 분란을 최대 활용해 400여 명으로 수백만 명을 굴복시켰다. 남북 분단 이 자체가 내부 분란이란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할 대목이다.
코르테스는 먼저 아즈텍 언어 구조를 철저히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탐사대를 구성해 아즈텍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문화 탐방을 철저히 하였다. 어쩌면 이것은 일제가 한 방법과 하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드디어 문화 전쟁으로 아즈텍 내부 안에서 스스로 내분이 생기도록 했다. 다시 말해서 아즈텍 지도급 인물들이 사분오열 갈라져 몬테주마 2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부족 간 문화적 차이를 코르테스는 최대한 이용해 먹었다.
드디어 아즈텍은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아즈텍의 지배를 받고 있던 피지배 민족들은 스페인 코르테스와 싸우기는커녕 몬테주마 2세를 향해 화살을 돌렸다. 이들은 카리브 해 일대에서 코르테스가 저질러온 대학살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몬테주마 2세로부터 받은 원한으로 한에 사무쳐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 탐관오리에 억압 받고 있던 토호들이 왜군에 협조한 형국이나 같아 보인다.
이들 부족 토호들은 어리석게도 코르테스의 도움을 받으면 몬테주마 2세의 억압에서 해방될 줄 알았었다. 이것은 큰 착오였고 무지와 어리석음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길을 걸어 왔다. 이들 토호들은 설마 스페인이 자기들을 지배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안하고 몰랐던 것이다. 아니 이들은 코르테스에게 수십만 명의 병력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일본이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토벌할 때에 정부군이 일본군을 지원한 것이나 무엇 하나 다른가? 조선의 경우는 조선 왕조가 어리석었고, 아즈텍의 경우는 부족 토호들과 민중들이 어리석었다.
이러한 와중에, 스페인 본토에서 수만 명의 군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스페인 정착민도 같은 배를 타고 들어 왔다. 조선에도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군인들과 함께 들어 와 살았던가? 이들은 드디어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동족 말살 정책을 폈다.
아즈텍 현지인들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코르테스가 도착한지 1세기 만에 원주민의 수는 90퍼센트 이상이 줄었다. 겨우 살아남은 10퍼센트마저 심각한 인종차별과 노예 수준의 지배를 받았다. 그 무엇보다 인종 말살의 위험성은 백인들의 혼혈 정책이었다. 북미 대륙의 침략자들과는 달리 멕시코와 남미에서는 혼혈 정책으로 지금 멕시코 인들은 스페인을 아버지 나라라고 부르고 있으며 적대 의식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혼혈 정책으로 창씨개명이 저절로 되 버렸다. 순수 백인들은 지금 멕시코시에 약 10퍼센트 정도 살고 있으며 산간 지대에는 혼혈이 되지 않은 원주민들이 극소수 살아 남아있을 뿐이다. 대부분이 혼혈로 창씨개명 된 멕시칸들이다.
위에서는 스페인의 침략 정책과 일본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려 했다. 일본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서양의 이런 침략 정책을 철저히 알고 배워오고 있었다. 그 수법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했고, 우리는 아즈텍이 망하듯이 망하고 말았다.
아베는 지금 임진왜란과 구한말 식민통치 때 하던 수법을 그대로 구사하고 있다. 초계기 사건이란 일본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전초에 불과하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철저하게 일본의 지령을 받고 있는 행동대원들이라고 보면 된다.
반기문이란 자는 외교에는 역사를 앞세우면 안 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고, 이는 지금 자유한국당의 기본 외교 정책이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아즈텍의 그 어리석은 자들이 하듯이 그 이상으로 고스란히 일본에 넘길 것이다.
위 인디언 추장이 우주 비행사들에게 한 말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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