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터뷰] 민플러스가 만난 진보(1)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상임대표
|
- 격동의 2018년 무술년이 지나갔습니다. 촛불의 견지에서 2018년을 돌아본다면 어떻습니까?
"2018년은 촛불항쟁 이후 촛불정부의 역주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즉 2018년 초만해도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에 대해서 우리 민중들의 기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은산분리 확대라든지 이런 개혁 역주행이 느닷없이 그냥 치고 나왔어요. 경제실패의 모든 책임을 최저임금으로 돌리는 핑계잡기가 시작되면서 상당한 수준의 역주행이 시작중입니다. 그나마 '사법농단',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문제 등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요. 이렇게 보면 2018년은 국면전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촛불항쟁시기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기로 전환이 되고 있는 것인데, 전환기라고 하는 이유는 기존 적폐들이나 기존 시스템은 무너져 가는데 새로운 시대의 시스템은 아직 구축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구(舊)시대는 거(去)하였으나 신(新)시대는 아직 래(來)하지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2019년은 신시대가 래(來)하도록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문재인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있어야겠군요.
"적폐정산과 사회대개혁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 민중세력들은 이 과제에 대해서 ‘따로 또 함께’ 이렇게 협력해 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봐요. 아직 악질들이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새로운 과제가 생긴 겁니다. 이른바 ‘개혁의 역주행 저지’라는 과제가 새로 생긴 거죠. 그래서 개혁역주행 저지는 문재인 정부와 우리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겠죠. 노동민중세력들이 빨리 태세를 갖추고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에 바로 착수 할 필요가 있는데, 실제로는 지금 굉장히 어지러운 상태인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 민주노총 내부에 가치관의 혼동들이 있는 것 같고, 국면은 전환되고 있는데,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 구시대적 접근법에서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 노동민중진영이 구시대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먼저 정세인식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현재 토대는 변화가 없지만 권력관계는 변화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국면전환기적 정세인식이 필요한 거죠. 국면전환적 인식을 정확히 못하면 양 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토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다’에 집착하면 구시대적인 문법으로 계속 접근하게 됩니다. 반면에 ‘전환기적으로 변하고 있다’에만 집착하면 조급증에 빠지게 됩니다. 제가 ‘국면 전환기’다, ‘토대는 변화가 없지만 국면은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토대가 변하지 않고 여전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국면이 전환되는 것에 맞게 문법이 달라져야한다’는 것입니다. 투쟁의 문법이나, 사회운동의 문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운동방식이 국면 전환에 맞는 방식으로 진화·발전해가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굉장히 미흡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의 진화 자체가 지체되고 있다고 봐야 할 상황입니다.
이러다보니 노동자·민중 세력들이 변방으로 밀려나가고 있습니다. 사회변화의 중심부에서 사회변화를 추동해 나가기보다는 계속 밀려가면서 변방세력이 되어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원인은 상대방에도 문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태세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촛불항쟁으로 세상을 바꾸고 권력을 바꾸었는데, 그 이후는 없는 거에요. 근본적으로는 노동자·민중정치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응당한 노동자·민중정치가 지체되고 있기 때문에 투쟁의 성과가 유실되고 마는 거죠. 그 거대한 촛불항쟁의 결과가 유실되고 만 거죠. 현재 ‘저들의 배반’을 얘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노동자·민중세력들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서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 촛불과제를 수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십니까? 비관적으로 보십니까?
"기본적으로는 촛불항쟁은 1단계만 성공한 거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라는 그 행정부 권력을 바꾼 거죠. 그 이후로 적폐의 온상인 의회권력을 못 바꿨고, 그와 연동돼서 사법적폐청산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3권외에도 재벌적폐청산은 제대로 손을 못쓰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벌에게 아부하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언론권력문제는 KBS·MBC정상화를 위한 행동을 하면서 그나마 물꼬를 튼 정도지만 아직 멀었고, 공안권력(국정원·검찰·경찰·기무사 등) 같은 경우는 깃발만 요란하게 흔들 뿐 실제로 된 건 별로 없는 상황이죠. 관료권력의 경우, 촛불항쟁으로 바뀐 대통령과 정부가 기존에 있던 관료들에게 포획당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만 바꿨다’ 이 정도 된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권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나마 진보적’이고 그 외 나머지는 우클릭하는 일만 남은 셈이죠.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면 노동자민중정치세력들이 너무나 변방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민중정치세력은 국민적 관심대상도 아닌데다가 의미 있는 대안세력이라는 인식이 안되어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현 정치권력적 환경을 최소한 중립적으로 만들어서 활용할 것은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기득권 적폐세력들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뭔가 해 줄 수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건 철부지들의 낭만적 이야기 수준입니다. 이른바 노동자·민중 등 좌파적 세력들이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영향력 행사를 해줘야 결과적으로 좌우 균형을 잡고 중립적인 권력의 행사가 가능할 텐데, 그것이 약하니까 지금 촛불항쟁으로 만들어 놓은 성과가 유실되면서 계속 우클릭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문정부는 계속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죠. 좌측으로 진보쪽으로 당길 수 있는 세력이 너무 약합니다. 핵심은 노동자·민중의 정치가 지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노동자·민중세력의 투쟁과 비판이 필요하다는 취지인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노동자민중세력의 투쟁과 비판은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고 다만 올바른 투쟁과 비판이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면, 문재인정부도 결과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자유주의 개혁정권입니다. 그나마 촛불항쟁의 열기와 그 흐름 덕분에 재벌권력과 바로 밀착해서 야합하는 양상들이 일정정도 견제되는 수준이라고 봐야죠. 문정부의 핵심들이나 골간이 곧바로 노동자민중들의 삶에 직결된 의미있는 혁신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낭만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보수’라는 용어가 완전히 왜곡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개혁세력을 진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책임은 노동자민중 세력이 무력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진짜 진보들은 제대로 힘을 못쓰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대중들의 눈에 진보세력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대중들의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는 극우적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세력, 즉 자유주의개혁 세력을 진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쉬프트 되어있는 현실입니다. 권력집단 중에서 그나마 제일 진보적으로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 자신은 잘 하고 싶겠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권력현장에서는 따로 노는(다르게 작동하는), 결과적으로 “빠탐풍” 현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봐야죠.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의 특징은 모순되는 것들을 얽어놓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재벌들 참가 못하게 하는 은산분리 확대를 추진하는가 하면 영리병원 허가하면서 내국인 진료불허한다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반은 묶고 반은 푸는 이중적인 정책을 하고 있습니다. 줄타기를 하는거죠. 여기서 노동자민중들이 자유주의개혁세력과 함께 연대하여 적폐청산 등 특정과제를 풀어갈 수는 있겠지만, 모든 걸 의탁하면 안됩니다. 모든 걸 의탁했다가 안되면 과도한 실망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등 양극단을 널뛰기하듯이 할 수 있습니다. 힘을 갖고, 한편으로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견인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혁역주행은 저지하는 등 견제와 견인을 입체적으로 추진해가야 하는 건데, 모든 것을 의탁해놓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노동자민중들은 필연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은 노동자민중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민중진영이 촛불정부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얘기하는데, 현실은 거꾸로입니다. 노동자민중들이 앞장서서 민중총궐기투쟁을 선도적으로 진행했고, 거기에 일반시민들이 대거 가세를 해서 촛불항쟁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선도적으로 앞장섰던 노동자민중들은 ‘팽’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개혁세력들이 우리를 ‘팽’시킨 겁니다. ‘길을 닦아 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간다’는 식이죠. 어떤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싸운다기 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편으로는 똑바로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나타나는 바와 같은 역주행에 대해서는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견인과 견제의 변증법적 통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면전환시대에 구시대적 문법으로 계속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저는 양쪽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계속 최대강령과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과 촛불정부 시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사람들 모두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 다시 노동자민중진영의 극복과제에 대해 보충해서 이야기해 주셔야겠네요. 결국 광장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물론 가두투쟁, 광장에서의 투쟁이 계속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외에 일상적인 정치·정책 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상황을 보면 그런데 담론투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최근 담론투쟁에서 밀리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최저임금투쟁’입니다. 적폐세력들이 각종 통계와 사례를 왜곡·조작해 내면서 “최저임금 때문에 경제가 어렵게 되었다”는 식의 역공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민중세력들, 진보세력들이 정확하게 정책적 대응 활동, 즉 담론투쟁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제가 최근 여러군데서 지적한 바가 있는데요. “기득권층의 역공에 대해 제대로 대응 못 하는 이유가 뭐냐, 돈이 없어서 정책역량을 상근을 못 시키면 관련 전문가들의 정책네트워크를 가동하여 민주노총이 적폐세력들의 역공에 대해서 대응적 담론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갔어야 한다”라고 말했지요. 상대방은 담론투쟁에 대해 길목을 잘 잡고 매우 효과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손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거나 분개만 하고있는 상태가 아닌가 걱정되는 것입니다. 담론투쟁의 중요성에 대해서 굉장히 허술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담론투쟁을 잘 해야 합니다. 담론투쟁이 잘되어야 광장투쟁이 함께 상승이 됩니다. 담론투쟁을 방어적으로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작년 한 해, 우리는 담론투쟁에 실패했고, 결과를 보니 문재인 정부에 의탁하고, 미흡한 것에 대해서는 원망만 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내용을 갖고 담론투쟁 혹은 광장투쟁, 아니면 두 가지를 통합해서 한편으로 견인하고 한편으로 견제해 나가야 했는데, 속은 비어있으면서 의탁형태로 진행되다 보니까 ‘일희일비’(一喜一悲)하게 되는 것이죠. 현재는 ‘비’(悲)에서 ‘분노’로 변화발전해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 중요한 이야기네요.
"노동자민중진영의 담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유튜브 개설운영, 고민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노동민중진영이 자신의 대오를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운동적 측면이나 정치측면에서 전체적으로 점점 변방화되어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나마 요즘 문재인 정부나 제도권들이 떡수를 두기 시작하니까 노동자민중의 활동공간이 생기고 있지만, 이는 상대방의 실수에 기대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약간의 성과도 점수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어요. 상당히 걱정입니다."
- 노동민중진영이 일상정치활동, 담론투쟁을 적극화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합니까?
"제2의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가 필요합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열된 이후 2010~11년 진보정치세력이 통합을 추진했었습니다. 그때 저도 통합운동에 굉장히 공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현재 기존에 있는 진보정치세력들간의 통합은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대중들 수준에서는 냉소주의, 허무주의, 한편으로는 심적 앙금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진보정치통합에 대해 “웃기네”, “잘 되겠냐?” “그 쌔끼들!”과 비슷한 심정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합해봐야 소용없다”거나, “잘 안된다”거나, 또 불신과 앙금이 너무 깊어서 정치세력들간의 통합방식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입니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민중정치세력’에 대한 관심도 멀어졌습니다. 다양한 이견들이 많은 상황인데, 노동자민중 투쟁의 성과가 유실되고 있다는 노동자민중정치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않고, 돈·표·사람을 갈라쳐서 각개약진으로 껍데기만 모으려 든다면, 제대로 성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각개약진하면 힘이 안 됩니다. 대중들은 정치적 허무주의·패배주의·앙금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개혁세력에 줄을 서고, 의탁하는 현실 아닙니까? 노동자민중정치세력이 자신의 기반을 든든히 다지면서 서민(일반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단결과 연대의 확장 태세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 제2정치세력화 방식은 민주노총 안에서 정치적 다원주의가 완강한데다가 이미 그런 시도가 두 차례나 실패한 건데요. 앞으로도 새로운 조건을 만들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치적 다원주의라는 건 말 그 자체로는 그럴싸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에게 줄 서는 것을 용인하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제각각 판자집 지어가지고 판자집 더 예쁘게 가꾸면서 자족하자“는 수준의 얘깁니다. 정치적 다원주의로 가게 되면 분립되어 있는 각 진보정당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도 가게 마련입니다. 현실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민중들의 이익이 파편화되면서, 아마도 일본과 미국의 정치판처럼 되어 가는 겁니다. 사실 이미 각각 다른 정당들을 만들어서 운영해 왔고 또 서로간에 노선상 다른 점이나 앙금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하나로 통합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노선차이란게 대동소이(大同小異)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일 서로 조금씩 다른 점들이 있다면,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연합정당방식으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총선까지 1년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이런 과제를 완수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걱정입니다. 촛불항쟁의 1차적 성공을 2차 촛불혁명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현재 노동자민중정치세력이 변방에 서있으면서 마치 “손따라 두는 바둑” 식으로 제각각 각개약진하니까 더 안되는 거죠. 앞서 말했듯이 정치적 허무주의·패배주의·앙금이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해소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을 허리에 매어서는 바느질이 안 된다’라는 속담이 있잖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다만 신속하게 거쳐야 합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적 검토가 되도록 요청하고 더 토론하고 노력해서 기초를 만들어 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동자민중세력의 사회운동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본래 사회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쟁과 교섭’의 변증법적 통합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투쟁과 교섭을 입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성과가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나마 자유주의 개혁정권시대에는 그런 방법을 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세력은 ‘투쟁’이라고 하면 광장이나 길거리 가두투쟁만 생각합니다. 협소한 시각인 것이죠, 그 뿐 아니라 ‘일상적 정치투쟁’, ‘담론투쟁’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강력한 투쟁은 사업장투쟁, 산업별투쟁, 거리투쟁, 정치투쟁 등이 입체적으로 배치될 때 위력을 발휘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투쟁에 기반하여 유효한 교섭을 추진해야 성과를 쟁취할 수 있는 겁니다. 유효한 교섭은 사업장교섭, 산업별교섭, 사회적 교섭이 중층적으로 입체적으로 배치될 때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사회적 교섭도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요구관철과 노동자민중정당을 통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해결 등으로 중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교섭”의 틀을 최상층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노사정대표자회의 등으로만 생각하면 협소한 시각입니다.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사회적 교섭을 만들어가는 핵심경로는 다양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사노위나 노사정대표자회의 등을 통해서는 그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사회적 교섭을 진행하고, 또 정치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등 문제의 성격에 맞는 다양한 경로를 입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참여거부전략의 위험성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96년 민주노총 총파업과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참여와의 관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이 노개위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법제도개선 의견을 내었으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노개위 회의에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김영삼 정부가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안을 날치기 처리했고, 이에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으로 맞받아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개위에 참가하면서 노개위에서의 논의내용을 매개로 한 전 조합원 교육과 홍보선전 그리고 사전투쟁 조직을 통해 투쟁을 준비해 왔기에, 날치기 통과에 대해 준비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과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쟁과 교섭의 변증법적 통합과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링에 올라서 한번 싸워 볼 생각도 않고 미리 “링에 오르게 되면 패배할 것”이라고 지레 단정 짓고 링에 오르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투쟁과 교섭의 병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경우 그 링이 기울어진 링이냐, 또는 링에서의 룰이 편파적인 거냐 등을 따지고 시정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참여조건으로 헌법과 국제법상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선결요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적폐토대를 바꾸는데 있어서, 그 토대를 바꿀 수 있는 노동자민중역량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입니다. 내적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제대로 성숙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노동자민중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방향으로의 사회변화를 희망하는 세력들이 아직 약하다는 거죠. 실사구시하면서 힘을 더 키워야 합니다.
또 하나는 현재와 같은 전환기 국면에서는 사회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사회운동, 노동자민중정치세력화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목표로 걸고 거리투쟁이나 정치투쟁을 통해서 이슈화시키고, 정치세력화를 통해서 공세적으로 일반시민(민중)들이 실감나도록 가시화시키면서 또 일반 시민(민중)들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걸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니까 대중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또 유효한 대안세력으로 가시화 되지 않아서 따라서 선택대상이나 고려의 대상도 잘 안 되는 상태라 좀 답답합니다."
- 경제상황이 안 좋은데,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시죠.
"문재인정부가 경제문제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혁신성장도 그렇고, 소득주도성장도 그렇고 다 ‘성장’에 중독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계경제는 지금 성장이 둔화되고 있잖아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게 최저임금 올린다고 금방 바뀌거나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신기루처럼 쫓아다니다가 금방 성과가 안나니까 다시 역주행 하는 것이 큰 문제인거죠. 혁신성장, 4차 산업혁명 어쩌고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게 일자리 줄어드는 걸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됩니다.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추세입니다. 핵심은 그걸 가지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에의 대응방향의 핵심문제는 고용감소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대책,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생기는 그 이익·이윤은 누구의 것이 되느냐 하는 2가지 문제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사회적 대응태세를 만들고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도 4차 산업혁명이 무슨 혁신성장의 동력이 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의 혁신성장을 거치면 결과적으로는 양극화가 더 심화 될 것이 뻔합니다. 여기에 어떻게 촛불세력이 사회적 통제를 만들 수 있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부동산, 주택문제도 우리나라 경제의 제일 큰 원죄적 문제입니다. 이런 원죄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주택개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주택소유자를 통제해야 하고, 현재 주택보유율이 103% 되는데 자가 보유율은 전국적으로는 57%, 서울은 47%쯤 되고 있으니, 이미 주택 숫자는 남아돌고 있는데, 무주택자는 너무 많은 상태인 겁니다. 그런데 주택과 건물이 투기의 대상으로 되니, 경제의 모든 잉여가 비생산적인 부동산으로 박히고 있는 거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주요 자원들이 생산적인 데로 안가는 겁니다. 투자가 건설로 집중되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이명박-박근혜 시절 최경환 등이 했던 주택투기·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의 후과를 다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시장내부의 분단문제가 굉장히 심각합니다. 옛날에는 ‘걱정이다’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혁파를 해야 한다’는 수준까지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을 얼치기정규직들이 반대하고 나섭니다. 큰 문제입니다. 광주형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잘못 대응하면 민주노총이 ‘공공의 적’이 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이미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전문가들조차도 광주형일자리를 수용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광주형일자리 문제는 구시대형 자동차산업의 중복 과잉투자를 조장해서 얼마 안있어 또 다른 큰 재앙을 잉태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또 자동차산업이 거의 모두 민주노총 사업장이고 민주노총이나 민주노총 산하조직이 노사민정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노사민정 합의라고 포장해서 선전하면서 마치 민주노총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반대해서 광주형일자리가 안되고 있다는 듯이 왜곡선전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미 청년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특히 번듯한 일자리가 별로 없는 지역 등에서는 선동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대표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노동시장내부의 이중구조, 노동자간 단절과 이중화 문제는 ‘사회연대임금전략’을 전체적으로 공세적으로 치고 나간다라든지, ‘원청-하청 공동교섭’, ‘동일업종 공동교섭’, ‘산별교섭’ 등을 통한 연대임금전략 추진 등 획기적인 구조변화정책, 실업, 미취업, 비정규 ‘노동자계급’에게 감동을 만드는, 그래서 사회전체에 감동을 확산시키는 노동운동의 획기적 정책변화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공세적으로 ‘원청-하청 공동교섭’을 진행해서 “원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으로 돌릴 용의가 있다”는 등의 계급연대임금전략을 해보는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계급연대임금전략의 시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연대임금전략으로 진화해 가야겠죠. 민주노총 노동조합들이 기업단위로 ‘전투적 경제주의’에 집중해왔던 노동운동방식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한계의 반발형태가 광주형일자리로 나타난 거죠. 엄청난 위기입니다. 아마도 젊은 청년노동자, 예비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광주형일자리를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자리를 매개로 노동자들을 경쟁시켜서 파멸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놓고 보아도 과잉생산체계를 조장하는 꼴이 되는 거고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설명은 길고 멀고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당장 감성적으로 또 실존적으로 광주형일자리가 굉장히 땡기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형일자리에 대해서 ‘찬반 구도’로 가면 본전도 못 찾습니다. 오히려 ‘원청-하청 공동교섭’의 틀을 짜고 ‘계급연대임금전략’으로 과감하게 방향 전환해야 합니다. 결국 노동운동의 전략과 가치의 대전환을 이룩하는 문제입니다."
-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 평화번영통일시대라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촛불의 가장 확실한 성과이며,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2018년 엄청난 변화의 촉매제가 촛불항쟁인 것이죠. 북미간 대화는 서로가 필요한 것이기에 아마 몇 가지 장애가 나타나더라도 그 길로 갈 겁니다. 우리가 촛불항쟁으로 인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고 보람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북 바로알기’를 하는 겁니다. 북에 대해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들이 가장 기본적인 우리 활동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 보면 잘못 주입된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이 살아 있고, ‘강대국 사이에서 남북이 통일돼야 그나마 우리 살길이 열린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측면을 다양하고 입체적 방향으로 잘 확장시켜 가는게 중요합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 북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습니다. 완전히 없애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대한 효과적으로 녹여가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의 감성과 결합해서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이 스며들 듯이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 마지막으로 2019년 진보연대사업 구상은 어떻습니까?
"핵심은 민중공동행동을 확대·강화하는 겁니다. 민주노총이 진보연대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중공동행동을 강화해야하는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정치세력화를 추동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노동자민중정치세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이견들이 많기때문에 신속하게 소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노동자민중의 공동투쟁은 좀 더 고도화되어야하고요. 가두투쟁을 포기할 수 없는 거지만 담론투쟁을 더욱 강화해야 되겠죠. 입체적으로 해 보려고 합니다."
선현희 기자 shh4129@gmail.com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