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채 / 재미동포
세계의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극적인 변화의 예를 들라면 쏘연방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 아닐까? 이 변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두 기존 공산블록에서 일어난 공산주의의 균열과 퇴조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결정적 세기의 변화의 배후에 두 중요한 지도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쏘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중국의 등소평이다. 두 인물의 됨됨이와 통치철학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필연적으로 잉태한 공산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두 지도자의 스스로의 성찰적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해빙의 무드와 더불어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바야흐로 세인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 회담 모두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핵무장화에 기인했지만 - 남북 정상회담이야 능히 예상할 수 있기에 논외로 하더라도 –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전격적 결단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이들을 동하게 하여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수용토록 했을까? 이는 지난 냉전의 마지막 후유증이 한반도에 고도로 응축되어 최대의 화약고가 된 채로 당사국들만이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기 두 경우를 비교컨대 공통점이 있다. 그간에 누적되고 악화되어온 기존의 상황에 의해 초래된 새로운 위급한 상황이 극에 달하자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스스로의 극적 변신을 통해 위기를 타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이다. 전자의 경우가 획일적 공산주의의 불가항력적 몰락과 퇴조 현상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괴멸적 군사적 대결이 초래할 한반도, 동북아 나아가 세계에 불어닥칠 대재앙을 사전에 견제코자하는 고육지책이다. 두 경우에서 공통되게 엿보이는 성찰적 건설적 지도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겠다.
한국전 이후 65년의 오랜 휴전상태에서 주변 4강국들의 대립과 남북한의 동족 간 대립이 중첩된 가운데 우리 민족은 피할 수 없는 한과 불운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다. 작금에 들어 북한의 핵무장과 더불어 군사적 대결은 극에 달했고 미국의 대북한 제제와 고립작전은 고질적 전쟁의 공포를 더욱 부채질하는 듯했다. 때문에 두 정상회담의 주요 목표는 우선 발등에 떨어진 전쟁부터 피하자는 분위기이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로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리라 상상해본 적이 없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된 가공할 무기들의 파괴력에 대해 이성과 양심이 있는 지도자라면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상되고 있는 두 정상회담의 의제가 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전쟁 억제만의 소극적 목표를 위한 정도라면 그다지 후한 평가나 큰 기대를 하고 싶지 않다.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이 이루었던 것처럼 무언가 보다 근원적 변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될 수는 없을까? 구태의 대결을 지양하고 항구적 평화의 틀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미국은 대한반도 및 대동북아 정책에 획기적 변화를 가해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도모하고 북한은 등소평의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을 본받아 기존의 공산사회주의를 일탈하여 사회민주주의식 체제를 발전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남북은 공동으로 더욱 진화된 미래지향적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창안하여 통일에 대비하겠다는 공감과 의지를 표명할 수는 없을까? 미국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한일 간 및 중일 간의 관계정상화를 지원하고 동북아에서의 자국의 중국 및 러시아와의 대립관계를 해소하며 항구적 평화체제를 한반도와 동북아에 근착시키기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미국의 21세기적 슈퍼 강국의 이상적 모습이 아닐까?
미국은 남북한의 대승적 체제의 수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북한과의 평화협정과 수교를 단행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통일을 적극 도모하며 나아가 한반도 주변국들의 군사적 대립관계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평화적 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집단안보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이 지역당사국들이 합동으로 집단평화유지군을 창설, 유지함으로서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 한미 군사동맹은 폐기되고 주한미군은 크게 축소되어 평화유지군의 일부로서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주요 당사국들은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평화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에 역행하는 전쟁이 이 지역에서 발발한다면 이는 결국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것이며 그 희생과 파괴는 인류문명을 100년 이상 후퇴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난 냉전의 산물인 구태의연한 공산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은 공산주의의 판정패로 끝났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은 존중되어야 하며, 이상적 체제로서 위상을 상실한 기존의 자본주의 또한 혹독한 비판 속에 근본적 개혁을 강요받아 온지 오래이다. 이제 인류의 시대적 과제는 인공지능시대( AI )에 걸맞는 보다 정교한 미래지향적 사회민주주의적 체제를 창안해 내는 일이다. 그 해결의 실마리를 한반도에서 찾아야 하며 그 주역을 우리 민족이 맡아야 한다. 그 대안체제는 당연히 통일한반도의 체제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 미정상회담은 이러한 미래지향적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원칙과 목표를 결론적, 선언적으로 공동선언문에 담아야 한다. 인류사회의 상징적 모범적 모델을 이 지역에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게 되면 이는 미래 인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군사적 대결을 평화체제로 전환키 위한 집단안보체제 또한 NATO와는 다른 성격의 완전히 새로운 시도이다. 작금의 과도기적 인류사회는 상생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사상과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한반도 불안정의 직접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은 성공적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 회피만의 소극적 합의가 아니라 이 지역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놓기 위한 적극적 합의에 진력하기 바란다.
서두에서 언급한 지난 역사적 변화의 두 경우는 모두 공산블록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제는 서방세계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혁명적 성찰적 변화가 후속되어야 한다. 이를 선도할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한 인간이 발전하려면 반성이 필요하듯 인류사도 중요한 계기를 통해 성찰적 정리정돈을 요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시사하는 바를 진정으로 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고르바초프가 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등소평이 되기 바란다. 그러한 진정한 발상의 전환만이 이상적 정상회담을 기하고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연착륙할 수 있는 불가역적 초석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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