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19일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이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작성한 협조 공문. 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삼성의 손실배상 산정 과정에서 해군은 검찰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 지휘를 요청한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군은 설명했다.
▶ 2013년 제주해군기지 공사 반대로 공사기간이 연장됐다며 삼성물산이 국가에 손실액 보상을 청구합니다. 몇 달 앞서 해군은 검찰에 공문을 보내 삼성의 손해액 산정 절차로 소송(공개)이 아닌 중재(비공개)로 사건 지휘를 요청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어떤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해군의 전략이었습니다. 해군과 삼성 사이엔 감춰야 할 공조 정황이 있었습니다. 해군-삼성은 적극적인 협조로 공사 반대에 대응했고, 협조 정황 공개를 막기 위한 ‘중재 작전’엔 법무부도 힘을 보탰습니다.
2013년 8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공문 한 장이 작성됐다. 발신자는 해군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기지건설사업단)이었다. 그달 19일 사업단에서 전결 처리됐다.
공문은 ‘시공사와의 분쟁에 있어서 중재 합의에 대한 검찰 지휘 요청 의견서’란 제목을 달았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삼성물산(항만 1공구 시공사)과의 분쟁을 검찰이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을 지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공사와 국가 사이의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소송 또는 중재에 의할 수 있으며, 중재에 의할 경우 (…) 양측 당사자 사이의 중재 (절차에 동의하는) 합의가 필요함. 중재의 경우 소송의 경우를 준용하여 검찰청의 지휘를 받도록 법률에 규정이 되어 있기에 중재 합의를 함에 있어서도 검찰청의 지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이 됨.”
분쟁은 제주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으로 발생한 삼성의 추가 비용 청구 건이었다. 해군은 공문에 붙임자료(‘공기연장 추가비용 지급 사안의 현황과 그 해결책의 검토-중재의 필요성’)를 딸려 보냈다. 자료엔 검찰이 중재로 지휘해야 할 ‘내밀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기지건설 반대에 맞서는 해군-삼성 간의 “적극적”이고 ‘공개돼선 안 될’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같은 편끼리의 귓속말’처럼 검찰에 설명됐다. 공사지연 배상금 규모를 다투는 분쟁 형식도 “긴밀한 협조” 정황의 노출을 차단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소송 아닌 중재로 지휘해달라”
“왜 소송으로 가지 않고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보냈는지 우리도 궁금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그때’(중재 절차 당시)를 회고했다. 2012년 5월16일 제주해군기지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발주처인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은 공기 변경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으로 ‘2010년 1월29일~2014년 7월28일’로 잡혀 있던 공사기간이 2015년 9월26일까지 늘어났다. 변경 직후 삼성은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금액으로 360억2916만4277원과 그 이자를 요구했다. 연장의 이유를 해군과 삼성은 기지건설 반대 시위에서 찾았다. 애초 양쪽 사이에 공기 연장의 책임규명 논란은 없었다. ‘반대시위로 입은 삼성의 피해액 산정’이 분쟁의 형식과 내용이었다.
2013년 8월 해군이 검찰에 공문
삼성 공사지연 손실액 산정 절차
소송 대신 “중재합의 지휘” 요청
“삼성과 협력정황 노출되면 안돼”
법무부 승인으로 해군 뜻대로 진행
상사중재원 판정문에 ‘협조’ 흔적
2012년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 지시
반대자들에게 ‘공사 불가역성’ 전시
7기 중 6기 파손 91억 국고 낭비
해군 “사실관계 답할 사항 아니다”
해군이 검찰에 요청한 대로 절차는 진행됐다. 삼성과 해군은 손해액 산정을 상사중재원에 판단을 맡겼다. 상사중재원은 중재법에 따라 설립(1966년 3월)된 상설 중재기관이다. 중재 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는다. 소송이 상대를 공박하며 승패를 겨루는 싸움이라면, 중재는 합의를 전제로 합의 내용을 정하는 과정이다.
2015년 6월18일 상사중재원은 해군이 삼성물산에 27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판정을 기초로 해군은 2016년 3월28일 기지 건설에 반대한 116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공기 연장 추가 비용 275억 중 34억4839만3880원을 해군은 반대시위 탓으로 계산했다.
소송이 아닌 중재를 통해 손해액 합의에 이른 데엔 해군의 ‘기획’이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간사)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한겨레> 취재로 확인됐다. 중재는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한 해군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군은 중재를 선택한 이유를 “소송과 비교할 때 법적 효력은 같되 처리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에 설명했다.
“삼성이 국책사업 과정에서 (공사 반대로) 손해를 입었고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란 사실은 우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문제는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인데 소송으로 가든 중재로 가든 효력은 같다. 소송이 몇 년씩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재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해군본부 공보과장·대령)
2012년 9월 초 제주 강정 앞바다에 가거치된 케이슨이 태풍에 파손돼 쓰러진 채 잠겨 있다. 원래 공정엔 없던 케이슨 가거치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군이 삼성에 지시(대한상사중재원 판정문)해 이뤄졌다. 연합뉴스
해군본부의 설명은 기지건설사업단이 검찰에 보낸 공문 붙임자료에도 언급돼 있다. “본 사안의 본질은 추가 비용에 대한 책임규명이 아니라 적정한 추가 비용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므로 소송보다는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해군이 설명하지 않은 ‘삼성과의 관계’가 있었다. 내용은 공문 붙임자료에 명시돼 있다. “제주민군복합항 건설 사업의 경우 해군과 시공사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응하여 긴밀히 적극 협조하여 왔음. 지금까지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해군이 협조를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시공사는 이해득실을 떠나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왔으며, 이는 추후 분쟁 발생시 (…) 상호 신뢰하여 이루어진 행위 등을 존중하고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신뢰하여 왔기에 이루어진 측면이 강함.”
검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해군의 논리에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① 해군기지 반대 시위 대응은 해군과 삼성의 공조 속에서 이뤄졌다. ② 이해득실을 떠난 삼성의 적극적 협조는 손해배상액 산정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군의 ‘중재 처리’를 기대하며 들어둔 일종의 ‘보험’이었다. ③ 공기 연장으로 삼성이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과는 삼성의 기대대로 처리됐다.
해군은 이 협력 관계가 소송에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러한 신뢰를 뒤로하고 (그간의 협조) 절차가 공개되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소송으로 분쟁을 해결할 경우 당사자 간의 이미지 및 신뢰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임.”
‘삼성과의 적극 협력’ 중엔 노출돼선 안 되는 정황들도 있다고 했다.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의 경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기에 소송에 의할 경우 그 액수가 큰 점을 고려하면 또다시 언론에 노출이 될 수가 있음. 언론에 노출이 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항과 대처사항 등 내부적으로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임.”
중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로 ‘비공개 심리’를 꼽기도 했다. “중재 절차는 일반인에게 비공개로 진행이 되기에 이러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를 요청한 ‘깊은 뜻’은 이랬다.
법무부까지 힘 보탠 비공개 전략
삼성이 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한 시점은 2013년 11월이었다.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 요청 공문을 보내고 3개월 뒤였다. 이미 정부-삼성-검찰 간에 중재 절차 합의가 끝난 뒤였다. “신청 접수는 분쟁 쌍방 간의 중재 절차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중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피신청인은 “대한민국(소관 해군)”이며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법률상 대표자로 명기됐다. 법무부는 2013년 9월10일 제주지검으로 공문을 발신했다. 해군의 뜻에 따라 ‘중재 지휘’ 수용을 요청한 제주지검에 법무부 차원에서 승인을 공식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중재 신청에 따른 비용 납입은 12월(사건개시)에 이뤄졌고, 1차 심리는 한 달 뒤인 2014년 1월에 열렸다.
해군본부는 삼성의 중재 요청도 해군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중재로 가기 위한 ‘세팅’도 해군이 했다는 뜻이다.
“삼성은 국가에 손해배상만 요구했지 소송과 중재 중 특정 절차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중재로 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은 우리가 했다. 우리 제안을 삼성이 받아들였다.”(공보과장)
검찰에 보낸 공문에서 해군은 다르게 설명했다. 해군은 삼성이 국가에 중재를 요청한 때가 2012년 12월(해군의 공문 발송 8개월 전)이라고 썼다. “(삼성의) 합의 요청서가 국가 측에 넘어온 이후에도 중재 절차가 타당한지, 타당하다고 해도 중재 합의를 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기관이 어디인지를 두고 8개월간 절차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고 했다. 해군은 “결국 중재 합의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이라는 결론이 내부적으로 내려졌으나 (…) 정부 내에서 절차를 지연시킨다고 (삼성이)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조속한 지휘”를 촉구했다.
<한겨레>에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에 중재를 제안한 해군이 삼성을 앞세워 검찰의 중재 지휘를 독촉하는 모양새다.
“언론에 공개돼선 안 될 내용이란 없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해군-삼성 간의 협조가 무엇인지 해군은 답변하지 않았다. 변남석(준장)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은 “더는 내가 답할 부분이 아니”라며 추가 설명은 해군본부로 넘겼다. 해군본부는 “우리의 공식 답변은 국책사업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지 그 부분에 해군이 답할 사항은 없다”(공보과장)고 했다.
해군이 함구하는 삼성과의 “긴밀한 협조” 중 하나가 상사중재원 판정문에서 확인된다. 2012년 3월부터 삼성물산은 케이슨 7기(수중 건설 기초공사에 주로 사용되는 상자 모양의 구조물)를 1공구 쪽 바다에 가거치(임시거치)했다. 그해 여름 세 개의 태풍이 잇달아 강정바다를 덮쳤다. 7월18일 태풍 ‘카눈’, 8월27일 태풍 ‘볼라벤’, 8월31일엔 태풍 ‘덴빈’이 케이슨을 때려 6개를 파손시켰다. 아파트 8층 높이(20여m 8885t)의 케이슨들이 망가진 채로 바다에 방치됐다. 그해 11월25일 삼성물산 예인선(45t급)이 새 케이슨 거치 작업을 마치고 회항하다 태풍에 깨진 케이슨과 부딪혀 침수됐다. 파손된 케이슨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포클레인이 바지선 위에서 부숴 밤바다로 밀어 넣는 장면도 목격됐다.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연산호 군락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상사중재원은 케이슨 가거치의 ‘숨은 목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케이슨 가거치는 애초 삼성물산의 공사 계획엔 포함돼 있지 않은 공정이었다.
“피신청인은 반대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상태에서 공정을 만회하고 반대 민원인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서 공기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 공동수급자(삼성물산)에 케이슨 가거치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삼성은 해군의 지시에 따라 7개의 케이슨을 가거치했다. ‘케이슨 가거치로 공정이 단축됐다’는 해군의 주장을 상사중재원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협력 결과 ‘국고 91억원 낭비’
강정 앞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해군은 시공사 선정 당시 입찰 안내서에 50년 빈도의 한계파고를 10.4m로 제시(상사중재원 판정문)했다. 가거치 때 삼성은 감리단 검토를 거쳐 그보다 높은 11.5m로 한계파고를 설정했다. 파도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케이슨을 파도 방향에 세로로 놓고 케이슨 사이에 이격을 두어 파압 감소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2년 태풍은 삼성의 대처를 넘어섰다. 50년 빈도의 파고를 초과하는 최대 12.3m의 파도가 덮치며 가거치된 케이슨들을 깼다. 케이슨 파손은 해군이 주장하는 가거치 이유(공정 단축)와 정반대로 공기 연장(케이슨 재제작 기간 77일)과 추가 비용(재제작 8억원+파손처리 83.33억원=91.33억원)을 발생시켰다. ‘공사의 불가역성’을 강변하기 위해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를 지시한 해군은 결국 ‘국고 91억원 낭비’란 결과를 낳았다. 해군은 “(사실 여부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이철희 의원은 지적했다.
“군과 시공사는 그간 있었던 은밀한 협조를 숨기기 위해 공개 절차인 소송이 아닌 공개되지 않는 타협인 중재로 하였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중재 절차는 국가와 기업이 짬짜미한 것으로, 그 부담을 국가가 공사 반대 주민과 시민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가 구상권 청구인 것이다.”
현재 대림산업(항만 2공구 시공사)도 해군과의 합의를 거쳐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대림이 국가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231억원이다. 삼성물산도 2차 배상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액수가 결정되면 해군은 강정 주민들과 단체들에 추가 구상금을 청구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