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먹고 사는 동굴 악어는 주황색으로 변색 중
아프리카 가봉 동굴서 박쥐와 귀뚜라미 주식, 바깥보다 건강상태 좋아
동굴 생활 맞춰 신체변화 없지만, 박쥐 배설물 잠겨 살아 피부 ‘표백’
» 동굴 속에서 사는 난쟁이악어(왼쪽)는 정글에 사는 동족과 달리 피부 빛깔이 박쥐 배설물에 의해 표백됐다.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난쟁이악어는 사하라 이남의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서부인 가봉, 감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사는 악어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종이다. 길이가 85㎝가 되면 번식을 하고 다 자라야 어른 키 정도로 작다.
덩치가 작아서인지 소심하고 야행성인 이 악어는 낮 동안 구덩이를 파고 숨어 휴식을 취한다. 종종 완전히 땅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개울이 흐르는 열대우림이 주 서식지이지만 건조한 초원지대의 웅덩이에서 살다 건기가 오면 땅을 파고들어 여름잠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난쟁이 악어의 습성에 비춰 아예 동굴 속에서 살 수도 있어 보인다. 먹을 것이 충분하다면 말이다.
» 난쟁이악어의 분포. 위키미디어 코먼스
탐험가인 올리비어 테스타는 2010년 동굴에 난쟁이악어가 산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가봉의 아반다 동굴을 탐사했다. “몸을 웅크려 동굴을 지나는데 갑자기 붉은 눈 두 개가 보이더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동굴에서 악어를 봤다고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악어는 건기에 개울이 마르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여름잠을 자러 땅속으로 대피하곤 한다. 이런 습성은 마다가스카르의 나일악어, 말레이시아 사라왁의 말레이가비알, 그리고 호주의 민물악어에서 보고된 바 있다.
» 연구자들이 아반다 동굴에서 난쟁이악어를 포획하는 모습.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놀라운 것은 난쟁이악어가 동굴에서 박쥐를 주식으로 삼아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스타는 미국 플로리다 대 악어 전문가인 매튜 셜리 등과 함께 과학저널 <아프리카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아반다 동굴계에 서식하는 난쟁이악어의 식성과 몸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모두 31마리의 난쟁이악어를 동굴 속에서 포획해 부위별 측정을 하고 표지를 했다. 또 무얼 먹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악어의 입을 벌리고 호스로 물을 주입한 뒤 위 내용물을 펌프로 뽑아내 분석했다.
동굴에는 수많은 박쥐가 날아다녔다. 동굴 벽엔 박쥐와 동굴 귀뚜라미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동굴 바닥엔 박쥐 배설물과 진흙이 뒤섞여 펄을 이뤘는데, 종종 박쥐가 떨어져 허우적거렸다.
» 수많은 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은 악어에게 뜻밖에 양호한 먹이터이다.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배설물의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는 이런 환경이 박쥐에게 매력적일까. 연구자들의 조사결과는 그랬다. 동굴 속에서 채집한 악어의 위 속에서 가장 많이 확인한 먹이는 동굴 귀뚜라미와 박쥐였다. 악어의 90.9%에서 귀뚜라미가, 63.6%에서 박쥐가 나왔다. 갑각류 등 다른 먹이는 미미했다. 크기와 영양분으로 볼 때 박쥐는 악어의 주요 먹이로 나타났다.
동굴 밖 숲 속 난쟁이악어의 위 속에서는 게, 새우, 가재 같은 갑각류와 곤충이 주로 많았는데 동굴 속 먹이와 겹치는 종류는 없었다. 연구자들은 “난쟁이악어가 동굴 바닥에 떨어진 박쥐를 붙잡거나 벽에 앉아있는 개체를 낚아채 잡아먹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몸의 크기와 성장 속도 등을 측정해 보니 동굴에 사는 악어의 건강상태가 동굴 밖 악어보다 오히려 좋았다. 연구자들은 동굴 안에 수만 마리의 박쥐가 사는 등 먹이가 풍부한 데다 온도변화가 적어 안정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으로 보았다. 개울이 마르는 건기에 숲 속 악어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 동굴 악어와 비교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포획한 정글 난쟁이악어.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동굴 난쟁이악어에서는 일반적인 동굴생물처럼 색소를 잃어 빛깔이 희게 되거나 눈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신체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눈길을 끈 건 성체 악어의 피부색이 주황색으로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표백의 결과일 것으로 추정했다. 동굴 바닥에 깔린 박쥐의 배설물은 강한 알칼리성을 띤다. 그곳에 잠겨 수년 동안 살면서 가죽이 옅은 빛으로 변색했다는 것이다.
난쟁이악어 일부는 벌목과 밀렵 위협이 있는 바깥 정글보다 어둡고 지저분하지만 안전하고 풍부한 먹이가 늘 공급되는 동굴 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악어가 바깥 악어와 완전히 고립돼 새로운 종으로 분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 악어가 우기 동안에는 과연 동굴 밖으로 나가서 짝짓기할지 또는 동굴을 아예 벗어나지 않을지는 아직 모른다. 또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립돼 어느 정도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tthew H. Shirley et. al., Diet and body condition of cave dwelling dwarf crocodiles (Osteolaemus tetraspis, Cope 1861) in Gabon,
African Journal of Ecology, DOI: 10.1111/aje.1236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동굴 생활 맞춰 신체변화 없지만, 박쥐 배설물 잠겨 살아 피부 ‘표백’
» 동굴 속에서 사는 난쟁이악어(왼쪽)는 정글에 사는 동족과 달리 피부 빛깔이 박쥐 배설물에 의해 표백됐다.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난쟁이악어는 사하라 이남의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서부인 가봉, 감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사는 악어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종이다. 길이가 85㎝가 되면 번식을 하고 다 자라야 어른 키 정도로 작다.
덩치가 작아서인지 소심하고 야행성인 이 악어는 낮 동안 구덩이를 파고 숨어 휴식을 취한다. 종종 완전히 땅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개울이 흐르는 열대우림이 주 서식지이지만 건조한 초원지대의 웅덩이에서 살다 건기가 오면 땅을 파고들어 여름잠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난쟁이 악어의 습성에 비춰 아예 동굴 속에서 살 수도 있어 보인다. 먹을 것이 충분하다면 말이다.
» 난쟁이악어의 분포. 위키미디어 코먼스
탐험가인 올리비어 테스타는 2010년 동굴에 난쟁이악어가 산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가봉의 아반다 동굴을 탐사했다. “몸을 웅크려 동굴을 지나는데 갑자기 붉은 눈 두 개가 보이더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동굴에서 악어를 봤다고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악어는 건기에 개울이 마르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여름잠을 자러 땅속으로 대피하곤 한다. 이런 습성은 마다가스카르의 나일악어, 말레이시아 사라왁의 말레이가비알, 그리고 호주의 민물악어에서 보고된 바 있다.
» 연구자들이 아반다 동굴에서 난쟁이악어를 포획하는 모습.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놀라운 것은 난쟁이악어가 동굴에서 박쥐를 주식으로 삼아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스타는 미국 플로리다 대 악어 전문가인 매튜 셜리 등과 함께 과학저널 <아프리카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아반다 동굴계에 서식하는 난쟁이악어의 식성과 몸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모두 31마리의 난쟁이악어를 동굴 속에서 포획해 부위별 측정을 하고 표지를 했다. 또 무얼 먹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악어의 입을 벌리고 호스로 물을 주입한 뒤 위 내용물을 펌프로 뽑아내 분석했다.
동굴에는 수많은 박쥐가 날아다녔다. 동굴 벽엔 박쥐와 동굴 귀뚜라미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동굴 바닥엔 박쥐 배설물과 진흙이 뒤섞여 펄을 이뤘는데, 종종 박쥐가 떨어져 허우적거렸다.
» 수많은 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은 악어에게 뜻밖에 양호한 먹이터이다.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배설물의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는 이런 환경이 박쥐에게 매력적일까. 연구자들의 조사결과는 그랬다. 동굴 속에서 채집한 악어의 위 속에서 가장 많이 확인한 먹이는 동굴 귀뚜라미와 박쥐였다. 악어의 90.9%에서 귀뚜라미가, 63.6%에서 박쥐가 나왔다. 갑각류 등 다른 먹이는 미미했다. 크기와 영양분으로 볼 때 박쥐는 악어의 주요 먹이로 나타났다.
동굴 밖 숲 속 난쟁이악어의 위 속에서는 게, 새우, 가재 같은 갑각류와 곤충이 주로 많았는데 동굴 속 먹이와 겹치는 종류는 없었다. 연구자들은 “난쟁이악어가 동굴 바닥에 떨어진 박쥐를 붙잡거나 벽에 앉아있는 개체를 낚아채 잡아먹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몸의 크기와 성장 속도 등을 측정해 보니 동굴에 사는 악어의 건강상태가 동굴 밖 악어보다 오히려 좋았다. 연구자들은 동굴 안에 수만 마리의 박쥐가 사는 등 먹이가 풍부한 데다 온도변화가 적어 안정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으로 보았다. 개울이 마르는 건기에 숲 속 악어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 동굴 악어와 비교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포획한 정글 난쟁이악어. Olivier Testa (www.abanda-expedition.org)
동굴 난쟁이악어에서는 일반적인 동굴생물처럼 색소를 잃어 빛깔이 희게 되거나 눈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신체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눈길을 끈 건 성체 악어의 피부색이 주황색으로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표백의 결과일 것으로 추정했다. 동굴 바닥에 깔린 박쥐의 배설물은 강한 알칼리성을 띤다. 그곳에 잠겨 수년 동안 살면서 가죽이 옅은 빛으로 변색했다는 것이다.
난쟁이악어 일부는 벌목과 밀렵 위협이 있는 바깥 정글보다 어둡고 지저분하지만 안전하고 풍부한 먹이가 늘 공급되는 동굴 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악어가 바깥 악어와 완전히 고립돼 새로운 종으로 분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 악어가 우기 동안에는 과연 동굴 밖으로 나가서 짝짓기할지 또는 동굴을 아예 벗어나지 않을지는 아직 모른다. 또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립돼 어느 정도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앞으로의 연구과제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tthew H. Shirley et. al., Diet and body condition of cave dwelling dwarf crocodiles (Osteolaemus tetraspis, Cope 1861) in Gabon,
African Journal of Ecology, DOI: 10.1111/aje.1236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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