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중국대장정(02) – 티베트 사원 동죽림과 메이리설산 관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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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고성에서 214번 국도를 따라 서북쪽 방향 289km를 가야 옌징(盐井)이 있다. 도로상태가 좋아 7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그 옛날 차마고도를 개척한 마방은 얼마나 걸렸을까 궁금하다. 직접 말을 몰고 가지 않고서야 고단한 여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랜드크루저로 달린지 1시간 즈음 시구이대교(西归大桥) 앞에서 멈춘다. 맞은편 민둥산에 자란 나무가 푸르러 그나마 산다워 보인다. 뱀이 다닌 것처럼 하얗게 닦아놓은 길이 아마도 마방의 길인 듯. 협곡을 따라 산을 넘어가야 했던 차마고도의 흔적이다. 작은 가게 옆에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낯선 이방인의 말투가 낯설었는지 아이는 그저 표정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쯔란(奔子栏) 마을에 다다른다. 티베트 말로 ‘금색의 모래 섬’이라고 한다. 이름이 입에 잘 붙어서인지 마을이 친근하다. 차마고도의 요충지로 행정구역상 진(镇)이다. 기초단위인 향(乡)보다는 좀 크다. 식당에서 주문한 점심을 기다리는데 승려의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쏜살같이 차가 달려오는데도 무심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고 평화롭기조차 느껴진다. 낯선 지방에서 맛보는 여행자의 특권이기도 하리라.
구불구불 좌우로 달리는 차에서 오른쪽 창문을 연다. 가파른 산비탈에 유난히 반짝이는 금빛 건물이 보인다. ‘신선이 기르는 학이 노니는 호수’라는 별명이 붙은 동죽림(东竹林)이다.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사원의 지붕이 대낮의 햇살을 제대로 흡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막이인 설산을 등지고 있어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은 명당자리’라고 들었는데 딱 그렇게 위치한다.
수쑹촌(书松村) 마을답게 아담한 사원답게 입구도 투박한 나무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니룬(玛尼轮)도 5개 뿐이다. 빙글빙글 돌리고 들어선 마당에 서니 4층 높이의 목조건물이자 본전인 대경당(大经堂)이 자리잡고 있다. 백토의 벽 창문의 가림 천 문양은 봉건시대 정전제 봉토처럼 아홉 등분된 모양이 이채롭다. 실내는 송경처(诵经处)인데 양팔로 껴안아야 할 만큼 커다란 나무기둥이 82개가 조밀하게 박혀 있다.
정면에는 겔룩파의 창시자인 총카파(宗喀巴)와 제자인 자차오제(嘉曹杰)와 커주제(克珠杰) 불상이 위치하는데 이를 ‘사도(师徒) 삼존’이라 부른다. 많은 문하생이 있었지만 ‘8대 제자’가 유명하다. 그 중 수제자들이다. ‘달라이라마’는 16세기의 정교합일의 법왕 소남가초(索南嘉措, 3세 달라이라마)가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몽골 칸을 방문했을 때 얻은 존칭이다. ‘가초’를 몽골어로 위대하다는 의미를 내포한 ‘달라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다’라는 뜻이다. ‘라마’는 스승이니 소남가초를 예우했던 표현이다. 이후 후계자인 롭상가초(罗桑嘉措)가 티베트를 통일하고 정식으로 달라이라마 5세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총카파의 8대 제자 중 겐둔드룹(根敦朱巴)을 1세 달라이라마로 소급해 존칭했다.
동죽림을 ‘동쪽에 있는 대나무 사원’이라고 직역하거나 오해한다. ‘자기를 이롭게 하고 타인도 이롭게 한다.’는 이리(二利)의 사상을 담고 있다. 활불이 10명이 넘고 승려 700 여 명이 거주한 사원이다. 사원 3면은 승려가 거주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사원답게 시설은 초췌하다. 대경당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한가운데 자리 잡은 무대는 낡았지만 노랗기도 하고 갈색이 연하게 번져 담백한 단청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럽고 따뜻해 보인다. 백열전구가 곳곳에 걸려 있다. 램프로 바라본 사원 휘장이 투명하다.
바이마설산(白马雪山)을 관망하면서 차가 달린다. 해발 4,292m 지점에 이른다. 음료와 과자를 파는 가게 창문에 걸터앉은 소녀는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다. 사면 사고 말면 말라는 식이다. 불경을 새긴 오색 천이 만국기처럼 긴 줄에 나부낀다. 이를 타르초라 부르는데 불심이 널리 초원에 퍼져나가길 염원하는 것이다. 티베트 문자로 ‘옴마니팟메훔’을 색색이 새긴 마니석도 놓여 있다. 이 고개가 샹그릴라와 옌징이 있는 더친(德钦)의 경계다. 어느덧 오늘 일정의 반을 달려왔다.
이제 티베트 사람이 신성시하는 아름다운 메이리설산(梅里雪山)을 향해 간다. 국도를 벗어나 10여 분 달려 설산을 조망하는 관망대로 들어선다. ‘메이리’라는 말은 ‘약산(药山)’이란 뜻으로 약재가 풍부하다고 알려진다. 메이리설산은 약 150km에 이르는 산맥이다. 주봉은 6,740m로 아직도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처녀봉이다.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신성’한 장소이다. 관망대에는 티베트 불탑인 초르텐이 13개 서 있는데 봉우리 숫자에 맞춰 예우하는 것이다. ‘태자 13봉(太子十三峰)’이라 불리는 봉우리는 모두 해발 6,000m가 넘는다. 그래서 태자를 영빈한다는 뜻으로 ‘영빈 13탑(迎宾十三塔)’이라 불린다.
일몰에 오면 봉우리에 비친 붉은 노을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는데 아쉽게도 구름에 가려 13개 봉우리 정상을 보기 어려웠다. 하늘은 코발트이건만 풍선처럼 부푼 구름이 가리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탓인가 자책도 해본다. 메이리설산은 도보여행이나 등반 코스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간혹 등반 사고도 전해지는데 그만큼 오르고자 하는 욕구를 가득 풍기는 명산이다.
초르텐 옆으로 룽다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붉고 파랗고 노랗고 푸르고 하얀 오색찬란한 깃발이다. 중국인은 룽다를 풍마기(风马旗)라 부르는데 바람처럼 달리는 말을 상상한 것인지 모른다. 마방처럼 달리고 싶은 룽다는 제 자리에 서서 불경의 뜻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 하늘 향해 사진을 찍으니 연회색의 구름이 보색의 효과를 드러내듯 더욱 선명하다. 이 화사하게 번지는 보색대비의 룽다에 어찌 반하지 않을 것인가? 독수리처럼 하늘을 향하지만 사실은 차마고도를 따라 달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티베트의 역사는 바람처럼 변한 적이 없는 룽다처럼 초원 위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시 2시간을 달리면 란창강협곡(澜沧江峡谷)에 이른다. 윈난과 티베트를 거치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나란히 흐르는 세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차마고도의 운명이다. 동쪽부터 금사강(金沙江), 란창강, 노강(怒江)이다. 이를 삼강병류(三江并流)라 부른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산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면 강을 가깝게 볼 수 있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협곡, 검붉은 황토가 흐르는 강물도 시야에 들어온다.
협곡을 만나면 말과 함께 건너야 하는 마방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세월이 지나며 차츰 노하우가 생겨 위험천만한 일은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가까이 가면 공포스러운데 그 당시는 어땠을까? 차마고도가 형성된 것은 당나라 시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 고원에는 야크를 비롯해 동물의 젖이 대부분이라 지방 영양분만 가득했다. 그래서 푸얼차(普洱茶)를 섞어 만든 쑤여우차(酥油茶)가 생겨났다. 비타민을 공급하는 차가 외부로부터 유입되면서 교환이 생기고 길이 생긴 것이다.
마방은 몇 달씩 걸리는 차의 운반을 위해 지혜를 발휘했다. 발효차인 푸얼차를 둥글게 만든 병차(饼茶) 하나의 무게는 357g이다. 말의 오른쪽 왼쪽에 84개씩 각각 30kg의 무게로 균형을 맞춘다. 한번 행군으로 차를 옮겨야 했던 마방은 적은 양보다는 많으면 좋을 것일 터. 너무 무겁지도 않은 푸얼차의 표준은 곧 차마고도가 만든 피이자 땀이다. 목숨을 걸고 협곡을 넘어야 하는 말과 마방의 공로이다. 그렇게 전달된 차는 티베트 사람의 주식이 됐고 영양분이 돼 지금도 하루에 10잔 이상 마시는 음료이자 생명수이다.
60kg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걷던 말은 이제 사라졌다. 그 옛날 굽이굽이 흐르는 란창강을 따라 힘차게 걷는 머나먼 행로가 떠오른다. 란창강을 거슬러 다시 시속 80km로 국도를 달린다. 황갈색 강물이 끊임없이 시야에 머문다. 강물 색깔은 산의 토양과 밀접하다. 누렇기도 하고 붉기도 한 황량한 산이 연이어 나타난다. 산자락에는 나무들이 거센 토양을 뚫고 푸릇푸릇한 색깔을 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황폐한 느낌을 조금 상쇄하고도 남는다.
드디어 티베트의 보물, ‘천 년 소금밭’이 있는 옌징에 이른다. ‘시짱옌징첸넨구옌텐징취(西藏盐井千年古盐田景区)’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특별한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바로 행정구역으로 티베트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마고도의 흔적이 살아있는 티베트 남부지역은 외국인 여행객에게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렵게 허가를 받아 옌징으로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여권과 허가증을 확인하는 동안 검문소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마조마하다.
현지 가이드나 지인들조차 정말 옌징을 들어간다는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드디어 검문을 통과해 당당하게 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스름이 내리고 점점 날이 어두워지는데 창문 사이로 살포시 드러난 한 집안의 불빛이 아름답다. 불빛 덕분에 민속적인 문양이 완연하게 보인다. ‘금단의 땅’에 들어선 것이다.
최종명 중국문화 전문작가이자 강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중국 방방곡곡을 취재하고 있다. 한겨레 테마여행 동행작가로 활동하며 현장강좌가 포함된 중국문화여행을 기획해 진행 중이다. 한겨레TV ‘차이나리포트’, EBS세계테마기행 등에 출연했다. 저작으로 ‘꿈 꾸는 여행, 차이나’(2009), ‘13억 인과의 대화’(2014), ‘민,란’(2015)이 있다.
최종명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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