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무릎 꿇었다? 순진한 생각인 이유
[주장] 최순실 게이트를 주도하는 진짜 세력, '조선'과 '친이계'16.11.01 10:05최종 업데이트 16.11.01 11:00글: 손우정(roots96)편집: 손지은(93388030)이 기사 한눈에
- 'BBK 무혐의 검사' 최재경이 신임 민정수석에 오른 건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에게 무릎꿇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 최순실 게이트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바로 보수 신문과 친이계가 설계한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다.
- 국민적 분노가 보수 정권 재창출에 이용되지 않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눈을 부릅 뜨는 수밖에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인사하고 있다. 2016.10.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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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다. 박근혜는 결국 패배를 시인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지럽게 등장했던 각종 의혹과 추궁 앞에, 청와대는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국민은 아니다. <조선일보>와 친이계다.
많은 이들이 JTBC의 10월 24일 태플릿 PC보도,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와중에도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의 반응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으레 나오는 막무가내 정권 감싸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의혹의 근거가 명확하고 참담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언론계와 정치권에서는 '전혀'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 소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들의 '입장변화'가 전형적인 '기회주의'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병우를 둘러싼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힘겨루기로만 보기에는, 전광석화 같았다. JTBC 방송 바로 다음 날 직접 사과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모습도 일상적이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빨랐다. 마치 언론에서 보도된 딱 그 수준까지에서 멈춰달라는 듯이 보였다.
무엇이 더 기다리고 있길래? 소시민이 거기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더 엄청난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딱 여기까지만'이라고 읍소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 사단이 앞장 서 '대통령 하야'에 동조하고, 보수층에게 '반발하지 말 것'를 암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키는 친이계와 <조선>이 쥐고 있다
▲ 신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최재경 변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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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청와대는 '최순실 라인'을 걷어내고 우병우가 있던 민정수석 자리에 검찰 출신 최재경을, 홍보수석에 배성례를 앉혔다. 이 중 최재경을 인선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 무릎 꿇은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메시지다.
검찰과 <조선일보>에 다양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최재경은 야권에서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최재경을 인선한 건 오직 <조선일보>와 친이계를 향한 항복 선언이다. 청와대가 이 사건의 본질을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조선>과 친이계를 한축으로 한 내부 권력 투쟁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최재경은 <조선일보> 편집장 출신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이자, 친이계이자 <조선일보> 출신인 최구식 전 새누리당 의원과도 사촌이다. 이 인선이 반정권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조선일보>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조선>에게 청와대를 넘겨준 것이다.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 있을 때 BBK 주가 조작 사건을 맡으면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무혐의 판정을 내렸고, 2009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맡아 무혐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선은 친이계에 대한 항복 선언이기도 하다.
반면, 2008년에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수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을 구속시킨 인물이라는 점에서 야권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화해와 사과 제스쳐는 결코 아니다.
결국 최재경의 인선은 청와대의 대조선, 대친이계에 대한 항복선언이자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수세력의 다음 수순
만일 보수언론을 위시한 이들이 이 판에서 끌려 다닌 게 아니라 오히려 이 판을 설계했다면, 이제 그들은 어떤 수순을 택할 것인가? 여러 경우의 수가 있지만 기본 윤곽은 드러나고 있다.
가장 첫 단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상스런 지난 일주일이 보여주듯이 이 전략은 매우 크게 성공했다. 이제 박근혜 세력은 여권 내에서 고립됐다. 강한 대중적 반감을 무기로,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각종 카드를 무기로 그들은 순순히 퇴로로 향해가고 있다. 박근혜를 지지하던 그룹들은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남은 것은 끔찍한 이 상황을 구원해 줄 새로운 메시아의 등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홀려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간 주범을 '최순실 라인'으로 몰아세우고, 이제 이들만 걷어내면 다시 평화로운 보수세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와 기대감을 던져 준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보수층의 심리가 어떨까? 4년 동안 나라를 말아먹었으니 이제 차기 대선은 야권에 넘기자고 생각할까? 아니다. 그들은 오직 이 믿기 싫은 현실의 고통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친이계와 손잡은 <조선일보>가 만들어 보여줄 것이다.
그들이 거침없이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장애물은 최순실 게이트 띄우기로 제거될 것이다. 친박의 대다수는 탈출할 것이고, 남은 이들은 고립될 것이다. 약간의 반발이 터져 나올 수도 있지만 분노에 가득 찬 여론과 숨겨놓은 다음 증거들로 충분히 진압 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사분란한 지휘아래, 질서정연한 새로운 청와대, 새로운 국가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화하는 것에는 관심없고 오직 정치적 욕심에만 불타는 무능 세력'으로 프레임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판은 <조선일보>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최순실이 내려간 굿판에 그들이 뛰어 올랐다.
새로운 판이 열렸다, 두 눈 부릅떠야 한다
▲ 31일 오전 청와대 인근에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참모진 인적쇄신을 단행했으며 최씨는 이날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2016.1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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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보수의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에 대응할 우리의 역량이다.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이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하야'를 종용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반발이 어디에서 멈춰질 수밖에 없는지를. 그들은 국민의 분노와 항거가 정확히 2008년 명박산성 앞에 멈춰선 것처럼, 대통령 하야의 항거도 어느 선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고 정확히 계산해 놓고 있을 것이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시기, 야권이 어떻게 움직일 수밖에 없을지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1987년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할 때도, 선언 발표 이전에 보안사와 안기부 등 각종 정보기관에서는 야권 후보단일화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민주화 수용'은 이처럼 철두철미한 사전조사와 판단 하에서 가능했던 결과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점진적인 역량 쇠진과 지독스런 내부 갈등과 분열.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일관되게 저항해 오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광화문 경찰 차벽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분노의 한계를 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에 대응할 방법은 복잡한 정치적 셈법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묵직하게 한 길을 가는 국민의 힘밖에는 없다. 국민의 분노가 어이없게도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에 휘둘리지 않도록 모여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상시국회의' 같은 틀이라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각자가 골방에서 전략을 고심하는 것을 넘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전형화된 틀을 넘어, 과거 어느 지점으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야할 길과 전망을 함께 그리는 틀이라도 필요하다.
문제는 과거에 우리가 머무른 지점에서,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이들이 예상한 지점을 얼마나 넘어설 수 있느냐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 고리타분한 세력 다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세력, 지향으로 보수집권 시나리오에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다.
모두가 시험대다.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여권도, 정권 교체를 노리는 야권도, 정의로운 심판을 원하는 국민들에게도 향후 정국은 불확실성이 휩싸여 있다. 이 시기를 흘려 보낸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은 없다. 두 눈 부릅뜰 일이다. 새로운 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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