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동물 배설물 사라지자, 지구 영양균형 흔들
멸종과 남획으로 '거대 배설물' 줄자 영양분 수송 90% 이상 급감
고래, 바닷새, 연어 등은 바다에서 육지로 양분 순환시키는 주요 통로
» 길이 30m, 몸무게 180t에 이르는 대왕고래는 지구에 존재한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 심해의 크릴을 하루 3.6t까지 잡아먹고 바다 표면에 배설해 바다밑의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지만 남획으로 99% 이상의 개체수가 줄었다. 사진=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바위 속 광물이 풍화하고 침식되면서 녹아나온 영양물질은 결국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가고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는다. 그렇게 굳은 해저 퇴적암은 해양 지각이 되어 대륙 밑으로 파고든 뒤, 화산활동과 지각변동과 함께 땅위로 돌아온다. 식물의 필수영양소인 인 등 영양물질은 이렇게 순환하며 지구를 돈다.
그러나 수억년이 걸리는 이런 긴 순환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생물은 생명활동을 통해 영양물질을 짧은 시간 동안 순환시킨다. 거대 동물은 이 과정에서 핵심 구실을 한다.
고래는 바다 밑 100m 수심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잡은 뒤 바다 표면에서 배설하면서 심해의 풍부한 영양물질을 바다 표면으로 옮긴다. 연어처럼 바다에서 자란 뒤 강으로 거슬러 올라 번식하고 죽는 물고기는 바다 영양물질을 육지로 나르는 효율적인 수송수단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고래는 바다의 농부, 영양 듬뿍 배설물이 '거름')
» 약 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까지 매머드 등 다양한 거대 초식동물이 육상 생태계를 지배했다. 그림=Mauricio Antón, 위키미디어 코먼스
바다와 육지 사이뿐 아니라 육지 안에서도 거대 동물은 넓은 범위를 옮겨다니며 막대한 양의 배설물을 흩뿌려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기능을 해 왔다. 적어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플라이스토세의 대량멸종 사태를 겪으면서 거의 모든 대형 초식동물은 사라졌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남획으로 고래와 연어 등의 개체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대규모 영양 수송 수단이 멈춘 지구 생태계는 무사할까.
» 여러해 동안 바다에서 자란 뒤 강 상류에 돌아와 번식하고 죽는 연어는 바다 영양물질을 육지로 순환시키는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한다. 알래스카 번식지로 거슬러 오르는 홍연어 무리. 사진=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크리스토퍼 도티 영국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 박사 등 국제연구진은 26일치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거대 동물의 영양물질 순환 능력이 90% 이상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바다와 대륙 내부에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지구생태계의 펌프가 작동을 거의 멈춘 상태라고 연구자들은 진단했다.
몸집과 이동 범위 면에서 영양분 수송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동물은 고래다. 길이 30m에 몸무게가 180t에 이르는 대왕고래는 낮 동안 바다 밑 100m 깊이에 숨어 있는 크릴을 하루 3600㎏까지 잡아먹고 물 표면에서 배설한다.
1970년대 대왕고래의 포획이 중단되기까지 최대 서식지인 남극해에서만 33만 마리가 포획돼 남은 개체수는 애초의 0.15%로 줄었다. 지난 300년 동안 세계의 고래는 66~90% 줄었다. 연구자들은 고래와 다른 해양동물이 과거보다 77% 줄어들면서 이들이 심해에서 표면으로 옮기던 영양물질은 3억 4000만㎏에서 7500만㎏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 과거 거대 동물이 바다와 육지, 육지 안에서 영양분 순환을 하던 잠재량 및 현재 감소폭.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연어 등 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는 고래 다음으로 영양물질 수송에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그 양은 1억 4000만㎏이었지만 96%가 줄었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는 배설물보다는 몸 자체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주검이 육상 생태계를 살찌우는 영양분이 된다.
매머드를 비롯해 구석기시대 육지를 어슬렁거리던 거대 동물들도 18만㎏의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노릇을 했지만 92%가 멸종했다. 특히 자동차 크기의 나무늘보 등 거대 초식동물이 15종으로 가장 많았던 남아메리카는 이들이 모두 멸종하면서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기능이 사실상 중지됐다.
» 육상 대형 초식동물에 의한 영양물질 수송 변화. 맨 위가 과거, 가운데가 현재, 맨 아래는 과거 대비 변화율.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주 저자인 도티 박사는 “과거에 동물은 영양분의 이동에 중요한 구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동물이 지구를 비옥하게 유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멸종과 개체수 감소로 이런 기능을 과거보다 10% 이하로 줄어들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식물의 필수영양소인 인은 현재 인광석에서 채취한다. 그러나 채굴 가능한 양은 앞으로 5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경작지 가운데 30%는 인 부족을 겪고 있으며, 반대로 일부 지역은 인 과다로 부영양화 문제를 안고 있다. 대안은 뭘까.
» 바다에서 육지로 나르는 인의 양(단위는 연간 평방킬로미터 당 킬로그램). 위는 연어, 아래는 바닷새.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연구자들은 고래와 물개 등 대형 해양동물과 영양분 수송에 큰 구실을 하는 바닷새의 보전과 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닷새는 육상 대형 초식동물이 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630만㎏의 영양물질을 바다에서 육지로 옮긴다.
멸종한 대형 초식동물을 가축이 대신할 수는 없을까. 연구자들은 이미 가축의 생물량은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을 넘어섰지만 이를 대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축은 좁은 지역에 갇혀 있어 고농도의 배설물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 넓은 생태계에 고루 퍼지지 않는다. 또 가축은 단일종이어서 생태계에 적합한 다양한 종이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자들은 가축 종을 다양화하고 방목하는 방식은 일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opher E. Doughty et. al., Global nutrient transport in a world of giants, PNAS, doi: 10.1073/pnas.1502554112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5/10/23/15025541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고래, 바닷새, 연어 등은 바다에서 육지로 양분 순환시키는 주요 통로
» 길이 30m, 몸무게 180t에 이르는 대왕고래는 지구에 존재한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 심해의 크릴을 하루 3.6t까지 잡아먹고 바다 표면에 배설해 바다밑의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지만 남획으로 99% 이상의 개체수가 줄었다. 사진=미 국립해양대기국(NOAA)
바위 속 광물이 풍화하고 침식되면서 녹아나온 영양물질은 결국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가고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는다. 그렇게 굳은 해저 퇴적암은 해양 지각이 되어 대륙 밑으로 파고든 뒤, 화산활동과 지각변동과 함께 땅위로 돌아온다. 식물의 필수영양소인 인 등 영양물질은 이렇게 순환하며 지구를 돈다.
그러나 수억년이 걸리는 이런 긴 순환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생물은 생명활동을 통해 영양물질을 짧은 시간 동안 순환시킨다. 거대 동물은 이 과정에서 핵심 구실을 한다.
고래는 바다 밑 100m 수심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잡은 뒤 바다 표면에서 배설하면서 심해의 풍부한 영양물질을 바다 표면으로 옮긴다. 연어처럼 바다에서 자란 뒤 강으로 거슬러 올라 번식하고 죽는 물고기는 바다 영양물질을 육지로 나르는 효율적인 수송수단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고래는 바다의 농부, 영양 듬뿍 배설물이 '거름')
» 약 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까지 매머드 등 다양한 거대 초식동물이 육상 생태계를 지배했다. 그림=Mauricio Antón, 위키미디어 코먼스
바다와 육지 사이뿐 아니라 육지 안에서도 거대 동물은 넓은 범위를 옮겨다니며 막대한 양의 배설물을 흩뿌려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기능을 해 왔다. 적어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플라이스토세의 대량멸종 사태를 겪으면서 거의 모든 대형 초식동물은 사라졌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남획으로 고래와 연어 등의 개체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대규모 영양 수송 수단이 멈춘 지구 생태계는 무사할까.
» 여러해 동안 바다에서 자란 뒤 강 상류에 돌아와 번식하고 죽는 연어는 바다 영양물질을 육지로 순환시키는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한다. 알래스카 번식지로 거슬러 오르는 홍연어 무리. 사진=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크리스토퍼 도티 영국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 박사 등 국제연구진은 26일치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거대 동물의 영양물질 순환 능력이 90% 이상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바다와 대륙 내부에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지구생태계의 펌프가 작동을 거의 멈춘 상태라고 연구자들은 진단했다.
몸집과 이동 범위 면에서 영양분 수송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동물은 고래다. 길이 30m에 몸무게가 180t에 이르는 대왕고래는 낮 동안 바다 밑 100m 깊이에 숨어 있는 크릴을 하루 3600㎏까지 잡아먹고 물 표면에서 배설한다.
1970년대 대왕고래의 포획이 중단되기까지 최대 서식지인 남극해에서만 33만 마리가 포획돼 남은 개체수는 애초의 0.15%로 줄었다. 지난 300년 동안 세계의 고래는 66~90% 줄었다. 연구자들은 고래와 다른 해양동물이 과거보다 77% 줄어들면서 이들이 심해에서 표면으로 옮기던 영양물질은 3억 4000만㎏에서 7500만㎏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 과거 거대 동물이 바다와 육지, 육지 안에서 영양분 순환을 하던 잠재량 및 현재 감소폭.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연어 등 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는 고래 다음으로 영양물질 수송에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그 양은 1억 4000만㎏이었지만 96%가 줄었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는 배설물보다는 몸 자체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주검이 육상 생태계를 살찌우는 영양분이 된다.
매머드를 비롯해 구석기시대 육지를 어슬렁거리던 거대 동물들도 18만㎏의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노릇을 했지만 92%가 멸종했다. 특히 자동차 크기의 나무늘보 등 거대 초식동물이 15종으로 가장 많았던 남아메리카는 이들이 모두 멸종하면서 영양물질을 분산시키는 기능이 사실상 중지됐다.
» 육상 대형 초식동물에 의한 영양물질 수송 변화. 맨 위가 과거, 가운데가 현재, 맨 아래는 과거 대비 변화율.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주 저자인 도티 박사는 “과거에 동물은 영양분의 이동에 중요한 구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동물이 지구를 비옥하게 유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멸종과 개체수 감소로 이런 기능을 과거보다 10% 이하로 줄어들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식물의 필수영양소인 인은 현재 인광석에서 채취한다. 그러나 채굴 가능한 양은 앞으로 5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경작지 가운데 30%는 인 부족을 겪고 있으며, 반대로 일부 지역은 인 과다로 부영양화 문제를 안고 있다. 대안은 뭘까.
» 바다에서 육지로 나르는 인의 양(단위는 연간 평방킬로미터 당 킬로그램). 위는 연어, 아래는 바닷새. 그림=크리스토퍼 도티 외 <피나스>
연구자들은 고래와 물개 등 대형 해양동물과 영양분 수송에 큰 구실을 하는 바닷새의 보전과 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닷새는 육상 대형 초식동물이 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630만㎏의 영양물질을 바다에서 육지로 옮긴다.
멸종한 대형 초식동물을 가축이 대신할 수는 없을까. 연구자들은 이미 가축의 생물량은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을 넘어섰지만 이를 대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축은 좁은 지역에 갇혀 있어 고농도의 배설물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 넓은 생태계에 고루 퍼지지 않는다. 또 가축은 단일종이어서 생태계에 적합한 다양한 종이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자들은 가축 종을 다양화하고 방목하는 방식은 일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opher E. Doughty et. al., Global nutrient transport in a world of giants, PNAS, doi: 10.1073/pnas.1502554112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5/10/23/15025541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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