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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여섯 달 만에 헤어져 65년만에 만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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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0  17: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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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을 함께 살다 헤어져 65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만나 부부는 여전히 정다웠다. 북측 오인세(83) 씨는 아내 이순규(85)를 만났고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던 아들 오장균(65)씨와도 극적인 상봉을 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북측 아버지는 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남쪽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들어 올리려는 듯 부둥켜 안았다. 남쪽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다”며 큰절을 했고 아버지는 곁에 있던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2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 3시 30분)부터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첫째 날 단체상봉 행사가 금강산지역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다.
북의 아버지 오인세(83) 씨는 남에서 간 아들 오장균(65) 씨와 아내 이순규(85) 씨를 만나 흔치 않은 부자상봉, 부부상봉의 모습을 연출하며, 감동을 자아냈다.
아버지는 헤어질 당시 복중에 있어 이날 처음 보는 아들과 손을 포개면서, 또 얼굴을 맞대면서 연신 “닮았지”라고 말했다.
아들은 “65년을 떨어져 있었어도 낯설지 않다”며, 살아계신데 제사를 지냈다는 후회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불과 반년을 함께 살다 생이별을 한 부인 이순규 씨는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65년 동안 얘를 키우고 했으니 벌금내야지”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오 씨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65년만에 만난 아내에게 과자 하나를 입으로 건네주었고 아내는 웃으면서 받아 물었다. 아내 이순규 씨도 남편에게 똑같이 입으로 과자를 건넸고 남편도 웃으며 받아 들었다.
남편이 북에서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사실 따위가 중요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아버지 오 씨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아들과 함께 온 며느리도 처음 만났고 93세의 형수 이동임 씨와도 상봉했다.
  
▲ 20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 3시 30분)부터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첫째 날 단체상봉 행사가 금강산지역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며느리와 함께 상봉행사에 나온 북의 채훈식(88) 씨는 남에서 온 부인 이옥연(88) 씨를 만나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들 채희양(65) 씨와 며느리, 두 손자가 남북으로 갈라진 세월을 살아온 부모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북의 아버지가 남의 딸을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든 채 면회소에 입장하는 리흥종(88) 씨를 멀찌감치에서 알아본 이는 여동생 이흥옥(80) 씨였다. ‘오빠’라고 부르고는 멀리서부터 달려가자 이내 알아본 리 씨의 눈시울이 금세 벌겋게 붉어졌다. 옆에 있는 이정숙(68) 씨를 가리키며 “딸이야 딸”이라고 알려주자 리 씨는 입까지 떨었다.
휠체어를 테이블 근처로 끌어와 의자에 앉히면서도 눈물만 뚝뚝 흘리고 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60여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챙기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다.
  
▲ 이정숙(65)씨는 아버지와 잡은 손은 맡겨놓은 채 한손으로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쥐고 눈을 쳐다 보면서 아버지가 못 들을새라 귀에 대고 잘 들리도록 한참을 이야기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아버지 리 씨는 오른손으로는 동생을, 왼손으로는 딸을 꼭 부여잡았다. 딸은 아버지와 잡은 손은 맡겨놓은 채 한손으로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쥐고 눈을 쳐다 보면서 아버지가 못 들을 새라 귀에 대고 잘 들리도록 한참을 이야기했다.
딸: 아버지, 나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딸 정숙이 어떻게 생겼어?
아버지: 소원 풀었어...
딸: 딸 보니까 좋아요?
아버지: 끄덕
딸: 내가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아버지 얼굴이 똑같아.
아버지:(잘 못알아들은 듯... 말없이 눈물 닦음)
딸: 아버지, 엄마 생각하셨어요?
아버지: 미안해서...미안해서...
리 씨와 동반해 온 북의 맏아들 리인경(55) 씨는 남의 누이가 “생활은 넉넉하고?”라고 묻자 “살만 하다”고 하면서 자리에 앉아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8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만나 서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동반가족 없이 혼자 도착한 북의 김남동(83) 할머니는 남에 사는 오빠 김남규(96) 옹과 만나 손만 맞잡은 채 한동안 있다가 “김남규 오빠가 옳은가(맞나)?”라고 물었지만 남측 최고령 상봉자인 할아버지는 그 말도 잘 못 알아들었다. 조카 김경숙(여, 63)씨는 “고모가 할머니와 많이 닮았다”며, “할머니는 고모가 곧 올 거라고 하면서 고모 시집보낼 때 쓰려고 도포(삼베로 만든 옷)와 이불 천 같은 것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엄마는 돌아가셨어”...영정으로 만난 어머니
북의 오빠는 남의 누이동생을 만나 비로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 만났다. 문정옥(문창순, 여, 77) 씨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품에서 꺼낸 사진을 북에서 온 오빠 문창수(83)씨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님 사진이에요.”
문창수 씨도 눈물을 흘리면서 사진 속 어머니를 어루만졌다.
함께 오지 못한 문 씨의 아들은 A4 크기의 종이 양면에 친필로 편지를 보냈다. “고모님께 문안인사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봉입니다....통일의 그날 온 가족이 함께 만나자는 것을 약속합니다.”
남쪽 동생 박문수(남,71) 씨는 북측 누이 박문경(박문자, 여, 83)을 만나 챙겨온 선물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살뜰하게 누이를 살폈다.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며 “엄마다, 기억나나”고 묻자 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북쪽 오빠는 13살이나 어린 남쪽 여동생을 만나 “엄마는 죽었어?”라고 물었고 동생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돌아가셨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빠는 “됐어, 그만 울어”하면서 동생을 달래다가 정작 자신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면회소에 입장하는 오빠 남상복(85) 씨를 보고 남상순(72) 씨는 통곡하며 끌어안았다. 상복 오빠는 어리광부리듯 우는 동생을 “됐어, 됐어”라며 달랬고, 상순 동생이 계속 통곡하며 “오빠 맨날 책 봤잖아. 그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라고 하자 옛 추억에 잠겨 웃음을 짓기도 했다.
오빠는 여동생과 함께 온 제부의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지 “시집 잘 갔구나”라고 덕담을 건넸다.
앞서 단체상봉을 10분 앞두고 이산가족면회소에 먼저 들어와 있던 남측 상봉단 389명은 기대와 긴장에 찬 표정으로 북측 가족들이 들어올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3시께 북측 가족들이 입장하자, 면회소 테이블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상대적으로 고령자가 많은 남측 상봉단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족들과 부축을 받으며 입장한 가족이 눈에 띄었고 10여분 뒤에 입장한 북측 방문단은 남측에 비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족들이 거의 없었다.
북측 방문단이 도착하자 남측 단장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단장에 꽃다발을 증정하기도 했다.
이날 단체상봉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렸으며, 저녁 7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2시간 동안 남측 주최의 환영만찬이 진행될 예정이다.
▶단체 상봉 이모저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이뤄진 면회소 대연회장으로 참새가 날아들었다고. 모두 이를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금강산지역 날씨가 지난 14일쯤부터 풀려서 한 북측 안내원은 점퍼도 많이 가져왔는데 입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이산가족 단체 상봉장은 남북 이산가족면회소 1층 대연회장. 각 가족별로 한 테이블씩 총 96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시간이 좀 지나자 엄청난 열기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북측 가족들은 대부분 복장이 동일했다. 여성의 경우 남청색 또는 짙은 자주색 치마저고리에 반짝이 꽃무늬 한복과 녹색 버버리 체크무늬의 가벼운 겉옷을 입었으며, 남성은 회색 양복에 대부분 검정색 중절모를 하고 있었다.
오후 5시 상봉이 끝나고 상봉장인 면회소 대연회장에서 북측 가족이 먼저 나오고 남측 가족은 그 뒤에 10가족씩 순서대로 나왔다.
상봉장을 떠나는 북측 버스를 향해 남측 가족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으며, 버스 안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훌쩍이는 할머니도 보였다.
남측 가족들은 지원단의 안내에 따라 버스로 이동했으며, 차분한 가운데 대체로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북측 기자들은 단체상봉 초반에 잠시 있다가 대부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측 상봉가족, 적십자 관계자들과도 스스럼이 없었다.
이번 이산상봉 취재를 위해 북측 기자들은 총 13명이 왔으며, 평양을 출발해 전날 금강산에 도착했다고 한다.
북측 기자들은 주로 40~50대의 남자 기자가 많고 이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민주조선> 기자는 최근 한국의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왜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추가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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