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우상인가
극우기독교인만의 국부, 이승만은 우상인가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동의 목표는 정해졌다. 현대사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좀 더 좁히면, 현대사의 대표적인 두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하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영웅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미래의 인물이다. 그들이 멘토로서 빛이 되어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다. 진정한 애국자를 영웅시하면 후세사람들도 애국자의 길을 가고자 할 것이지만, 독재자가 영웅이 되면 정치지도자들이 독재의 길을 손쉽게 가려할 것이다. 나라를 배반한 매국노를 영웅시하면, 나라가 또 외침을 받았을 때 언제든 누구라도 거리낌없이 나라 파는데 압장서게 될 것이다. 또한 성인을 영웅시하면 후세사람들도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성인의 길을 가려하겠지만, 악인을 영웅시하면 악을 저지르는데도 주저함이 없어질 것이다.
박정희야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다. 그는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기도 하지만, 쿠테라로 정권을 잡고 반인권 독재를 행했던 인물인 것도 사실이다. 음양이 뚜렷한 인물이다.
박정희보다 더 어둠이 짙은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 보이는 집착만큼이나 끈질지게 이승만을 우상화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주체는 한국 기독교 보수우익들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광복 70돌이던 지난 8월 1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이승만에게 ‘제1회 대한민국 건국 공로대상’을 수여했다. ‘해방 70년·광복절 67주년 기념 감사예배’에서다. 광복이 70년이 아니라 67주년, 즉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때라는 제목은 실수가 아니라 ‘우익 개신교인들’의 역사관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헌법 전문이 말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나 ‘3·1운동이나 임시정부’, ‘4.19혁명’이 아니다. 이승만 장로 대통령이다. 이승만 이후에도 김영삼, 이명박과 같은 장로 대통령이 있긴 했지만, 해방당시 전체 종교인구의 1%가 정치권력에서 마치 개신교국가처럼 군림하게 개신교를 밀어준 인물은 전무후무했다. 패전국 일본은 제끼고 이땅에 확실한 기독교국가를 만들기 위해 특혜를 몰아준 미군정과 함께 이승만은 한국 개신교의 구세주였다.
*이승만 동상이 남산에 세워져 있을 때의 모습.(왼쪽) 4.19혁명 때 철거되는 이승만 동상.
강인철 한신대 교수의 <종속과 자율-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에 따르면, 해방직후 미군정은 일본인들의 신사와 천리교 등 종교 부동산과 재산을 대부분 개신교에 몰아줬다. 영락교회, 경동교회, 성남교회, 서소문교회 등 전국의 대형교회들이 상당수가 이 특혜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과 광주 와이엠시에이와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 장로회신학교(장신대와 총신대 전신), 고려신학교(고신대 전신), 중앙신학교(강남대 전신), 대한신학교(안양대 전신) 등도 적산에 세워지거나 적산을 거쳐갔다. 미군정은 형목제도를 두어 형무소 내에서 개신교만이 선교 할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 뒤 군종장교 도입 기독교에 일방적 특혜(1954년 당시 개신교목사 87.9%, 천주교 신부 12.1%, 타종교 0)를 주어 지원했다. 외국인 선교자금에 환율 혜택을 주고, 국영방송을 통해 방송선교를 하게 했다.
일제 때 종교 규제를 활짝 풀었지만, 불교재산을 규제한 일제의 사찰령은 이승만정권이 끝날 때까지 풀지않았다. 향교의 재산을 공유 및 국유화한 향교재산관리규칙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했다. 항일 선봉장이던 대종교와 천도교는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불교와 유교는 날개를 꺾고, 내분을 조장했다.
그런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정통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발동을 걸고 있다. 개신교 우익이 축복으로 여긴 황교안 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이미 포진돼 있다.
보수 우익 기독교 지도자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다시 그 좋던 시절을 되살려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이 누군가.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친일목사를 두둔하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해 친일파 청산의 길을 막았다. 그래서 일제 만주군 출신 김창룡이나 헌병 출신 노덕술 같은 반민족인사들이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아 도의와 정의가 사라진 나라를 만들었다. 그들의 호위로 한국전쟁중에 군경을 동원해 반대파 국회의원을 강제연행 구금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고 집권 연장을 위해 발췌개헌안을, 2년 뒤엔 자신에 한해 대통령 3선금지를 면제해 주는 개헌안을 각각 통과시키고, 1960년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민주주의를 파기한 것보다 더 심각한 과오는 따로 있다. 제주와 거창, 경주, 문경, 함평, 여수, 순천, 신천 등 양민학살이었다. 지난 2000년 미군이 3백명의 양민을 학살한 것을 파헤친 에이피통신 기자들이 풀리처상을 수상한 노근리 사건은 이승만에 의해 저질러진 전국적인 학살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보도연맹 학살을 주도한 검사 오재도, 만주군출신 영남지구계엄사령관 등개신교인과 영락교회에서 출범한 서북청년단등 개신교인들이 이승만의 손발이 되어 학살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들의 반대자, 비협조자, 미운자는 모두 공산당으로 몰아 죽였다.
먹물을 먹은 엘리트들은 이들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개들과 극우테러를 피해 북으로 도망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신은 아무도 몰래 대전으로 가장 먼저 내빼고, 서울을 사수하고 있다고 거짓 방송을 해 자국민을 적군에게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다만 살아남기 위해 인공기가 나타나면 인공기를 흔들고, 태극기가 나타나면 태극기를 흔들수 밖에 없었던 무력한 시민들중 상당수를 공산당에 대한 부역혐의를 씌워 또 죽인 부도덕하기 그지없는 독재자였다. 그는 공산당과 싸웠던 이상으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국민과 싸웠고, 자국민을 너무도 많이 죽였다.
이승만은 그 억울한 피의 제단 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신의 동상을 남산에 세웠다. 4.19 혁명으로 그 동상이 철거될 때 <동아일보>는 “독재와 부패와 아부에 둘러싸였던 그의 별신도 이제 마지막 운명을 재촉”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승만이 설립한 인하대에선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우고,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이 나라를 난도질하고, 정치, 선거질서까지 송두리째 파괴해 국민으로부터 쫓겨난 독재자를 ‘국부’로 우상화하자는 것은 내 집단(기독교)만 챙겨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인은 의(義)에 밝지만, 소인은 이(利)에 밝다. 우익 기독교의 이승만 우상화야말로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것은 기독교가 자신을 회개하고 개신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다가가는 그런 회개의 종교라는 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정당화와 독재자 우상화에만 집착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이미지에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 글은 <씨알의 소리>에 실린 글을 이번 국사교과서국정화 발표에 맞춰, 약간 수정해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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