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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역사교육 '민주화'? 새누리가 일베 용어를 쓰다니


15.10.20 19:48l최종 업데이트 15.10.20 19:48l



국정교과서 강행 후 정부 여당은 적극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온라인 선전은 물론 대문짝만하게 신문광고도 게재했죠. 이 외에 주요 홍보 수단이 바로 현수막입니다. 신호등 앞에 서서 무심결에 바라보게 되는 현수막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렬하고 뇌리에 꽂히는 문구를 만들려는 욕심에서 일까요. '왜곡된' 표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문구입니다. 

시민단체는 이 문구가 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와 집필진, 이를 검정한 교육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새누리당을 검찰에 고발했죠. 해당 문구는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의 거짓과 세뇌의 현수막에 맞서, 진실의 현수막을 달겠다"는 '현수막 전쟁'( 관련 기사 : "주체사상 문구 끝판왕, 새누리당 여기까지 왔구나")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새누리당 현수막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역사교육의 민주화 국민통합 역사교과서로'입니다. 

집단 멘붕 초래한 새누리당 현수막 문구 '역사교육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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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역곡역 앞에 내 걸린 새누리당 현수막.
ⓒ 박현광

의아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바로 '민주화' 대목 때문일 텐데요. 우선 사전적 의미의 민주화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정의한 민주화는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을 포괄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과정"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는 '하나의 역사'만을 진실이라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47개 대학 역사 관련 학과 교수 323명(20일 정오 기준)이 입을 모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한국 사회의 보편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주성 그리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등 민주적 기본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민주화에 역행한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일본 외신기자가 정부에서 개최한 '역사교과서 관련 브리핑'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시장경제는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인데, 국정화는 공급을 단일화시켜서 이것만 보게 하겠다는 것이어서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라고 지적 했을까요. 

누리꾼들은 '멘붕'을 호소합니다. 트위터 이용자 '@gclef*****'는 "'역사교육의 민주화, 국민통합 역사교과서로' 새누리당의 이 현수막 문구를 보면서 멘붕이..."라고, '@mind****'은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면서 민주화라는 용어를 쓰다니...이명박이 환경운동하고 이완용이 독립운동한다는 말과 똑같군요"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베에서 사용하는 '민주화'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

새누리당은 어떤 의도로 '민주화'를 사용한 것일까요? 누리꾼들은 그 해법을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즉 일베에서 찾았습니다. 트위터 이용자 @neop****는 "역사교육을 '민주화'시키겠다고? 이 현수막은 일베에서 사용하는 그 '민주화'의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한 해석이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커뮤니티 '엠엘비파크' 자유게시판 '불펜'에는 해당 현수막을 알리는 글이 올라온 후, "일베에서 쓰는 의미로 현재 역사교육이 시궁창이라는 뜻으로 쓴 거"(眞田**), "저렇게 공개적으로 일베용법을 쓰다니..."(vlrhsg****), "정당도 하나로 만들고 민주화라 하겠네"(han***)라며 개탄의 댓글이 줄지어 달렸습니다. 

실제 '일베'에서 민주화는 본래 뜻과는 정반대로 '억압하다' 등의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 일베 게시판에는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에 낙서를 한 후 "대학교 빨갱이 선동 대자보를 민주화시켜 보자"라는 글이 베스트 게시물로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누리꾼들은 새누리당이 얘기하는 '민주화'가 일베의 '민주화'라고 해석할 정도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펜'에서는 역사교육 민주화를 두고 "역사교육의 유신화"(불가사**), "역사교육의 종북화겠지"(alles***), "역사교육의 독재화 아닌가"(건*)라며 문구 수정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역사관? "아베 총리의 자학사관과 같은 것... 모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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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터미널과 삼각지역 인근에 걸린 '부정적 역사관' 현수막.
ⓒ 김예지

또 다른 현수막을 볼까요. '우리 아이들을 부정적 역사관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이 현수막도 시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현재 교과서가 부정적인 역사관, 자학사관을 심어주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한 반박논리는 차고 넘칩니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장은 지난 13일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극우단체가 만든 대안교과서를 보면 김구는 테러리스트라고 나오는데 이런 걸 만들어서 자기들이 원하는 역사관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이라며 "'독립운동가는 3대가 못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자학사관'이라고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말하는 '자학사관'과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자학사관은 아주 모독적"이라고 일갈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자학사관이다 얘기하는데, 1995년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가 총리가 되면서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지 않습니까? 당시에 거기에 가장 반발한 게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의 극우세력이었습니다. 

극우세력이 반성적인 역사를 두고 자학사관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게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만들어지고 2001년 후소샤 교과서로 나오게 됩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써먹은 것을 왜 우리 역사를 비판하는 데 써먹느냐? 아주 모독적입니다." (지난달 1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독일 디스터벡(Diesterweg)사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 분량의 1/5을 나치 독일에 대해 다룹니다. 나치 독재 체제 큰 단원의 이름이 '기만, 유혹, 그리고 폭력'일 정도로 히틀러와 나치의 악행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나치가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라며 있는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일궈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반한 것이지요. 

이런 독일에서도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교육강령을 내건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70년 전 나치 시대 일이었죠. '진실'을 알리는 게 결코 '자학'은 아닐 것입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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