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문화공동체 히응 대표인구 10만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오랫동안 공동체를 꾸려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 주민의 권리와 지역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마을공동체로 시작했는데 인구도 작고 도심지도 적다 보니 한 도시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곳은 80년대 정부 정책으로 개발한 지역이 있었다. 과거형이다. 나지막한 아파트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고 오래된 나무들이 아이들을 키워내던 그곳은 몇 년 전부터 하나씩 사라지고 2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남은 몇 곳의 단지도 이제 싸그리 사라질 것이다. 이곳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고 풀뿌리정치를 꿈꾸던 사람들은 함께 늙어갔다. 새로 높게 올라가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더 아늑한 곳이 어울리겠다며 떠난 사람도 있다. 나무와 함께 자라던 아이들도 마을을 떠났다. 그중 몇 명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친구들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학교와 직장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이 도시의 한쪽 끝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그곳이 하루빨리 싹 개발되어 새로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길 바라는 이유로, 매년 화재가 일어나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사람들은 그들을 더러 이해했다가 더러 이해하지 못했다.
8~90년대의 대규모 개발로 만들어진 1기 신도시와 비슷한 곳들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공동체에서 자란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학교와 직장을 찾아 떠날 때가 되면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들은 동시에, 한 번에 소멸한다. 어떤 청년들은 자기들이 중고등학교 때 교복을 사러 갔던 낡은 상가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철거가 예정된 단지를 드나들며 기억을 모았다. 자료를 찾고 각자의 앨범에 정리된 사진을 찾아냈다. 살림살이가 나와 있는 복도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또래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거나 책을 쓴다.
이들과 비슷한 또래들은 커뮤니티에 글을 쓴다. ‘예전에 그런 나라가 있었단다.’ 이제 서른 정도 된 청년들은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먼 옛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파트는 모두 복도식이야. 현관문은 항상 열려있어. 집에 아무도 없으면 옆집에 가서 밥을 먹었지. 우리는 녹슨 미끄럼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어. 그리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면 내일 보기로 하고 헤어졌지.’, ‘같은 층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명절이면 음식 나눠 먹었어.’, 7~80년대 단독주택 골목에서 복도식 아파트로 바뀌었을 뿐, 생활양식은 비슷했다. 이들의 글은 커뮤니티를 돌다가 유튜브 콘텐츠가 된다. 옆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너희 엄마 시장 갔다’고 알려주던 이웃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때를 그리워한다는 반증이다.재건축 추진중인 1기 신도시 산책로 ⓒ필자 제공
어떤 청년들은 도시에서 가장 싸게 교복을 팔던 집 이야기를 나누다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냥 그 시절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게 화가 나요. 왜 화가 날까요?”
어떤 과거는 지우고 싶겠지만 어떤 과거는 소중하다. 잊고 있던 서랍을 열었을 때 발견한 종이쪽지에 적힌 친구의 메시지처럼, 장소는 기억을 담고 있다. 집단 기억을 담고 있던 한 시절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삭제될 때, 나의 과거도 부정당한다.
삐 – 당신의 과거는 삭제되었습니다. 소거되었습니다. 또는 소멸되었습니다.마을의 공간은 끊임없이 삭제되는데 정책과 기득권들은 자꾸 공동체를 강조한다. 상호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지막 사회적 자산이 공동체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이 공동체다. 이미 자산을 축적한 기득권은 공동체가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자치를 강조하고 마을공동체를 지원했다. 그러나 깨져버린 땅에서, 또는 곧 부서질 예정인 곳에서 어떤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인구 10만이 안 되는 도시에 남은 풀뿌리 활동가들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시민사회에도 마을공동체에도 진입하지 않는다며 염려가 크다.
“왜 청년들이 마을이나 풀뿌리 활동에 관심이 없을까요?”필자가 마을교육을 진행한 초등학교 교실 (2023) ⓒ필자 제공
정말 그럴까? 내가 체감하기로는 그렇지 않다. 복도식 아파트가 그립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사라진 교복 집을 떠올리는 이들은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동체를 원했다. 그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게다가 폭발적으로 모이는 모임은 많다. 청년들이 마을 활동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관심이 적을 수는 있겠다. 그들이 어린이일 때부터 어른들은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고 가르쳤다.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학교 들어가라, 좋은 직장 다녀라.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은 경쟁의 상부에 있고 그곳은 마을 안에 없다.
작년엔가 만났던 한 청년 예술가는 우리 지역에 살다가 서울로 옮겨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살던 도시와 마을을 추억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작가들과 지역과 마을을 재구성하는 활동을 하면서 자기가 자란 마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마을과 지역,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정치와 정책은 자기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며, 굳이 서울로 가지 않았어도 괜찮았겠다고 했다.
만일 그가 마을에서 더 오랫동안 머물렀다면 그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을까. 어른들은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서 청년이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인구소멸 시대라는 단어에 매몰된 마을은 청년들에게 간이의자를 한 번 내어줄지언정 판을 깔아줄 여유는 없다. 그저 귀하고 귀해서 외부인이 된다. 밖에서 들어온 낯선 자로 여긴다. 청년을 청년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버린다.
2010년 이후, 어린이들에게 ‘마을에서 만난 사람’을 떠올려보자고 했을 때, 어린이들은 편의점 아저씨, 태권도 사범님, 미술학원 선생님, 피자집 사장님을 말했다. 청소년들은 피시방 알바 누나, 아이스크림 집 사장님 등 상거래로 만난 사람들만 떠올렸다. 거래 없는 관계는 차츰 실종되었다.경기도 1기 신도시의 어린이공원 ⓒ필자 제공
시민사회와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대안적 삶을 꿈꾸는 활동 영역에서 마을과 지역에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우선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방정부에 따라 이에 대한 지원은 달라진다.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은 정책에 의해 계속 삭제되고, 정책은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다시 조성해야 하는 형국이다. 마을은 삭제하고 공간은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공간은 사라지고 아파트는 단지마다 철벽을 치면서 모일 만한 곳을 만들려니 돈도 많이 들고 억지스럽다. 강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바둑판같은 길을 따라 걷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모여 노는 곳을 보면 사람이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은 정해진 놀이터에서 놀기보다 어딘가 다른 곳을 발견해 놀이터로 만들어버린다. 그나마 그 어린이들도 사라지고 있다.
지도 위에서 자를 놓고 찍찍 줄을 그어 만드는 마을, 대통합단지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 외부인 출입을 엄금하는 아파트 공동체가 첩첩이 성벽을 쌓고 있는데 마을은 어디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할까. 유년 시절을 삭제당한 청년들은 마을로 돌아올 길을 잃었다.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던, 함께 자라 터널을 만들어준 나무들 사이로 매미가 울고 잠자리가 날던 그 산책로는 하나씩 삭제되는 중이다.
“ 이하나 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 응원하기- 발행 2025-08-18 08: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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