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시장경제 복원 평가”...전문가들 “정책과 반대로 해서 2위”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3-12-19 20:10:21
- 수정 2023-12-19 20:29:15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8일(현지시각) 올해 OECD 소속 35개국의 경제 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이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OECD 근원물가지수(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와 인플레이션 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고용 증가율, 주가 수익률 등을 지표로 두고, 국가별 순위를 매겼다.
한국은 1위인 그리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OECD 근원물가지수 3.2%, GDP 성장률 1.6%, 인플레이션 폭 -13.3%, 고용률 1.1% 주가 수익률 7.2%를 기록했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근원물가지수, 주식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3위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54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가 견지해 온 건전재정 기조 하에서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된다"고 자평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민간 주도, 시장중심 기조와는 정반대로 해서 그런 평가를 받은 건데 사실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한국의 물가가 낮은 건 정부가 가격 통제수단을 동원해서 억제했기 때문이고, 정책과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근원물가지수 상승률(3.2%)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낮은 것으로 나왔다.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이 제일 낮은 곳은 스위스(1.3%)로 유일하게 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외에 한국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곳은 일본(2.8%), 프랑스(3.1%)뿐이다. 평가 대상국 중 23개국이 4%대 이상의 물가 상승률을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튀르키예는 무려 69.5%가 올랐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이 낮은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강력한 가격 통제를 꼽는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들을 직접 압박하면서 가격 상승을 누르고 있었다. 지난달부터는 구체적인 물품별을 정해 담당 고위 공무원이 가격을 밀착 관리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경우에도 정부가 강하게 관리하고 있다. 지난 14일 정부는 유류세 인하조치를 내년 2월까지 추가연장하기로 했다. 지난 2021년 유류세를 20% 인하한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기름값을 정부가 누르고 있다. 현재 유류세 인하율은 25%다.
전기요금의 경우도 올해 1, 2분기 연속 인상했지만, 전력 시장이 민영화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한다. 한국이 전력 시장을 공공 영역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에너지 시장을 민영화한 영국의 경우, 근원물가 상승률이 5.6%로 높게 나타났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거꾸로 에너지 시장에서 공기업이 70%를 차지하는 등, 공공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고 있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시장의 주도적 변화가 이를 이끌었다기보다, 현 정부가 하겠다고 말한 것과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국가 개입이 강화돼서 '신 관치경제'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부가 시장주도적 정책을 펴서 나온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상인 교수도 "오히려 반시장적인 정책을 한 것인데 그것을 두고 시장중심 정책의 결과로 평가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게 현실인데, 대통령이 현실을 파악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맥락 없는 '겉핥기식 평가' 의미 없어...'정부가 잘한 거냐'는 것과는 별개"
이번 이코노미스트의 평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맥락 없는 단순 경제 지표의 비교만으로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상인 교수는 "많은 유럽 국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아서 성장률도 낮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한국이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면서 "전쟁의 영향이라든지, 정책 대응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인플레이션 관리를 잘했다고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근원물가지수가 낮게 나온 데 대해서도 "근원물가는 인건비가 많이 반영되는데 결국 인건비를 억제시켰다는 이야기"라며 "임금을 많이 받아야 하는 30~40대가 일자리를 잃고 60대로 대체가 됐다. 고용 상황이 실제로는 안 좋아 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게 물가를 잡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바람직한지를 따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그런 세세한 분석이 나라마다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거시적인 지표만 가지고 비교하는 건 좋은 분석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한국 정부가 가격 관리 등으로 물가를 누르고 있지만, 지속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정세은 교수는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데 대해 아쉬운 건 일관된 정책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올해 윤 정부가 대기업 감세를 하면서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정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닌데 그걸 유지하면 내년엔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도 "수치만 가지고 보면 한국의 인플레이션율이 낮았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정책에 대한 평가로 보면 무슨 가격 통제시하듯이 관리를 했는데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견강부회(牽強附會)"라며 "물가 상승률의 하락이 고금리와 임금상승 억제의 결과라면, 그 고통은 가계부채비율이 높은 서민·중산층에게 그대로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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