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머지않아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되고 ‘백세 시대'가 될 터인데, 이대로 미래 세대에게 버거운 부담을 지게 할 수 없습니다.”(오세훈 서울시장)
“백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노인 세대 설정이 긴요합니다.”(홍준표 대구시장)
두 광역자치단체장이 연초부터 ‘노인 연령 기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수년간 누적된 지하철 운송기관 적자 문제가 노인 무임승차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지하철의 적자가 노인 무임승차 때문만은 아니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없지만 비슷하게 적자에 시달리는 버스업계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개편하면 적자를 일부라도 보전할 수 있는 점, 고령화로 인해 사회구조가 달라졌다는 점 등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노인 무임승차는 해묵은 논란이다. 13년 전인 2010년에도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가 “지하철이 적자인데 왜 65살 이상이라고 무조건 표를 공짜로 줘야 하느냐”며 노인 무임승차를 ‘과잉 복지’로 규정해 대한노인회의 반발을 사 결국 사과한 바 있다.
이번엔 달라질까. 이미 홍준표 시장은 무임승차 연령을 65살에서 70살로 올렸다. 대구는 도시철도 무상 이용 기준을 65살에서 내년부터 2028년까지 해마다 한살씩 높인다. 대신 버스도 무상 이용 대상에 포함한 뒤 올해 75살로 시작해 해마다 한살씩 낮춰 2028년 도시철도와 동일하게 70살 이상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겨레>는 적절한 노인 연령 기준, 바람직한 노인 교통 복지 등 앞으로 확장될 논의에 앞서 쟁점을 짚어봤다.
노인 무임승차 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지하철공사 적자 보전 문제에서 출발했다. 인구도 많고, 지하철 노선도 많은 서울시에서 운을 띄웠다. 서울 지하철 대부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영업손실이 크게 늘었다. 철도통계연보를 보면 2017~2019년 해마다 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던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 1조902억원, 2021년 9385억원의 손실을 냈다. 2021년 결산 기준 서울교통공사의 누적적자는 약 17조원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노인은 전체 이용객 10명 중 1명꼴이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2021년 2311억원, 2020년 2161억원, 2019년 3049억원 수준이다. 서울시는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면 서울교통공사의 적자 구조를 일부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서울연구원의 2021년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관련 보고서를 보면 노인 연령을 현행 65살에서 70살로 올릴 경우 연간 무임승차 손실 비용의 25~34%를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2020년 전국 노인실태조사와 지난해 서울 노인실태조사에서 65살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이 각각 평균 70.5살, 72.6살로 집계됐다는 점도 무임승차 연령 상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노인 무임승차 제도 문제를 단순히 서울교통공사의 손익을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임승차는 노인 교통 복지이며, 이를 통해 얻는 사회적 편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4년 펴낸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연구보고서는 노인 무임승차의 편익을 3136억~3361억원(2012년 기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무임승차 제도가 노인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한 덕에 경제활동을 통한 의료비 절감(230억원), 기초생활급여 예산 절감(908억원), 관광산업 활성화(131억원), 극단적 선택 감소(617억원), 우울증 감소(322억원), 교통사고 감소(1152억원) 등의 편익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했다. 서울연구원은 이를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3650억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나라 노인은 빈곤율이 높아 무임승차는 노인 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건강하게 활동하다 보면 건강보험비도 줄고, 노인 우울증도 감소한다. 노인들이 돌아다니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도 “지하철 운영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은 적정한 수송원가에 비해 낮은 운임을 징수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로 인한 손실이 원인이 아니”라고 짚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1980년 70살 이상의 노인에게 요금을 50% 할인해준 데서 출발했다. 1년 뒤 노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노인 연령은 65살로 낮아지고, 1984년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요금을 전액 면제하는 시행령이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지하철 노인 무임 수송은 대통령 지시에 의해 도입됐으며, 거주지와 상관없이 전국 모든 국민들에게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국가 사무”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시작한 복지에 대한 비용을 지자체와 시민이 부담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의 역할은 빠져 있다는 게 서울시의 시각이다.
중앙정부 입장은 강경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에서 운영하는 지하철은 서울시의 지자체 사무이므로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책임지고 운영해야 한다”며 “균형이나 형평성 차원에서도 중앙정부가 빚을 내 가장 재정 상태가 좋은 지자체를 지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시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나, 대도시에만 있는 지하철을 위해 국비를 투입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다.
지하철 운송기관 적자와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풀어갈 방안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신성일 서울연구원 공간교통연구실 연구위원은 노인도 명목적으로 교통 요금을 부담하되, 노인 교통비 지원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연구위원은 “중앙정부에서 노인들에게 교통비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원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며 “소득수준, 대중교통 의존도 등을 고려해 다각적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정욱 한국교통대 철도경영물류학과 교수는 “지방 공기업의 적자가 크다고 해서 국가가 보전해주는 것은 방만 경영 등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며 “노인 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안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모든 교통 복지를 아우르는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하게 지하철만 경로 무임승차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동 복지’에 대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동 복지에 대해 일정 비율을 국가가 지원한다는 근거를 만들면, 지하철에만 주는 특혜가 아니라 시내버스 이용자 등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봤다. 그러면서 “노인 연령 상향은 정년, 연금 등 전 사회에 적용되기 때문에 교통 분야 논리만으로 결정돼선 안 된다. 근본적인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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