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모습. 18개의 황금빛 조각거울들이 모여 하나의 큰 주경을 이루며, 주경 아래에는 태양열을 막기 위한 차단막이 태양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 |
ⓒ NASA-GSFC, Adriana M. Gut |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오랜 세월 인류가 품어온 근원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을까', '만일 누군가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그러나 수십억 년 전 지구에 남겨진 외계 생명체의 유전자로부터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이 비롯되었다는, 꽤나 도발적인 가설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이 영화는 끝까지 과학의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과학자들이 여럿 등장하는 이 영화엔 아쉽게도 인류의 궁금증을 풀어줄 그 어떤 '과학적' 실마리도 담겨 있지 않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2021년 12월 25일, 이번엔 정말로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인류의 대담한 여정이 닻을 올렸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태초의 별과 은하를 찾아 137억 년 전 먼 우주를 향해 날아오른 것이다.
"곧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우주 탄생 초기의 빛을 관측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지구를 닮은 외계 행성의 대기에서 생명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도 듣게 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예측마저도 뛰어넘는, 이제껏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여정은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깊이와 지평을 한없이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손상모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망원경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울(반사경)의 정렬을 담당하는 광학팀에서 광학초점면 전문가로 일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온 유일한 한인 과학자다.
▲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손상모 수석연구원 | |
ⓒ 윤찬영 |
"태초의 별과 은하, 다시 말해 우주 탄생 초기의 빛을 관측하려면 적외선 망원경이 필요하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기 때문에 멀리서 날아온 빛은 파장이 점점 늘어 적외선 영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적색이동'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따라서 우주 초기의 별이나 은하들이 분출한 자외선이나 가시광선 쪽의 빛도 137억 광년을 날아와 우리에게 닿을 때는 모두 적외선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태초의 빛을 관측하려면 적외선 망원경이 필요하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하려는 건 태초의 별과 은하만이 아니다. 이 끝없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 생명의 존재를 찾는 것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어떤 행성이 가까운 별 앞을 지나가게 되면 별에서 나온 빛이 행성의 대기를 통과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 관측된다. 그 빛을 분석하면 행성의 대기가 어떤 기체들로 이뤄져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지구처럼 암석으로 이뤄진 행성들의 대기를 분석해 지구 대기와 닮은, 그러면서도 별에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서 물이 지구처럼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생명체가 존재할 조건을 갖춘 행성이다. 여기서도 적외선을 관측하는 게 중요한데, 행성의 온도는 별보다 훨씬 낮아 보통 적외선을 가장 많이 방출한다."
지난 1월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손상모 수석연구원과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기대를 뛰어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성능
-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정량적으로도 기대했던 것보다 두 배나 성능이 뛰어나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관측을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는 미 항국우주국(NASA)이나 우리 연구소 밖의 과학자들도 관측에 참여하고 있는데 다들 '이 정도로 성능이 뛰어날 줄 몰랐다'며 감탄하고 있다."
▲ 용골자리 성운, 2022년 7월 13일 공개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암흑성운 L1527 내의 원시성. 2022년 11월 16일 공개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최근 관측 결과를 소개해 달라.
"첫 번째 사진은 별 탄생 성운이라고 불린다. 위쪽에 아주 밝은 별들이 태어나면서 자외선을 밑으로 뿜어내면 마치 침식작용처럼 먼지를 깎아내면서(밀어내면서) 산맥 모양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두 번째 사진은 별이 막 태어나는 순간을 찍은 거다. 별이 탄생할 때는 가스가 응축되면서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에너지를 위아래로 내뿜는다. 그 에너지가 주변의 성간먼지를 만나 사진처럼 모래시계 모양을 만들어낸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너무 아름답지 않나. 아주 먼 우주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이런 경이로운 풍경들을 허블우주망원경보다 100배는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다."
▲ 소마젤란 은하 내 별탄생 지역에 위치한 NGC 346 성단(별무리)과 그 주변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근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분홍빛을 띤 부분은 섭씨 1만도가 넘는 고에너지 형태의 수소 원자이고, 주황색빛을 띤 부분은 영하 200도 정도의 수소분자로 이뤄졌다. 중간 위쪽에 보이는 NGC 346 성단 내의 별들도 약 500만년 전 온도가 낮은 수소분자 구름으로부터 생성되었다.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630광년 떨어진 카멜레온I이라는 분자 구름 내에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얼음을 관측. 중간에서 좌측 상단에 보이는 주황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부분 내에 Ced 110 IRS 4 라는 원시성이 태어나고 있다. 사진 전반에 걸쳐 보이는 성운과 관련없는, 그리고 성운보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배경의 주황색 별들에서 오는 빛은 성운을 통과하면서 성운 내에 어떤 물질이 분포하는지 정보를 담고 있다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이 별들을 분광관측하면 분자 구름 내의 성분을 알 수 있는데, 스펙트럼의 흡수선을 분석한 결과 (아래 그림)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메탄, 메탄올 등으로 이루어진 얼음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됨. 이런 분자들은 특히 생명체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에 우주에서 유기 분자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이런 관측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해달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만든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를 꼽으라면, 하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태초의 별들을 관측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계 생명체 존재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앞서 본 사진들이 바로 태초의 별과 은하를 관측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들이다.
우주의 나이를 약 138억 년으로 보는데, 태초의 별과 은하가 만들어진 시점은 이때로부터 약 1억 년이 지나서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이 137억 년 전의 별과 은하를 찾으려는 거다. 우주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아직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엄청난 관측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관측 때마다 앞서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런 관측 결과들이 쌓이다 보면 우주가 탄생한 뒤 은하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가계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론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또 수정될 수도 있다."
정말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을까
▲ 41광년 떨어진 LHS 475라는 별 주위를 도는 지구형 행성. 그림은 행성이 별 앞을 지나갈 때 별의 밝기가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밝기가 어느 정도 어두워지는지를 측정하고 분광을 통해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행성의 크기나 밀도, 대기 성분 등 여러가지를 특정할 수 있다. 이번에 관측한 LHS 475b 라는 행성의 크기는 지구 크기의 99%라고 측정되었고 밀도로 볼 때 주로 암석으로 이뤄진 지구형 행성이라는 결론이다. 다만, 지구와는 다르게 별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고 대기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 |
ⓒ 미국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
-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발견하는 건 정말 가능한가.
"과학자들은 '비로소 우리가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정말 그런 행성의 존재가 발견된다면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다. 시간 문제라고 본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정말 전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현재 태양계 가까운 곳에서 관측 가능한 행성이 5000개쯤 된다."
- 앞으로는 어떤 관측들을 진행하게 되나.
"지난해 7월부터 첫 번째 해에 진행하기로 되어있던 사이클원(Cycle 1) 프로젝트들을 거의 마무리했다. 올해 진행할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지난달까지 세계 각지의 연구소와 과학자들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수천 개 프로젝트들이 제안되었는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 가운데 올해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사이클투(Cycle 2) 프로젝트들을 뽑는다. 대략 200~300개 정도가 뽑힐 걸로 본다."
▲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L2점에 도달한 뒤 조각거울과 차단막을 펼치는 과정 | |
ⓒ NASA, ESA, CSA, Joyce Kan |
- 망원경 운영팀 내에서 망원경의 거울 정렬을 담당한다고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속한 광학팀은 망원경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울을 책임진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완전히 펼치면 직경이 6.5미터에 달해 그 상태로는 로켓에 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주경을 18개의 조각 거울로 나눠 우주로 보낸 뒤 이를 다시 펼쳐 하나의 큰 거울로 정렬해야 했다. 접혀있던 18개의 거울들을 하나하나 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344개의 단일장애점(구성 요소 중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가 중단되는 요소)을 극복해야 비로소 망원경으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서였다.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18개의 거울들은 지금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다. 아직 망원경이 완전히 식지 않아 온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거울들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보정해서 망원경에 들어온 빛이 주경과 부경을 거쳐 초점면에 정확히 초점이 맺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말로 소통하는 게 내 사명이라 생각
- 인류의 가장 경이로운 지적 성취를 최전선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 몇 개월 동안은 늘 흥분된 상태였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응집된 최고의 망원경으로 인류에게 드리워져 있던 어둠을 걷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부심도 컸다.
우리 팀 앞에 놓인 과제들에 매달리다 보면 너무 바빠서 잠을 거의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뭘 해도 온통 망원경 생각뿐이었다. 동료들도 다 마찬가지였다고 하더라.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첫째 딸은 새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아빠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랑했는데, 처음엔 다들 안 믿었다고 하더라. 나중엔 학교에서 정식으로 나를 초대했는데 바빠서 아직 못 갔다."
- 한국의 천문학·우주과학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천문학자·우주과학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의 천문학과 우주과학은 빠른 속도로 주류로 합류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로켓 발사도 다른 나라들이 50년 넘게 걸려 성공한 걸 거의 20년 만에 해내고 있다. 천문학·우주과학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에 걸맞게, 다른 과학 선진국들처럼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여느 직업들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존중 받길 바란다. 정부의 역할만큼이나 일반 시민의 인식도 중요하다. '과학이 밥 먹여주냐'고 묻기보다 과학을 잘하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생기길 바란다."
-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에도 열심인가.
"국민을 상대로 한 적극적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시민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또 그 일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잘 설명하는 게 연구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이번 프로젝트가 인류의 오랜 궁금증,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문득, 이 일을 우리말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로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내 사명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는 유튜브에도 출연했고,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써보자는 제안이 와서 올해 상반기 탈고를 목표로 틈틈이 책도 쓰고 있다.
2월 3일에 서울대 자연대 초청으로 '우주와 인류를 연결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러 한국에 간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장면, 홀로 살아남은 과학자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는 다시 먼 우주로 기약 없는 항해를 떠나며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 and I'm still searching.)"
인류의 항해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손상모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 수석연구원은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학사를 거쳐 2004년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2009년부터 STScI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후 다시 STScI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9년부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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