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한국어 어휘력 사건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08.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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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력 사건이라고 쓰고 나니 왠지 강력 사건이 연상됩니다. 사회가 흉흉해져서 강력사건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정말 그런가 하고 의심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청소년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의문입니다. 강력 사건이 예전에도 많았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깡패와 조직폭력배로 난리였었죠. 정치 깡패도 있었습니다. 하긴 우리나라도 군인이 폭력으로 정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어휘력이 문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최근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겠죠. 실제로 예전에도 어휘력은 늘 문제였고, 지금 어휘력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어른들도 어휘력이 문제인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 학생의 어휘력이 문제라고 할 때 그 때 등장하는 많은 어휘는 실제로는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접하지 않는 어휘는 모를 수밖에 없거나 부정확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의 어휘력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제 기억 속에는 세 번 정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어휘력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앞으로도 어휘력 사건은 또 일어날 겁니다. 아니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일 겁니다. 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만 모두 보도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사건은 ‘북침 사건’입니다.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 사건 때문에 흥분하는 사람이 많았었기 때문이죠. 한국전쟁이 남침인가 북침인가 묻는 질문에 북침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많았다는 내용의 사건입니다. 현대사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둥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은 역사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교육의 문제였고 어휘력의 문제였습니다. 북침을 북쪽에서 침략해 온 것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이 그렇게 대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북침이라는 말의 어휘구조가 좀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북쪽으로인지, 북쪽에서인지 방향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어휘 설명이 필요함을 깨달았던 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흘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사흘이라는 말이 4일이 아니냐는 그런 농담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사흘연휴라는데 왜 삼일만 쉬냐는 이야기였기에 저는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재치인 거죠. 하루라도 더 쉬고 싶은 마음이 어휘를 오해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물론 실제로는 사흘의 어원에 대해서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흘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흘 나흘이라고 이야기해 주면 금방 이해하였을 겁니다. 또한 사흘이라는 말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혼란이 왔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주 안 사용하면 깜빡깜빡 합니다.
세 번째 논란이 된 말은 최근에 일어난 심심한 사과 사건입니다. 심심한 사과가 매우 깊고 간절한 사과라는 뜻임을 모르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의미의 심심하다로 오해한 사건입니다. 어쩌면 심심하다의 또 다른 뜻인 조금 싱겁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저는 심심한 사과라는 말이 그냥 형식적인 말투로 들렸을 가능성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서 진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심심하다는 말이나 유감이라는 말이 이제는 사과와 안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억지로 사과하는 말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어휘력 사건을 보면서 저는 교육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해나 실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휘 자체의 문제인 경우도 있고, 사용빈도의 문제인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문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소통은 상호적입니다. 어휘력이 문제라고만 말하지 말고 진정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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