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브릿지] 초등학교 입학 연령 만5세 하향, 공론화 아닌 폐기가 정답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
▲ 최근 취학연령 하향 관련 논란이 일자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없는세상, 전국학부모단체현합 등 학부모 단체를 초청해 긴급 간담회를 열고 있다. | |
ⓒ 이희훈 |
교육 분야는 영역별로, 단계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보니 특정 정책을 바라보는 주체들의 관점에 차이가 큰 편이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반대하거나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을 찾기 어렵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대 하향의 경우, 여러 교육 주체와 단체들이 100%에 가까운 반대 입장을 동일한 목소리로 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동단결하는 데 교육부 장관이 기여하였다.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겠다는 안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공론화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공론화의 가치가 거의 없다. 8월 초 강득구 의원실에서 13만 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초등학교 입학 연령의 만 5세 하향에 대해 응답자의 97.7%가 반대하였다.
정책 추진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98%가 부정적으로 응답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복수 응답으로 물어본 결과, 학부모 등 당사자의 의견 수렴을 하지 않은 점(79.1%), 국가·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점(65.5%), 교육계의 의견 미수렴(61%) 순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을 2018~2022년생 25%씩 분할해 입학하는 것(한해 125%씩 입학)에 대해서도 97.9%가 반대를 하였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학생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점(68%), 영유아교육 시스템의 축소 및 붕괴(53.3%), 조기교육 열풍으로 사교육비 폭증 우려(52.7%) 순으로 나타났다.
입학 연령 하향 시 사회진출이 빨라져 긍정적인 정책효과가 나온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97%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이 설문 결과는 정책의 목적과 절차, 대안, 방향에 대해 공감대 형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정책 추진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책은 3분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부으면 뚝딱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충분한 연구를 통해 선행연구 분석, 현황 파악, 주체들의 요구 분석, 사례 분석,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 중장기 추진 계획 등이 정리되고, 공론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 관련 부처들의 이해관계가 충돌 지점을 발견하고 조정해야 한다.
정책을 환영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의 사전 조율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방안은 그야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온) 정책이었다. 그 흔한 공청회나 토론회도, 연구보고서도 없었다.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 목록에 있지도 않았다. 추진 근거와 동력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은 보고하고, 대통령은 신속 추진을 지시하였으니 일은 더욱 꼬였다.
어느 정도 찬반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공론화가 추진되어야 하는데,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국민 세금을 들여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공론화가 아닌 즉각 폐기가 답이다.
특정한 정책의 창이 열리려면, 그것이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문제 인식과 대안이 결합된 상태에서 정치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추진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안을 보면, 정치만 존재할 뿐 문제 인식과 대안이 없다. 정책 추진의 목적이 저출산 문제 해결인지, 예산 경감인지, 돌봄 기능의 공교육 흡수인지, 유보통합을 위한 포석인지 알 길이 없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연령대별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어린이집 및 유치원의 생활 문법과 초등학교의 그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어린이들의 신체, 정서, 인지 발달 상황을 고려하여 공간이나 시간, 교육과정이 설계된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봄을 명분 삼아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인하하게 되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조기입학이 제도상으로 가능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사례는 계속 줄고 있다.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면 충분하다. 교육은 복잡계이다. 단순히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정책을 투입하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인과론적 접근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한 단순 접근은 부작용의 연쇄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사회 진출 연령을 앞당기면 취업이 빨라지고,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이 빨라진다는 가정하에 방안이 설계된 것 같기도 하고, 돌봄 수요를 초등학교에서 조기 흡수하겠다는 관점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또는, 어린이들의 한 연령대를 유아교육에서 초등으로 옮기면,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는 누리교육과정 관련 예산을 줄일 수 있는 관점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왜 이 정책을 추진하는가에 대해서 해석은 분분한데, 명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 정책 추진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론화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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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에 속한 학부모 단체 참가자와 전교조 조합원 등이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집회에 참석해 공론화 과정 즉각 중단 및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 하고 있다. | |
ⓒ 이희훈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공론화가 아닌 정책 폐기 내지는 백지상태 선언이 필요하다. 찬성하는 집단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공론화를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산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만약 공론화를 하려면, 해묵은 과제였던 유보통합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 유보통합은 그 당위성에 공감하지만, 부처 간, 주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대선 공약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보통합은 논의해볼 만한 주제이다. 유아나 어린이들의 성장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봐야 하고, 특히 학부모나 시민의 관점에서 과감하게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유보통합이 어렵다면, 기능별 역할 분담도 검토해볼 만한다. 0~3세는 보육의 관점을 갖고 어린이집에서, 4~5세는 유아교육의 관점을 갖고 유치원에서 나누어 맞는 방법도 포함하여 논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학제 개편의 경우, 유아교육을 무상교육으로 흡수하면서 초등학교 입학 전 단계에 K1 내지는 K2 학년제를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이는 유보통합과 연결된 주제이기도 하다. 돌봄의 질 제고와 모델 다양화 역시 공론화의 주제로 삼을만하다.
돌봄의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초등학교의 개별 단위에서는 인력과 예산 등의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관점에서 지자체와 교육청, 시민사회가 협업을 하여 풀어가야 한다. 단일 모델보다는 지역과 학교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유보통합이라든지 돌봄 강화는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추진해야 한다. 집토끼를 먼저 잡아야 한다. 집토끼를 잡지 않고, 산토끼를 잡으려고 하니 정책 스텝이 꼬이고 있다.
* 필자 소개: 김성천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학습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공저), <소환된 미래교육>(공저), <교육자치시대의 인사제도혁신>(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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