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획 -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 극단적 기후변화와 미 의회의 겸손한 진전
22.08.17 05:10최종 업데이트 22.08.17 05:10
<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한국에는 물난리 뉴스가 쏟아졌는데, 내가 사는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는 가뭄주의보가 발령 중이다. 특파원들이 전하는 서울발 폭우, 홍수 소식과 정반대로 미 동부는 근 한 달째 화씨 100도(섭씨 37.8도)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 대부분 지역에서 하천의 흐름과 지하수 수위가 평년보다 낮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저수지는 덥고 건조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급격한 감소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바닥 드러낸 미드 호수
▲ 지난 7월 23일 미 네바다주 미드 호수에서 '보트 없음'이라고 쓰인 부표가 갈라진 바닥 위에 놓여 있다. ⓒ 연합뉴스
"미드 호수에서 시체를 찾다가 다쳤다고요? 보상 가능!"
미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밸리에 있는 한 카지노 맞은편에 광고판 하나가 등장했다. 지역 법률 사무소에서 내건 이 광고판은 갑자기 전국 뉴스가 된 지역 호수로 소비자를 낚는 중이다.
지난 7일 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 <씨엔엔>은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미드 호수에서 또 유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5월 이후 네 번째다. 1936년 후버댐 건설로 조성된 미드 호수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지역 등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인공 호수다.
최근 유례없는 가뭄으로 조성 이후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부패한 통에서 총상 입은 사체가 나오는가 하면 디엔에이(DNA)를 추출하기조차 어려운 오래된 시신들이 발견되는 이유다. 라스베이거스 경찰은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 경계에 걸쳐 있는 지리적 특성상 이 지역 갱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측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1980년대 해발 373m까지 올라갔던 이 호수의 수위는 초대형 가뭄이 계속된 올해엔 처음 저수지가 채워지던 1930년대와 같은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호수의 수량이 전체 수용량 대비 27%에 불과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1일 미국 의회 신문인 <더 힐>도 미 서부 지역이 최악의 건조한 시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경부터 시작된 현재의 가뭄 상황은 남쪽 텍사스에서 북쪽 오리건까지 서부 모든 지역의 수천만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드 호수의 경우처럼 수원지가 고갈되는 사태는 물론이고 언제든 정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가뭄 감시국 자료에 따르면 미 서부의 6%가 농작물과 목초지의 비정상적인 손실 그리고 전면적인 물 비상사태 같은 '예외적' 가뭄 상태다. 23%는 '극심한' 가뭄 상태인데 농작물 손실과 빈번한 물 부족으로 당국이 물을 제한하는 '심각' 상태는 26%나 된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경우 100%가 '비정상적으로 건조'하다.
"지금의 기후는 우리의 물 사용 방법뿐 아니라 어떻게 물을 확보하고 저장하고 주 전체에 분배할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달 말 지역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비와 눈 같은 자연적인 물 공급을 기대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주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이지만 97.5%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기에 매우 다급하고 중요한 의제다. 캘리포니아대 연구원들은 지금의 가뭄이 2030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75%라는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1000년 만의 홍수, 500년 만의 폭우
▲ 지난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홍수로 피해를 입은 켄터키주 로스트 크릭을 방문해 이재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며칠 동안 미국은 1000년에 한 번, 또는 한 해 0.1%의 확률이라고 하는 홍수를 4번 이상 경험했다."
지난 11일 <가디언>은 매번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미국의 여름 홍수를 이렇게 기록했다.
작년 여름 최고 57도를 기록해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데스벨리 지역은 지난 5일 세 시간 동안 약 1인치 반(약 38mm)의 비가 쏟아졌다. 이는 연 강수량의 75%에 해당하는 양으로 '1000년 만의 사건'으로 불린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도로는 물에 잠겼고 자동차들이 떠내려갔다. 폭우에 대비하지 못한 기반 시설은 파손됐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의 경우, 올여름 관광객이 40% 감소했는데 지난 6월 엄청난 홍수로 공원 안팎의 도로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미국의 공영라디오방송 <엔피알>은 여름 관광객이 줄어 울상인 부근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사라졌다면 어느 누가 숙소를 잡고 식당에 가고 래프팅이나 승마를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인구 900명의 이 작은 마을 주민들은 홍수 이후 생계가 막막해졌다. 도로 복구는 앞으로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500년 만이라는 대홍수가 미국의 대표적 국립공원 옐로스톤 주민들의 삶마저 바꿔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서 회복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8일, 회복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켄터키 주를 방문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37명의 사망자가 나온 홍수 피해 지역을 영부인과 둘러본 그는 "마음이 아프다"며 집중 호우와 홍수에 대한 비상 대응 비용을 연방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들은 더 이상 1000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칭부터 바꿔야 합니다."
국립대기연구센터에서 극단 기후를 연구하는 프레인씨는 매번 기록을 경신하는 자연재해를 패턴으로 분석해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연료의 연소로 지구의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거대한 폭우가 될 수 있는 수증기를 품게 되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극단적 날씨 패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겸손한 진전' 상원 통과한 기후 법안
▲ 지난 7일 미국의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상원이 지구온난화, 인플레이션,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킨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 민주당 상원은 가장 부유한 기업들이 그들의 공정한 몫을 지불하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익 집단이 아니라 미국의 평범한 가족들 편에서 처방약과 건강보험, 일상적인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줄이기 위해 투표한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일요일인 8월 7일, 미 상원은 16시간의 긴 토론 끝에 7500억 달러 규모의 의료, 세금, 기후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처방약 값을 낮추기 위한 직접적 약값 협상과 약값의 총액 상한선 설정 같은 의료 소비자 부담을 경감해주는 조치가 골자다. 무엇보다 3690억 달러를 투자해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적 승리'라고 불리는 법안은 51:50의 근소한 차로 통과됐다. 만면에 웃음을 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가장 왼쪽의 버니 샌더스부터 가장 오른쪽에서 있는 조 만친까지 모두 아울러야 했던 힘든 과정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흡족해하는 만친 의원과 달리 의회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버니 샌더스 의원의 사진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공룡 예산 법안의 구멍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법안을 지지할 겁니다. 기후 변화의 위기를 고려할 때, 환경단체들은 이것이 한 걸음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한 걸음 전진한 거니까요."
버니 샌더스는 MSNBC와 인터뷰에서 '매우 작은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매일매일 극단적인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느리고 답답하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의 지구가 성난 모습을 자제하고 얼마나 느긋이 우리를 기다려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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