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11) / 넉점박이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08.19 02:38
- 호수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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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서자와 서얼에 관련된 낱말을 소개했는데, 같은 계열의 다른 낱말들을 더 살펴보려고 한다. 서자를 가리키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꽤 많이 실려 있다. 비교적 널리 사용하던 서출(庶出)을 비롯해 첩출(妾出), 측출(側出), 별자(別子), 외자(外子), 좌족(左族), 초림(椒林) 같은 낱말들이다. 좌족(左族)은 좌(左)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온 관습에 따른 것이며, 한직으로 밀려나는 걸 뜻하는 좌천(左遷)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한편 국어사전에 일명(逸名)이라는 한자어를 올린 다음 ‘서자와 그 자손’이라고 풀이했는데, 일(逸)이 아닌 일(一)을 써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서자를 가리키는 말로 일명(一名)이 여러 차례 쓰였으며, 서자 출신으로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을 뜻하는 일명관(一名官), 서자의 무리를 뜻하는 일명배(一名輩)라는 말도 나온다.
일명(一名)보다 더 독특한 낱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넉점박이(넉點박이): 두 눈과 코, 입의 네 구멍이 있다는 뜻으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아무래도 뜻풀이가 이상하다. 앞부분의 서술을 보면 얼굴에 있는 신체 기관을 가리키는데, 두 귀를 포함하면 얼굴의 구멍은 여섯 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멍이 아닌 ‘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이런 의문점을 풀어줄 단서가 되는 글이 있다.
“좌족(左族)이란 사도(邪道)를 좌도(左道)라 강직(降職)을 좌천(左遷)이라 하는 것과 가티 존우비좌(尊右卑左)에서 나온 말이고 일명(一名)이란 영조 때 증광과(增廣科)에 허통일명(許通一名)한 이후 생긴 말이라 하고 초림(椒林)이란 호초(胡椒)의 맛으로 서얼의 얼음(孼音)으로 비(譬)한 은어라 하고 한 다리 짤다는 건 모계(母系)를 비유한 말이고 넉점박이란 서(庶) 자 미테 넉 점을 가지고 만든 말이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홍명희가 조선일보에 ‘양아잡록(養疴雜錄)’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위에 인용한 건 여섯 번째 연재 글이며, ‘적서(嫡庶)’라는 부제를 달고 1936년 2월 21일 자에 실렸다. 여기서도 일명(一名)이라고 표기했으며, 서자를 뜻하는 ‘한 다리 짧다’라는 표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앞에 허통일명(許通一名)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국어사전에서는 허통(許通)을 지위가 다른 사람이나 집안끼리 서로 교통을 허락한다는 뜻으로만 풀었다. 하지만 이런 풀이는 실제 용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서얼허통(庶孽許通)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오며, 서얼들이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풀어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넉점박이와 관련해서는 서(庶)라는 글자의 아랫부분에 점이 네 개 찍혀 있다는 뜻으로 만들었다는 홍명희의 설명이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말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정도로 홍명희의 우리말 지식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낮잡아보는 말 하나만 더 살펴보자.
목사(目四): 눈이 네 개라는 뜻으로, 안경 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한자가 다르긴 하지만 목사님들이 알면 기분 나빠 할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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