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작가 제공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봄,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다. 모두 네 명이 회원인 모임이다. 회원 넷 중 셋은 학과 선후배 사이로, 그 셋과 나는 사제지간으로 처음 만났다. 졸업 후에도 만남을 이어오다가 4, 5년 전 어느 날부터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되기로 했다. 사제지간이 아니라 친구로 만나자는 내 제안을 모두 흔쾌히 받아들인 덕분이다.우리는 하는 일이 서로 다르다. 한 명은 음악을 하고, 한 명은 그림을 그리고, 한 명은 구독자 수 80만이 코앞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그 친구들과 만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근황부터 소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까지. 그날도 유튜버 친구의 결혼 얘기로 시작하여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반팔’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듣기 불편한 말이 될 수도 있으니 ‘반소매’라는 말을 살려 쓰자는 내 방송을 들었다며 물고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떼었다. 어디선가 ‘물고기’를 ‘물살이’로 바꿔 부르자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물속에 살고 있는 수중 동물들을 왜 우리는 지금까지 ‘고기’라고 부르며 식용의 대상으로만 보아 왔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수중 동물을 주로 그리는 친구답게 자신이 사랑하는 동물들이 ‘고기’로만 불리고 있음을 알고 난 후에는 ‘물고기’라는 말을 대신해서 ‘물살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 이야기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물고기’는 ‘불고기’와 함께 강의 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도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나는 강의에서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같은 ‘고기’가 들어간 단어인데 왜 물고기는 ‘물꼬기’라고 발음하고 불고기는 ‘불고기’라고 발음할까요?”라고 말이다. 말소리를 연구하는 나는 발음에만 신경을 썼을 뿐, 물속에 살고 있는 척추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왜 ‘고기’가 들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니 뭍에 사는 동물은 살아 있을 때 고기라고 불리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 있는 소, 돼지, 닭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반면에 살아 있는 물속 척추동물은 식재료가 아닌데도 고기라고 불린다. 물속 척추동물은 생명체로 우리 앞에 있을 때에도 잠재적 식용 대상으로만 취급되어 온 것이다. 결국 ‘물고기’라는 말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식용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동물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 덕분에 수중 생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발견하고 반성할 수 있었다. 언어 감수성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가치가 있는 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독히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담긴 ‘물고기’를 ‘물살이’로 새로고침하는 운동에 지금부터 동참하면 어떨까?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새 이름이 필요하다. 정말 언어는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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