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단도직입]“한국 외교 과제…미·중 전략경쟁과 한반도 문제 구분하는 것”
입력 : 2021.03.09 20:46 수정 : 2021.03.09 21:01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 평화시계가 멈춘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이 불러온 평화의 기운은 이듬해 2·27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로 급속도로 위축됐다. 그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 효과도 잠시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보조를 맞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선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 윤곽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다리를 놓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남짓 남았다.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을까.
지난 7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57)을 만났다. 그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인 2019년 4월 문재인 정부 두 번째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마침 한·미 군 당국이 다음날부터 연합군사훈련을 시작하기로 예고한 터였다.
김 전 장관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엄중한 한반도 정세부터 짚었다. 그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구체화되면 북·중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밀접해지고, 북한의 비핵화 협상 태도가 경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한국 외교의 과제는 미·중 전략경쟁하에서 한반도 문제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아직 북핵 문제 재검토를 하고 있는데, 이란 핵과 비교하면 북핵은 고도화돼 있고 종류가 다양하다. 개입 시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해결이 더 어렵다”고 했다.
그는 “북핵 문제는 한두 번의 정상회담, 한두 번의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5년 단임제 현실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릴레이 주자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음 정부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엄중한 상황 인식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낙관적 발언을 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도 했다.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가 일상화됐다”(정의용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답변) 등 정부 일각의 발언을 꼬집은 말로 들렸다.
- 지난 4일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에 취임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한반도평화포럼은 2009년 학자·전직 관료·시민사회가 함께 한반도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고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던 때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많은 분들이 활동했다. (전임 이사장은 문정인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다.) 남북 차원의 녹색평화를 본격 논의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을 계획이다.”
북한의 하노이 회담 실패, 그 이후
긴 후유증…북·중 전략적 이해 속
남·북·미·중 ‘4자 회담’ 만들 필요
더 늦기 전 바이든 행정부 설득해야
북핵 협상 조기 가동 않은 상태서
한·미·일 삼각협력 본격화하면
유리한 정세로 바꿀 기회 잃기 때문
- 최근 발간된 ‘창작과비평’ 191호에 기고한 ‘한반도의 새봄을 위해’라는 글에서 ‘2019년 2월부터의 남북관계 교착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착시를 일으킨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하노이 회담 실패의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가 60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하노이에) 가서 협상했는데, 실패했다. 후유증이 길고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남·북·미 삼각관계를 통해서 새 기회를 찾겠다는 북한의 시도가 실패한 뒤 북·중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발생했다. 그 뒤 북한은 비핵화에서 더 강경한 입장으로 후퇴한 것이고, 한국의 역할도 부정적으로 보게 됐다. 이런 북한에 대한 미국 불신이 높아지면서 북·미관계도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전략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북핵 문제 재검토를 하고 있는데, 쉽게 이야기해서 엄두가 안 날 것이다. 이란 핵과 비교하면 북핵은 고도화돼 있고 종류가 다양하다. 또 이란 핵합의 복원은 북핵보다는 관심을 기울여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분명하다는 인식이 바이든 행정부에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를 잘 설득해서 가능하면 빠른 시점에 북핵 협상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북핵 문제 개입 시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해결이 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인식시켜야 한다.”
-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분명한 것 같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구체화되면 북·중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밀접해지고, 북한의 비핵화 협상 태도가 경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핵 협상이 조기 재가동되지 않으면 환경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미·중의 4자 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다양한 부문에서 이뤄지지만, 4자 회담이 만들어진다면 북핵 문제를 다루는 미·중 협력 공간이 만들어진다.”
-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화상간담회에서 ‘싱가포르 회담 선언문을 기반으로 바이든 행정부 대북 외교를 시작하면, 김 위원장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선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목표와 상응조치들의 내역을 재확인한 것이다. 협상 재개를 위한 큰 기둥이지만,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싱가포르 합의문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 핵합의를 경험했는데, 이란 핵합의는 자세한 이행계획서로 구성돼 있다.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팀은 북한 비핵화 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 싱가포르 합의문이 부족하다면 어떤 조치가 있을 수 있나.
“하노이 회담은 실무자들이 합의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일부 제재 완화 교환’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거부해 실패했다. 북 핵능력은 고도화됐고 영변 핵시설은 과거와 달리 북핵 능력의 일부다. 핵시설 폐기를 영변에 한정하는 것은 너무 낮은 수준이라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패한 협상을 바이든 행정부가 그대로 반복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영변 플러스 알파’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핵 동결 대상을 넓힐 수도 있고, 신고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을까.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야기했지만 재미교포 이산가족들의 방북을 이야기했다. 그런 부분들은 아낄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선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조치다. 작은 분야지만 신뢰를 쌓는 것은 중요하다.”
임기 1년 남긴 문 정부
5년 단임제 현실 속 릴레이하듯
다음 위해 실질적 이행 진전시켜야
정부 관계자의 낙관적 발언은 금물
엄중한 상황 인식 국민과 공유해야
- 문 대통령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할 기회”라고 했다.
“북핵 문제는 장기 과제다. 한두 번의 정상회담, 한두 번의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5년 단임제 현실 속에서 릴레이 주자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음 정부를 위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질적인 이행을 진전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협상 재개를 통해 북핵 능력이 고도화되지 않고 동결되도록 해야 한다. 핵 동결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보수세력 등은) ‘핵폐기를 포기하는 것이냐’고 비판하지만, 최종 폐기를 위해서라도 현재 수준에서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
- 정부가 상황을 낙관하는 것 아닌가.
“정부도 상황이 복잡하고 엄중하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상황 관리 필요성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비관적인 전망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국민과 함께 상황을 공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낙관적 발언을 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 전문가들 중에도 막연한 기대감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착시를 일으킨다. 북핵 문제 어렵다. 기대감과 신념으로 되지 않는다.”
- 남북 경제협력도 멈췄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된 이후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북핵 협상이 재개되고 제재가 완화된다고 했을 때 경제협력이 북·중관계 중심에서 남북관계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남북 경제협력 문제를 깊이 있게 접근해야 한다. 남북 경제협력은 비핵화 협상 진전에 달렸지만 그 이전에라도 협력을 통한 우회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
“남·북·중 삼각협력에서 한·중 협력을 우선 추진하거나 남·북·러 삼각협력에서 한·러 협력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컨대 남북관계가 뒷받침되면 경의선을 비롯한 남북 철도 연결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북·중, 북·러 간 철도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한·중 협력, 한·러 협력 등을 통해 접근해서 북한하고 협력을 성사시키는 방법도 있다.”
- 통일부 장관을 하면서 대북 정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결정 구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위상이 가장 높았을 때 (정동영 전) 장관 정책보좌관을 했다. 당시 장관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지금 통일부 장관은 권한이 크지 않다.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 북한은 두 가지 이유로 남쪽을 못 믿겠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미국에 대한) 사대, 둘째는 대결이다. 그런데 사대는 외교의 영역이고 대결은 국방의 영역이다. 통일부 소관 업무가 아닌데도, 책임은 통일부가 져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 조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지 고민해야 한다.”
-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뒤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식으로 구사해왔다. 그래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남북연락사무소는 대한민국 재산권에 해당하는 것인데, 법적 근거 없이 폭파한 것은 불신을 깊게 만든다.”
남북 경제협력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 높아져 우려
한·중, 한·러 협력으로 물꼬 트는
우회 기회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도쿄 올림픽이 한·일 간 대화뿐 아니라 남북, 북·미, 북·일 간 대화의 기회도 될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대결 국면을 협력 국면으로 전환시켰던 경험이 있다.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 평화다. 도쿄 올림픽도 평화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은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통된 바람이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올림픽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 경우 올림픽과 평화를 연계시키려는 시도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넘어갈 것이다. 도쿄에서 안 된다면 베이징에서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 한·미 군 당국이 연합훈련을 시작했다. 규모가 축소됐다지만 북한 무력도발 등이 우려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관계가 좋을 때는 정상 훈련을 해도 북한이 수용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으면 축소를 하더라도 관계 악화 빌미로 삼았다. 2021년 봄 훈련은 정세 전환 기회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이고, 북한 입장에서 대응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보수층은 우리 정부가 너무 북한을 감싸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평가, 대응에 대해 정부는 상황 관리 차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진보, 보수 정부의 공통된 특징이다. 미국도 한국 정부 입장을 오해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이 있다. 고립과 봉쇄보다는 접촉이 변화에 효과적이고, 압박보다는 설득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우리 나름의 입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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