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0 07:33최종 업데이트 21.03.10 08:04오연호(oyh)
▲ 96세의 질주. 용평리조트에서 스키 타는 이근호 이사장 | |
ⓒ 용평리조트 제공 |
그의 답이 뜻밖이었다.
"평소에 기운이 없었다. 쉽게 피로했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 '기운 없음'이라니!
이근호 설해장학재단 이사장은 1926년생이다. 한국나이로 올해 96세.
이 이사장은 요즘 누구보다도 스키 시즌이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 한다. 그는 용평스키장에서 매일 2시간씩 스키를 탄다. 오전 9시면 스키 복장을 하고 곤돌라를 타기 위해 젊은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선다. 인터뷰를 한 이날도 막 2시간 동안 20킬로미터를 질주한 뒤였다. 이 이사장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96세에 매일 2시간씩 스키를 탈 정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의 동창들은 "단 한 명만 남고 다 저 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여전히 이리 건강하게 살아남아 인생을 즐기고 있을까? 그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평소에 체력이 약했다. 쉽게 피곤함을 느낀 편이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았고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다. 몸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았다. 특히 피로하니 잠을 많이 잤다."
나의 약점을 나의 강점으로 만든 인생이었다.
▲ 60세에 처음 스키를 타서 36년째 즐기고 있는 이근호 이사장 | |
ⓒ 오연호 |
이근호 이사장과 용평스키장의 한 호텔에서 만나 두 시간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또 한번 놀란 건 그가 스키를 처음 배운 때가 60세라는 거였다. 60세는 은퇴, 정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그 60세에 스키를 처음 배웠고, 그 후 36년째 즐기고 있다.
그의 삶이 말한다. 인생에 늦은 때는 없다, 인생은 내내 성장기다! 그는 "되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50,60대 때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이근호 이사장은 96년 인생에서 제일 잘 한 것 중의 하나가 50대 중반에 의사의 권고에 따라 미련없이 쉼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해운업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의사를 찾아갔더니 노이로제가 심하다고 쉬라고 했다. 그래서 사업을 접고 그 후로는 무리하지 않고 살았다."
이 이사장은 이후 친구의 권유로 대한스키협회 부회장(1983~1987년)이 되었고, 사업을 정리하면서 만든 자금을 종자돈으로 하여 설해장학재단(2003년~)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 장학재단에서는 스키유망주들을 발굴하여 육성하는데 10억여원을 썼다.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육 개혁이 꼭 필요하다"면서 입시를 위한 교육을 삶을 위한 교육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다음날 아침 스키장의 곤돌라 앞에 줄을 서 있는 이근호 이사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 제가 58세인데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이근호 이사장과의 영상인터뷰는 유튜브 <오연호의 꿈틀리마을>에서 볼 수 있다.
ⓒ 오연호 |
다음은 인터뷰 문답 일부 요약.
- 96세에 매일 20킬로미터씩 2시간 정도 스키를 타시는데. 몸에는 지장이 없나요?
"몸에 지장이 있으면 못 타죠. (스키 탄 후에) 목욕하고 나와서 피곤하면 낮잠 한숨 자면 회복이 됩니다."
- 매일 스키를 타시는데 스키를 타는 재미의 핵심, 스키를 타면 무엇을 느끼시나요?
"내 생명이 연장된다.... 그걸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 나이에 병도 들고 병원에도 다니고 그러는데, 스키를 타고 있으니 나는 참 복 받은 축에 들어간다. 고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스키장에 내가 서 있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시는군요.
"네."
- 평상시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합니다. 집에 압력자전거가 있는데 그걸 100~200번, 아침저녁으로 합니다. 스키를 타야 하니까. 다리가 건강해야 하니까."
-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나요?
"내 생각에는 잠을 많이 자야 합니다. 한 6~7시간 잡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 정도로 잤습니다."
- 잠을 푹 잘 주무신 것을 보면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하신듯 합니다. 마음을 편히 먹는, 선생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으셨나요?
"만일에 걱정거리가 생기면 '이건 내 운명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크게 걱정이 없어요. 걱정이 생기면 '이건 뭐 나 혼자 겪는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일인데, 어떻게 매일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나' 하고 포기해버리는 거죠."
- 평상시에 '내가 정신 건강도 괜찮구나' 이런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고,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몸에 해로운 짓을 안 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술 안 먹고, 과식 안 하고."
- 그런 절제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어떻게 절제의 마음을 늘 간직할 수가 있죠?
"체력이 왕성하고 힘도 나고 어떤 유혹을 느끼고 그런 사람도 있겠죠. 나는 평소에도 기운이 좀 없고, 낮잠이라도 한숨 잤으면 싶고 그러면 낮잠을 자버립니다."
- 함께 스키 타시는 분 중에 90대 있나요?
"없습니다. 80대가 1~2사람 있었는데 한 사람이 몇 달 전에 돌아가 버리고. 또 한 사람은 병원에서 의사가 스키 타지 말라고 해서 포기해 버리고."
- 동창회도 안 하신 지도 꽤 오래되셨죠?
"동창회도 안 한 지가 한 2년 됩니다. 서울에는 한 사람도 없고, 대구에 딱 한 사람 남아 있습니다."
- 동창들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인생무상이죠.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니 언젠가는 나도 따르리라 그런 생각이죠."
▲ 용평리조트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근호 이사장 | |
ⓒ 오연호 |
- 50대 때에는 사업을 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이 안좋았다고 하셨는데요. 인생을 오래 살아보시니까 돈이란 뭐 같습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돈, 돈, 돈 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재벌처럼 돈을 그렇게 많이 벌면 복이 아니고 우환이 됩니다. 그냥 적당히 벌어서 자식들 교육시키고 자기가 먹고 살고 하는 데 필요한 게 돈입니다."
- 여러 세대를 겪어봤잖아요. 이 대한민국 사회가 점점 나아진다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옛날보다 못한 게 더 많아진 게 아닌가 느끼십니까?
"그거는 각자가 직면한 환경에 따라서 다르죠. 우리가 제일 고쳐야 할 게 교육입니다. 교육제도."
- 어떤 면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교육이 아니라 '누가 돈을 많이 가졌나' 전쟁이거든요. 왜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 공부를 시키고, 중고등학교 때도 과외 공부를 시켜가지고..."
- 입시를 위한 교육보다는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되는 공부, 수업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고 있다는 거죠?
"안 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교육제도를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각 가정을 망하게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는 이 문제가 제일 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근호 이사장과의 영상인터뷰는 유튜브 <오연호의 꿈틀리마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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