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나몰라라 '하청 인력업체' 송환대기실에 책임 넘겨... 박영순 의원 "정부가 책임져야"
▲ 2019년 9월 28일 오후 4시 40분께 인천공항 제2터미널 3층 246번 탑승구 인근에서 하의 속옷만 입은 채 앉아 있는 30대 외국인 남성 A씨가 발견됐다. | |
ⓒ 박영순 의원실 |
2019년 9월 28일 오후 4시 40분께 인천공항 제2터미널 3층 246번 탑승구 인근에서 하의 속옷만 입은 채 앉아 있는 30대 외국인 남성 A씨가 발견됐다. 이 사실은 오후 4시 41분 국정원, 경찰, IOC(인천공항 오퍼레이션 센터),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에 전파됐다.
이후 순찰 보안요원(16:42), 기동타격대(16:45),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16:45), 경찰(16:53), 항공사 직원(16:57),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및 송환대기실 직원(17:06) 등이 차례로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4시 51분 옷을 차려 입었으나 계속해서 난동을 이어간 A씨는 오후 6시 25분이 돼서야 잠잠해졌다. 이후 순찰 보안요원의 '주변관망 순찰'을 받던 A씨는 오후 8시 18분 경찰, 항공사 직원과 함께 면세구역 내 환승호텔로 이동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2시 44분 "A씨가 의식불명 상태"란 신고가 국정원, 경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세관, IOC, 항공사에 전해졌다. A씨는 오후 3시 5분 인천공항 제2터미널 공항의료센터를 거쳐 오후 3시 24분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그날 인천공항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국정원까지 전파된 '공연음란' 신고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 소란을 피우자 인천공항 관계기관 직원들이 이를 제압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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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대덕,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을 통해 입수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테러상황실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었다. 오전 11시 36분 인천공항에 도착한 A씨는 면세구역에 머물고 있다가 오후 4시 56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248번 탑승구)를 탔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오후 4시 40분께 246번 탑승구 인근에서 '공연음란' 상태로 발견됐다.
이후 상황에 대해 보고서에는 "오후 4시 42분 순찰 보안요원이 현창에 도착해 소란행위자(A씨)에게 옷을 입으라고 안내했으나 의사소통이 불가했다"며 "오후 4시 45분 기동타격대가 현장에 출동해 소란행위자 옷을 이용해 임시로 (몸을) 가렸고 오후 4시 51분 소란행위자가 옷을 입었다"라고 나와 있다.
오후 5시 6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및 송환대기실 직원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이때 A씨의 사정(일본에서 입국이 거부돼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야 함)이 확인됐다. 오후 5시 25분 그의 가방에선 일본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 전립선약 등이 다수 발견됐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승객이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우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가방에선 일본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 전립선 약 등이 다수 발견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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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25분 잠잠해진 A씨는 오후 8시 18분 경찰, 항공사와 면세구역 내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A씨를 환승호텔에 홀로 두기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송환대기실 직원에게 떠넘겨졌다.
송환대기실은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 승객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머무는 면세구역 내 공간으로 인천공항뿐만 아니라 전국 9개 공항·항만에 설치돼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승객 5만 5547명이 거쳐가는 등 출입국 관리를 위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정부나 인천공항공사가 아닌 여러 항공사가 연합해 만든 항공사운영위원회(AOC)의 하청 인력업체 직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 관계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삿대질을 하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 | |
ⓒ 박영순 의원실 |
밤새 이어진 난동, 그런데...
송환대기실 수용 승객이 아니던 A씨는 원칙적으로 송환대기실 직원의 상시 관리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송환대기실 직원(항공사운영위원회의 하청 인력업체 소속)이 돌발행동을 보이던 A씨를 원활히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법적 권한이나 행정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전달받거나 현장에 나왔던 국정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 경찰, IOC, 인천공항공사 여객서비스팀, 순찰 보안요원, 기동타격대, 경찰, 항공사 등 어느 곳도 A씨 관리를 맡지 않았다. 결국 가장 권한이 없는 송환대기실 직원이 우선해 공적 의무를 떠맡은 셈이다.
당시 환승호텔에서 A씨를 관리한 송환대기실 직원 B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갑자기 그 승객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갑자기 벽시계를 깨 (유리 파편으로) 자해를 시도하고 이를 말리는 저를 공격했다"라며 "우리에게 (그를 제압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저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잠시 잠잠해졌다가 또 소리 지르고, 발작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몸으로 누르기도 하고 팔을 잡기도 하면서 제지했다"라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끈으로 묶었다 다시 풀어주기도 하는 상황도 있었다. 저도 목과 손에 상처를 입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밤을 샜던 B씨는 "A씨가 겨우 잠들었고 잠꼬대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다, 조금 이따가 쿠알라룸프르행 비행기에 태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이불을 다시 덮어주러 갔는데 호흡이 미약한 것 같아 119를 불렀다"라고 떠올렸다. 앞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테러상황실 보고서엔 이후 상황이 이렇게 담겨 있다.
14:47 구급대 및 보안요원 현장 도착
14:58 환자 이동, 동편 상주직원통로 내 화물 엘리베이터 사용
15:03 인천공항 제2터미널 공항의료센터 도착
15:24 구급차량 이용 외부 인하대병원으로 이송
16:39 응급환자 사망 최종 확인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워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그는 환승호텔에서 벽시계를 깨 자해를 시도하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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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된 송환대기실 직원
문제는 이후 벌어졌다. B씨를 비롯해 A씨를 관리한 송환대기실 직원 3명이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B씨는 "1차 공항경찰대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감금치사 혐의를 받아 조사를 받게 됐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 사건 이후 1년이 넘었는데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아무도 보호해주는 곳이 없었다"면서 "원래도 하청 인력업체라 고용이 불안한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 인천공항 출입증이 안 나오는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답답하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당시 현장에 인천공항 내 머무는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다 왔음에도 어느 누구도 (A씨를) 책임지지 않았다"라며 "저희는 하청 인력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A씨를) 떠맡았다. 우리가 권한을 갖고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노조(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송환대기실분회)의 김혜진 분회장은 "(A씨의) 사망 원인과 우리 직원의 상관관계가 드러난 것도 아닌데 1년 동안 우리 직원이 고통을 겪고 있다"라며 "권한이 있는 국가기관은 발을 빼고 힘없는 우리만 등 떠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송환대기실 관리 주체를 국가로 명확히 하고 직원들을 공무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이런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후 직원들이 엄한 일로 피해를 입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9년 9월 28일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던 외국인 승객 A씨가 인천공항에서 소란을 피워 환승호텔로 옮겨졌다. 밤새 환승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A씨는 다음 날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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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의원 "송환대기실 직원, 보호 방안 마련해야"
송환대기실의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데 따른 문제는 앞서 <오마이뉴스> 보도와 국정감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관련기사 : 직원은 뺨 맞고 승객은 발작... "전쟁터나 다름 없다" http://omn.kr/1p2lp / 국감장 '술렁' 이 영상... 김현미 "불합리" 진선미 "충격적" http://omn.kr/1pqje).
송환대기실이 이렇게 운영되는 이유는 출입국관리법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 제76조는 입국이 불허된 승객의 송환 의무는 물론 그 과정의 비용까지 "운수업자"가 지도록 정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박주선 의원("운수업자에게 책임이 없을 경우 수송 비용을 제외한 송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한다")과 윤영일 의원("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송환대기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 개정에 나선 박영순 의원은 "송환대기실 업무는 국가 공권력과 행정력이 엄격하게 작동해야 하는 공간임에도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불합리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해당 사망 사건에서 보듯 정부가 민간 인력업체 소속인 송환대기실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선 안 되고 이들을 보호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송환대기실 운영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업무 인력을 공무직화해야 한다"라며 "이를 통해 국가 공권력과 행정력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국정감사 직후 발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2일 국정감사 현장조사를 통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 문제를 들여다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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