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 김신애 목사와 자캐오 신부 “낙태죄 완전 폐지하라”
두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적 범죄를 정하는 데 종교적 잣대를 들이밀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종교적 관점으로 본다 해도, 임신중지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죄를 지은 건 오히려 교회라고 지적했다. 교회의 역할은 임신중지 여성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① “낙태한 여성에 손가락질, 종교의 역할 아니다”
② “낙태죄 존치, 하나님의 뜻일까? ‘남성 대리자’의 뜻일까?”
‘낙태죄 존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교리는 뭘까? “그런 교리는 없다”라고 자캐오 신부는 일축했다. 고대 사회에서 통용되던 기준으로 성서를 해석해, 임신중지를 법률상 범죄로 취급하려는 입장은 틀렸다는 취지다. 다만 ‘소중한 생명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종교윤리 측면에서 전통적인 교회의 주장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생명은 신이 창조해 선물한 것이라고 가르쳤죠. 고대 사회에서 양적 번성은 중요한 가치이었기에, 교회는 ‘생육하여 번성하라’는 가르침을 강조했어요. 전쟁이나 율법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못하게 했죠. 이런 입장은 고대 사회에 기록되어 편집된 성서의 중요한 기둥이죠. 이를 곧바로 현대 사회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별개로요.”
그러나 이러한 교리는 낙태죄 존치 주장의 “표면상 이유에 불과하다”라고 김신애 목사는 꼬집었다. “교회 안의 남성중심적 여성혐오 문화를 교리로 포장한 거예요. 교리가 만들어졌던 고대에서 임신중지는 고려사항이 아니었으니까요. 임신중지가 공인된 기술 없이 여성들 사이에서 민간요법 형태로 전해지던 시절이었죠. 생명에 대한 결정권은 하느님에게 있다고 하면서, 사실상 남성 대리인이 결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낙태죄로 고통받는 이는 누구인가”
자캐오 신부는 ‘낙태죄가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낙태죄로 인해 누가 고통받는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때 임신중지를 시도했다. “크면서 어머니와 갈등하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어머니를 미워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게 됐죠. 어머니는 저를 낳는 순간 원치 않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만 했어요. 저를 낳고 이혼을 하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저를 지킬 거냐 말 거냐로 단순 명료하게 끝나는 일이 아니었어요. 젊은 여성들은 고통과 소외, 불평등한 상황을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어요. 제가 몰랐던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이해한 뒤,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사과드리고 화해했죠.”
개개인의 입체적인 삶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교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자캐오 신부는 말했다. “그리스도교 이야기 자체가 한 개인에게까지 닿는 서사에요. 성서를 보면 하느님이 개개인의 머리카락까지 모두 세고 있다고 해요. 고대 집단주의 문화에서도 한 사람의 삶을 섬세하게 살핀다는 걸 은유적으로 강조한 건데,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개인의 삶을 단면적으로만 판단하는 종교가 아니에요”
교회의 낙태죄 존치 주장엔 여성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시각이 숨어있다고 김신애 목사는 지적했다. “임신중지는 여성들 삶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의 문제에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고, 각자 삶의 맥락이 고려돼야 하는 문제죠. 낙태죄는 여성들을 부당한 상황에 놓이게 하고, 비극을 경험하게 합니다. 낙태죄 폐지의 긴 투쟁을 통해 여성들은 우리의 경험이 법적 언어로 축약되지 않으며, 우리의 삶을 함부로 결정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자기 삶에 대해, 특히 아이의 삶에 대해 가장 고민하고 가장 잘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성 본인이니까요”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을 손가락질하는 건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인생이 맘대로 안 되잖아요. 그걸 성경에선 모든 일이 하느님 뜻대로 되는 거라고 하는데, 비극이든 희극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종교인의 자세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도해주고 보살펴주었던 게 본래 모습이에요.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도 싸다며 손가락질하는 행위는 교회가 지금까지 쌓은 헌신과 희생의 모든 것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의 고통과 공명 위해 인간이 된 예수
“죄를 짓는 건 여성의 실질적 고통 외면한 교회”
두 사람은 함부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립 구도로 놓아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교회의 시각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자캐오 신부는 비판했다. “태아를 인간으로 확정된 존재로 여기는 건 논리적 비약이죠. 태아가 인간인지는 의학적·과학적·철학적 검토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인간의 원죄가 남성의 정액을 통해 전해진다고 가르쳤어요. 수십 년 전까지 태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태아를 인간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죠. 이젠 슬그머니 감추는 주장들이에요. 종교라고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작고 약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이때 작고 약한 소리는 상상 속에서 구성한 고통이 아니라 실질적 고통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해 기도할 순 있겠지만, 그것을 전제로 현실 세계의 결정을 내리는 건 미신적 행위입니다. 실질적 고통에 놓인 존재들과 동행하는 것이 종교인의 첫 수칙이에요. 그리스도교는 모든 생명의 고통과 공명하며 또 다른 삶으로 안내하려고 무한한 신이 유한한 인간으로 된 존재가 예수라고 가르치거든요”
죄를 짓고 있는 건 교회라고 자캐오 신부는 비판했다. “한국 주류 그리스도교는 임신중지를 살인처럼 생각하도록 ‘여성 vs 태아’라는 대립 프레임을 강조하지만,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 사회에 온전히 이뤄지도록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회는 죄를 짓고 있어요.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고통에 침묵하고 그 고통이 경감되도록 애쓰지 않은 죄가 더 크죠. 임신중지 결정은 사회적 문제인데,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네가 다 책임져라’는 건 반기독교적이에요”
임신이 시작된 순간부터 태아와 엄마는 하나의 몸이라고 김신애 목사는 강조했다. “태아와 엄마의 운명을 굳이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건 탁상공론입니다. 엄마가 비극을 겪으면 아이도 비극을 겪고, 아이가 위협적인 삶에 노출되면 엄마도 위기에 처해요. 이때 모든 정보와 가능성을 검토하고 최대한 안전한 미래를 설계하는 건 누구보다 성인인 모체의 책임이 되죠. 아빠는 물론 가족이나 타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하물며 국가나 교화가 여기에 초월적 권위를 가지고 개입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제도적, 법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도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한다는 전제하에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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