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개의 천연색 엘이디(LED)가 장착된 픽셀스틱(라이트 페인팅 도구)을 들고 지나가면 공중에 빛이 뿌려진다. 카메라 셔터를 4초 동안 열어 공중에 뿌려지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사진과 평창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를 함께 담았다. 평창/김명진 이정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분단의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의 땅 남강원도에 속해 있는 평창은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개최지다. 올림픽 휴전 기간 동안 의미있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2017년을 뒤흔들었던 한반도 위기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2018년 평창에서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낼 천금같은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하나된 열정. 새로운 지평.’ 평창 겨울올림픽(2월9~25일)이 열리는 2018년 새해가 밝았다. 평창에 이어 2020년 여름 도쿄와 2022년 겨울 베이징까지 ‘평화의 제전’은 앞으로 4년간 동북아에서 릴레이로 치러진다. 평화를 향한 열정으로, 냉전의 유일한 섬으로 남은 한반도의 새 지평을 열 기회다.
미국외교협회(CFR)는 2018년 미국이 직면하게 될 ‘8대 안보위협’ 가운데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첫손에 꼽았다.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보면 결코 무리한 평가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23기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한차례(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11월29일엔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의 도발적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백악관에선 공공연히 ‘선제타격’, ‘예방전쟁’이 거론됐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 전략자산을 대거 전개시키며 위기감도 키웠다. 한반도는 1년 내내 ‘위기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북-미가 실제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유엔 헌장 2조3항은 “회원국은 국제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의 근거로 삼는 헌장 41조는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조치”에 국한돼 있다. ‘자위적 차원’의 군사력 사용의 명분이 되는 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란 전제를 달고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위기감이 가시지 않는다. 북-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소한 실수와 판단 착오가 언제든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이를 두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잠든 채 걷듯 전쟁으로 빨려들 수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상황의 엄중함은 미 의회의 이례적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는 지난해 11월14일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권한을 따져묻는 청문회를 열었다. 상·하원을 막론하고 미 의회가 핵무기 사용 문제를 두고 청문회를 연 것은 냉전이 불을 뿜던 1976년 3월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북-미 사이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실수든 판단 착오든 ‘군사적 옵션’이 가동된다면 한반도는 파멸 수준의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에 나선다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은 즉각 보복 대응에 나설 것이다. 쉽게 전면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국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관련 보고서에서 “개전 초기 불과 몇시간 안에 재래식 무기 공격만으로도 최소한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일단 멈춰야 한다. 더이상의 정세 악화를 막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위기의 한복판에도 기회는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1월13일 만장일치로 ‘평창 올림픽 휴전 결의’를 채택했다. 올림픽 개막 1주일 전인 2월2일부터 패럴림픽(3월9~18일) 폐막 1주일 뒤인 3월25일까지 유엔 회원국은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 결의 채택 당시 마리아 테오필리 유엔 주재 그리스 대사는 “차이와 불평등, 갈등으로 점철된 세계가 잠시나마 휴전에 합의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19일 미국 <엔비시>(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평창 올림픽 뒤로 연기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12월29일(현지시각) 기자 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연기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 정부가 발표할 것”이라며 “우리는 늘 훈련 일정을 조정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통상 매년 2~4월 열렸던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은 ‘올림픽 휴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52일간의 ‘올림픽 휴전’이 만들어낸 평화의 문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맞물려야 한다. 이럴 경우 잠정적이나마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이 성사될 수 있다.
낙관은 금물이다. 어렵게 대화가 시작돼도 당장 손에 쥐는 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암울한 전망을 할 필요도 없다. 경험도 있다. 냉전체제 해체 직후인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2년 동안 남북은 모두 8차례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이를 통해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17일)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1991년 9월27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12월13일)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발효(1992년 2월19일) 등을 이끌어냈다. ‘한반도 평화여건 조성’과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긴장완화 조치’를 이유로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릿 훈련을 1992년 중단한 게 결정적이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91년 중반께 이듬해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결정해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등 숱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기회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2018년 평창을 시작으로 앞으로 4년간 동북아 3국을 돌며 열리는 ‘평화의 제전’을 버팀목 삼아 긴 안목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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