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 공범 최순실엔 25년 구형
이영선·장시호 등 유죄 판결문엔
일관되게 “대통령 지시” 판단
국정농단 1심 ‘박근혜 재판’만 남아
탄핵 법정에선 “사회 통념”
형사 법정에선 “정치 보복 당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국선변호인이 ‘내심’ 짐작해 변론
지금으로부터 꼬박 1년 전인 2016년 12월9일 금요일 오후 4시10분. 영상 기온을 가까스로 웃도는 추운 날씨에 사뭇 뜨거운 공기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주변을 데웠다.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순간이었다. 1시간40분 뒤,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됐고 사건번호 일곱 글자가 이후 대한민국의 1년을 바꿨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과 비리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한 사익의 추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국민은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측근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점에 분노와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 이 탄핵소추로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 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탄핵소추 의결서 속 피청구인 박근혜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민간인 최순실씨의 대리인에 가까웠다. 대통령으로서 법률과 헌법 수호 의무에 눈감은 채 ‘40년 지기’ 최씨에게 권력을 위임하다시피 했단 내용이었다.
박 전 대통령 생각은 달랐다. 직무가 정지된 지 이레 만에 헌재에 낸 첫 답변서를 통해 그는 침묵을 깼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해도 이는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White House Bubble·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갇혀 외부와 고립되는 상황).”
“대통령이 최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씨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형사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총량 대비 1% 미만이다.”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채우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촛불과도 온도 차가 나는 답변이었다. 이후 92일간 탄핵심판이 이어지는 동안 박 전 대통령 쪽은 헌재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리인’으로 묘사하고, “부양해야 할 자식 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을 따뜻한 시각에서 봐달라”는 등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지는 발언을 내놨다.
법정 정치투쟁 고수하는 ‘피고인 박근혜’
1년 뒤,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아니라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 박근혜는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구치소로부터 인치 보고서가 왔습니다. 피고인이 법정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고 법정에 인치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의 보고서입니다. 박근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의 인치도 현저히 곤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에 의해서 피고인 출석 없이 그대로 공판 절차 진행하겠습니다.”(12월12일 김세윤 부장판사)
지난 10월16일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정치투쟁을 선포한 뒤 피고인석은 8주째 덩그러니 비어 있다. 피고인 없이 열리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열렸다. 접견을 거부하는 피고인 대신 다섯명의 국선변호인이 그의 내심을 미루어 ‘짐작’하며 변론할 뿐이다.
“(문체부로부터 지원 배제 리스트를) 받은 뒤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이름이 튀거나 청와대로 보냈을 때 배제될 수 있는 단체들은 아예 문체부에 (명단을 보낼 때부터) 단체명과 대표자명을 바꿨습니다. 일종의 허위보고 내지는 조작을 한 겁니다. 선정이 위험한 단체들에는 전화해서 ‘이번에 말고 다음번에 신청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도 했습니다. 심의위원들에게는 ‘상부기관에서 이런 게 왔으니 심의위원 보이콧을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조건부 탈락’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보고하고 실제로는 일정 조건이 되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번째 궐석재판이 열린 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아무개 본부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을 증언했다. 문체부와 윗선으로부터 “청와대가 싫어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요구받았고, 배제 대상을 줄이기 위해 갖은 고육지책을 썼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저도 왜 지난 3년 동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몸담은 현장에서는 저더러 부역자라며 손가락질합니다. 박 전 대통령한테 책임을 꼭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랙리스트’ 업무는 피해자뿐 아니라 대다수 집행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김씨 말을 들어야 할 피고인 박근혜는 자리에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이란 현실도, 국정농단의 정점이란 혐의도 부정하지만, 법의 판단은 다르다.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2017년 3월10일, 헌재 파면 결정)
탄핵심판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끝내는 데 그쳤지만, 형사재판은 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16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밖으로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일주일에 한번꼴로 속속 날아드는 공범들의 유죄 판결은 박 전 대통령에겐 암울한 소식이다.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11월15일 선고), 케이티(KT) 인사 청탁 및 68억 광고 수주 압력 행위의 공범인 차은택씨(11월22일)에 이어 최씨 조카 장시호씨 등이 삼성과 문체부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지원을 강요한 혐의로 지난 6일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찌감치 선고가 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포함하면 관련 사건 8건 중 6건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상황이다.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 전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은 더 작아 보인다.
“피고인의 지위나 업무 내용 등에 비추면 무면허 의료 행위를 청와대 내에서도 받으려는 대통령의 의사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서울고법 형사5부,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의료법 위반 방조’ 2심 선고)
“삼성전자의 영재센터 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이 부회장에 대한 요청과 이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장시호씨 1심 선고)
11개 혐의 ‘최다 공범’ 최순실씨 역시 내년 1월26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4일 최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하며 1년을 달린 국정농단 ‘1호’ 재판을 마무리했다.
“피고인은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입니다. 피고인은 박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로서 친분관계를 이용해 소위 지난 정부의 ‘비선 실세’로서 정부조직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된 국가위기 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입니다.”(검찰)
“재판 내내 피고인이 본건 범행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별다른 근거 없이 검찰 및 특검을 비난하는 법정 태도를 보며 참으로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국민의 가슴에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줬습니다.”(특검)
징역 25년 구형에 최씨는 무너졌다. 비명과 오열이 섞인 말을 늘어놓으며 격렬히 저항한 뒤 조기퇴정했다.
“저는 박 대통령이 젊은 시절 그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난 그분의 강한 모습에 존경과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그분을 40년 동안 곁에서 지켜온 것뿐입니다. 사실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려운 시간이 많았고 박 대통령을 탄압하기 위해 정권마다 저희에게 이뤄진 세무조사와 의혹 제기는 완전히 제 삶을 무너지게 했고 딸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아 어린 학생의 꿈은 없어져버렸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되셨을 때 떠났어야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떠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이런 국정농단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을 박 대통령과 충격을 받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반성은 없었다. 최씨는 ‘비선 실세’라는 말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자신은 ‘투명인간’이라고 했다. 이경재 변호사 역시 “최씨는 드러나지 않은 대통령의 조력자”라며 거들었다. 투명인간이든 숨은 조력자든 공직자에겐 그 존재만으로 치명적이라는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과 그를 보좌한 자신에 대한 연민을 토해내며 23분간의 최후진술을 끝맺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 곁에서 투명인간같이 살아온 삶은 정말 어려웠고, 제 개인의 삶은 실종되었고 결국 가족들의 많은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결코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 어떤 사익도 추구하지 않았고 어떤 이익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씨를 끝으로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은 박 전 대통령 사건만 남겨 두게 됐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된 탄핵을 막을 기회는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탄핵 직전 박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진실을 말할 기회를 여러 차례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거짓말을 내놓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지난해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장에 나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꿋꿋했다.
“최순실을 제가 알았다면 무언가 연락을 하거나 통화라도 한번 있지 않겠습니까?”(김기춘 전 실장)
“최순실을 언제 알았습니까?”(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이번에 태블릿피시가 노출되어 가지고 이름이 나와서 알았습니다.”(김)
“(정윤회 문건을 제시하며) ‘최태민 목사의 5녀(女) 최순실’ 이렇게 ‘정윤회 부’라고 등장하거든요.”(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착각했습니다.”(김)
“정말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을 하십니까? 여기 첫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최순실입니다.”(박)
“본 지가 오래돼서 착각했습니다.”(김)
“아직도 대통령을 매력적(charming)이고, 위엄(dignity)하고, 엘레강스(elegance) 우아하다’고 생각합니까?”(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대답하세요.”(안)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까?”(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김)(2016년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지근거리에서 국정농단에 눈감았던 참모들은 탄핵을 막지 못했고, 끝내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과오로만 남은 박근혜 정부 4년을 돌이켜보며, 박 전 대통령과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