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전 집행위원장)
1. 항모전단은 언제 오나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북과 미국의 ‘말과 행동’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북에게 핵과 미사일이 있다면 미국은 더 그렇다. 그중 북이 가장 예민하게 대하는 것은 항모전단이다. B-1B 전략폭격기가 뜨면 비난과 위협 정도지만, 항모전단이 배치되면 차원이 다른 긴장이 조성된다.
이처럼 항모전단은 전쟁위기를 몰고 오는 미국 쪽 손바닥이다. 올해 들어 1개 이상의 항모전단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전개된 경우는 알려진 것만 모두 4회다. 한 번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머물렀으니, 사실상 1년 내낸 전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항모전단은 언제 나타날까? 첫째, 북의 도발을 사전 억제하기 위해서란 설명이다. 4-5월의 두 개 항모전단이 그런 경우란다. 정말일까? 군사적 압박이란 단추를 누르면 더욱 강경한 대응이 나온다는 것이야말로 북미 관계 기본 원리다. 실제로 북은 5월 14일 화성-12형 중장거리미사일 최초 시험발사, 7월 4일 사상 첫 번째 ICBM(화성-14형) 시험발사, 9월 3일 수소폭탄 실험 등 초강경 반응을 했다.
둘째, 북의 핵, 미사일 도발을 사후 응징하는 차원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5월 14일 화성-12형 미사일 발사 이후 오히려 5월 31일 칼빈슨 항모전단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또한 트럼프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던 북의 첫 번째 ICBM 발사 이후에도 오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보인 9월 3일 수소폭탄 실험 직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거대한 몸집이 다시 나타난 시점은 수소폭탄 실험으로부터 쳐도, 한 달하고 일주일이 지난 10월 10일 무렵이다.
미 항모전단이 한반도에 오는 이유가 북 핵, 미사일을 억지하거나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는 ‘다수설’은 이처럼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작동원리는 무엇일까? 북미 간 대결 밖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2. 말로는 억지, 실제로는 반작용 불러
1월 1일 북이 신년사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이 최종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자, 바로 다음날 트럼프 당선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철썩 같이 말했다. 당시 ‘그런 일’을 정말로 저지하려 했다면 방법이 있었다. 대화와 협상이란 단추를 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핵, 미사일 동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1.9)”는 대화파의 권고, “미국이 핵전쟁연습을 그만두면 된다(최강일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NBC 인터뷰. 1.25)는 북의 사실상 협상 제안을 모두 일축했다. 거꾸로 그는 참수작전과 선제타격이란 초고강도 압박을 선택한다.
1월 12일 매티스 국방장관 후보자는 ‘북한 핵 시설 격퇴 계획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해, 선제타격을 공론화한다. 2월 3일 매티스 국방장관은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 강도를 높이기로 한국과 합의한다. 3월 13일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은 이랬다. 참수작전 - 3월 10일 요인 암살에 특화된 미 해군 특수부대가 항공모함 칼빈슨에 탑승해 한국 주변 해역에서 임무를 연습했다. 선제타격 - 3월 19일 칼빈슨 항모전단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올랐다. 올해 처음 일본에 배치된 최신예 F-35B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날아왔다. 폭격 후 주일미군기지로 돌아가려면 공중급유가 필수라는 점에서 훈련의 현실적 의미가 느껴진다. 점령 - 3월 27일에서 4월 5일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평양진격훈련이 진행됐다. 이처럼 긴장이 꼭대기에 이른 직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3. 시진핑과 틀어진 트럼프, 칼빈슨 항로변경
미‧중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북 핵, 미사일, 둘째 미국의 무역 적자, 셋째 남중국해 등이다. 남중국해의 경우 “중국의 인공섬 건설을 차단하겠다(틸러슨 국무장관 후보자. 1.11)”던 미국이 “국제 규범의 준수를 촉구한다”는 수준으로 한 발 물러서며 잘 넘어갔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개는 달랐다. 북 핵, 미사일 관련,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유엔 제재 이행 등 기존 합의 사항을 재확인했으나, 북에 대한 중국의 독자 제재를 주장하는 미국과 북의 핵 프로그램, 미국의 한미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요구하는 중국이 충돌했다.
트럼프가 가장 중시하는 ‘돈 문제’에서 양측의 파열음은 더 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유일하게 합의했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100일간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00일 계획을 공동으로 마련하겠다는 것밖에 없었다(조선일보. 4.10)”는데 이마저도 “중국 측 발표문에는 ‘100일 계획’에 대한 합의가 빠져 있다(중앙일보. 4.10)”니까, 아직은 미국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트럼프는 회담 다음날(4.8), 훈련을 마치고 한반도를 떠나갔던 칼빈슨 항모전단의 항로를 돌린다. 4월 9일 태평양사령부는 칼빈슨의 한반도 출동을 발표하고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옵션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4월 11일 트럼프는 “거기에 잠수함도 보냈다”고 한 발 더 나갔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시리아(를 폭격한 것)처럼 북에도 할 것”이라며 선제타격 분위기 조성에 무게를 보탰다.
약효는 빨랐다. 4월 12일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투고 돌아선지 4일 만에 다시 대화를 요청한 건 물러설 용의가 있다는 것이며, 그 전화에 응한 건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했다는 것이다. 공개된 것만 보면 중국과 미국은 서로 한 가지씩 양보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 방안 관련, 정상회담에서 주장한 “대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빼고 대신 “평화적 방식의 문제 해결”을 넣었다. 대화하라는 말은 안 할 테니 전쟁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거래는 등가 교환이 아니다.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피비린내 나는 무역전쟁이 벌어지는데, 양국이 투자와 무역으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이는 미국에 결코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는 트럼프 최대 공약이어서 함부로 철회하기 어렵다. “지금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북한의 위협과 관련한 중국과의 대화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엄청난 양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핵심 공약 불이행에 대한 절묘한 변명, 손오공식 정치기술이다. 중국의 북미 대화 요청을 침묵시키고, ‘100일 계획’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환율조작국 공약에서 자유로워진 트럼프. 손오공에게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칼빈슨 항모전단이 있다.
4월 12일 <38노스>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 “북한이 6차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고 발표하고 4월 13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북한이 30일 이내에 핵실험을 할 확률은 84%, 14일 이내에 할 가능성은 58%”라는 예측 결과를 공개한다. 그것을 ‘억지’하려면 항모전단이 필요하단 것이다.
니미츠 항모가 한반도 주변에 추가 배치됐다. 미국이 핵실험 예상일로 지목한 4월 15일(태양절)이 지나자 미국은 4월 25일(건군기념일)을 다시 찍었다. 4월 25일도 그냥 지나갔으나 항모전단은 여전히 한미연합 군사훈련이란 운동장에서 근육 자랑을 한다.
이 시점에 중국은 스스로 한반도 상황에 말려든다. “만약 한‧미 양국이 38선을 넘어 북한에 공격을 가하고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하면 중국도 즉각 군사적 개입을 진행할 것(환구시보. 4.22)”이란다. 미국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면 중국은 ‘즉각 군사적 개입을 진행할’ 준비에 실제 돌입해야 하고, 국력의 상당부분을 거기 소진해야 한다. 지렛대가 마련된 것이다. 4월 30일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종료일을 맞았다. 그러나 미국은 5월 1일 B-1B 2대를 한반도에 출동시키고, 핵잠수함 미시간 호를 부산항에 진입시켰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5월 11일 ‘100일 계획’ 중간 합의사항이 발표된다. 미국산 쇠고기, 미국산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한 시장 개방,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미국 카드회사들의 중국 진출 허용,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트럼프의 주요 요구사항이 망라됐다. 5월 14일 북이 새로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최초로 시험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5월 31일 칼빈슨 항모전단은 유유히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3~5월 한반도 전쟁 위기는 미국인의 전쟁 불안감을 크게 높였다. 4월 19일 미국의 인터넷 미디어 <AOL 뉴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미국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는 사람이 10명 중 6명이나 됐다. 이런 여론 지형 위에서 트럼프는 5월 23일 전년보다 국방비를 10%(500억달러) 증액하고, 복지비를 18%(151억달러) 감액하는 2018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한다. 이라크 전쟁도 끝난 지 오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발을 많이 뺐는데 세계 최대 군사비를 쓰는 것도 모자라 그걸 10%나 올리다니? 그런 의구심이 드는 미국인들을 위해 언론은 3-5월 내내 북의 핵, 미사일 공포를 배달한 것이다.
4. 첫 번째 ICBM, 그러나 침묵
7월 4일 북이 사상 최초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은 7월 4일을 기점으로 한계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심리적, 현실적 '레드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ICBM의 미 본토 본격 겨냥이란 '설마 했던' 상황이 현실로 닥친 데 따른 미국 내 충격은 대단했다(중앙일보. 7.5)”
트럼프도, 미국 안보집단도 정말 그랬을까? <한국일보> 7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의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3시간 정도 골프를 즐겼다. 그리고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고도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휴가 차 한국을 떠났다. 이들의 여유, 근거가 무엇일까?
7월 22일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무기 카드를 갖고 있는 게 결국 많은 억지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봐 왔다”는 발언에 답이 있다.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 책임자가 북의 핵, 미사일을 “생존을 위한 억지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생존하는 한, 먼저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의 전쟁 지휘부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학적 이유다.
5. 미중 경제대화 결렬, 다시 긴장고조
7월 19일 제1차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가 열렸다. 7월 16일 종료된 ‘100일 계획’의 2라운드다. 여기서 미국은 ‘100일 계획’으로는 부족하니 ‘1년 계획’을 짜자고 중국에 요구한다. 100일 동안 ‘시정된 무역 불균형’이 결국 중국의 부를 미국으로 옮긴 것일 텐데, 그걸 앞으로 1년 동안이나 더 하잔다. 중국은 거부했다.
7월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다”라고 말한다. 다음 날 스콧 스위프트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대통령의 명령이라면 언제든지 중국에 대한 핵 공격에 착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골적인 위협이다. 7월 30일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미국 채권 1위 보유국으로서 실제 달러화를 지탱하고 있는 건 중국이다. 중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다” 반격한다. 8월 1일 시진핑 주석은 ”모든 침략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고 배수진을 친다.
한반도는 다시 가열된다. 8월 5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예방 전쟁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며 북을 자극한다. 같은 날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도 발표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이번 세대의 가장 엄중한 제재”라고 만족스러워한 제재다.
북은 8월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그 어떤 최후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8월 8일 트럼프는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강경 발언을 한다. 8월 9일 북은 미국이 새롭게 고안해내고 감행하려는 '예방전쟁'에는 미국 본토를 포함한 적들의 모든 아성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대응하게 될 것(북 총참모부 성명)이라면서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 '화성-12'형으로 괌도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북 전략군 성명)고 발표한다.
“화염과 분노” 대 “괌도 포위 사격” 초강경 발언이 오고가는 상황을 언론은 ‘말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로운 용어로는 당시의 전쟁 위기를 실감할 수 없다. 미국이 ‘예방 전쟁’과 ‘화염과 분노’로 북을 자극했다면 북은 ‘괌도 포위 사격 검토’를 통해 미국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제 미국은 북을 선제공격해도 할 말이 충분하다. 북도 미국을 주시하며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국 투자 외국인들이 먼저 움직였다. 8월 9일부터 사흘간 1조 1,000억 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다. 미국 월가도 얼어붙었다. 8월 10일 월가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가 전날 보다 44% 급등했다. 주식 값 하락 예측이 하루 새 44%나 올라간 것이다. 실제로 8월 10일 미 다우지수는 204.69포인트(0.93%), 나스닥지수는 135.46포인트(2.13%) 급락했다.
당시 위기의 실상을 간접 시사하는 두 장면이 있다. 먼저, <뉴욕타임스>의 ‘처절한 톤다운’이다. “뉴욕 타임스는 8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관련 언급을 하면서 책상 쪽을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그가 쳐다본 문서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관련한 내용으로 확인됐다며 “완전히 즉흥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한겨레. 8.11)” 화염과 분노 발언에 아무 무게가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대북 메시지를 뽑아내기 위해 자국 대통령을 깔아뭉개는 상황, 미국 주류 언론의 걱정을 반영한다.
둘째는 러시아의 항공 정찰이다. “러시아 정찰기가 9일 두 차례나 미국 안보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 DC 상공을 날며 국방부 건물(펜타곤), 버지니아주 랭리의 CIA와 메릴랜드주의 캠프 데이비드, 앤드루스 공군기지 상공을 정찰했다(조선일보. 8.10)“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2002년의 ‘영공 개방 조약’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동의와 미군기의 호위 없이는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미국의 개전 가능성에 상당한 의심을 품었다는 것, 미국이 북에 보내는 ‘톤다운’ 신호로 이를 활용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8월 13일 미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 공동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태는 한국 전쟁 이후 경험하지 못했던 긴장 상황이며,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다. 국무, 국방장관 공동명의라는 형식으로 상황관리 메시지에 무게를 싣고, 신문기고라는 방식을 통해 사후 책임성을 덜어보려는 행보다. 그리고 8월 14일 서울을 방문한 던포드 미 합참의장이 ”선제 타격에 관한 어떤 대화나 토론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8월 15일 북은 “좀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예정된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에 눈길이 쏠렸다. 8월 18일 미군은 UFG훈련 참가 미군 병력이 작년 2만 5,000명에서 올해 1만 7,500명으로 7,500명 축소된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톤다운 흐름의 연속인가? 껍질을 벗겨보면 다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병력은 오히려 500명 늘어났다. 원래 UFG는 한반도 증파 임무를 할당받은 해외 미군 단위부대 지휘부가 한국 전장에 휘하 병력을 투입하는 절차가 주요훈련내용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올해 UFG에 해외 미군의 참여숫자가 증가한 점이다. UFG는 축소된 게 아니라 지난해보다 강화됐고, 실질적인 규모도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경향신문. 8.21)”
UFG훈련이 시작된 다음 날 북은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다시 강력 반발하고, 8월 29일 화성-1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다. 고각발사 방식으로 위협 강도를 조절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상발사, 일본을 넘어 역대 가장 멀리 날았다. ‘괌 포위 사격’ 프로그램의 재가동인 것이다. 그리고 9월 3일 북은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미 언론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내보냈고, 트럼프는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어떤 대책이 나왔나? 다음날인 9월 5일 트럼프는 “나는 일본과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증가한 규모의 매우 정교한 군사 장비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6일 기자들에게 군사행동을 제외한 다른 압박 수단을 먼저 취할 것이라며,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다른 뭔가가 있다면 좋을 텐데, 라고도 말했다. 북핵 해법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조선일보. 9.8)”
그런 일은 없을 것, 이라더니 이제 와서는 해법이 없단다. 북 핵, 미사일을 동결할 수단이 미국 앞에 놓인 것은 벌써 몇 년 전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카드, 눈앞에 해결책이 있는데 없단다. 9월 11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통과시켰고 북은 9월 15일 화성-12형 중장거리 미사일 2차 시험 발사를 통해 괌 타격 능력을 처음으로 입증하며, ‘괌 포의 사격’ 위협을 가중시켰다.
8월 11일 중국 <환구시보>의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대북 공격을 시도한다면 중국이 막겠다”는 발언을 뒤집으면, 이 치킨 게임이 가열될수록 중국 부담이 더욱 커진다는 고백이다. 9월 12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미, 미중 국무장관과 회담한 후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중국을 국빈 방문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트럼프의 방중을 공식 확인해주지 않았다. 9월 25일 미 상무장관이 중국에 날아가 사전협의를 마친 다음에야, 전리품 목록의 윤곽을 확인한 후에야 미국은 트럼프의 중국 방문을 공식 발표한다.
6. 항모전단 북상, 아베 총선 승리
중국의 타협을 도출했음에도 트럼프는 9월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다음날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것을 걸고 미국에 대해 초강경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성명을 직접 발표한다.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에 대해 “아마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태평양상에서 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북을 억지하는 효과는 전혀 없고, 오직 북의 더 강력한 반발 공간만 생길 텐데, 트럼프는 왜 이랬을까? 북의 반발, 그것은 미국에게도 공간이다.
10월 3일 한반도를 향하는 레이건 항모전단이 홍콩에 기항한다. 10월 6일 루스벨트 항모가 모항인 샌디에이고를 떠나 태평양으로 이동한다. 10월 7일 핵잠수함 '투산'이 진해 해군기지에 도착한다. 10월 10일 B-1B 전략폭격기 2대가 한반도 상공에 날아왔다. 10월 13일 북은 “우리로 하여금 부득불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10월 16일 레이건 항모전단이 동해에서 한미연합훈련에 돌입한다. “보통 항모는 포항 동쪽 공해상에서 훈련을 하는데 이번에는 울릉도 남방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예상보다는 많이 위로 올라갔죠(한국일보. 10.21)”
9월 중순 갑자기 분위기를 만들고, 10월 초 항모전단을 파견하고, 10월 16일부터 3일간 항모전단을 이례적으로 북쪽 깊숙이 접근시킨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간다. 트럼프는 왜 이랬을까? 일본으로 눈을 돌려야 답이 나온다.
7월 2일 아베는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당한다. 자민당은 전체 127석 중 겨우 23석에 그쳐, 도쿄도 의회 선거 참패 여파로 민주당에 정권을 뺏긴 2009년의 38명 당선보다 더 추락한다. 그 직후 일본의 주요 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의 지지율은 36%, 5월에 비해 무려 25%나 떨어졌다. 8월 3일 아베는 지지율 반등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다. 첫째 개각이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 등 여론의 지탄을 받는 각료를 해임하고 파벌 안배 등의 조치를 가미한다. 둘째 “아베 총리는 이날 개각 뒤 기자회견에서 “최우선시할 일은 경제재생”이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스케줄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한겨레. 8.3)”
그럼에도 8월 4일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35%, 제 자리 걸음이었다. 이런 상태로 9월 말 가을 국회까지 가면, 사학 스캔들 등 아베의 치부를 향한 야당의 공세가 대폭 강화될 것이고 결국 아베는 결정적으로 휘청거릴 것이다. 그렇게 난타를 당해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가면 사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9월 28일 국회가 열리기 전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9월 20일 트럼프의 유엔 총회 ”완전 파괴“연설은 이 즈음 터져 나온 것이다.
이후 ”태평양상 역대급 수소폭탄 실험“으로 북미 위기가 증폭되자 9월 25일 아베는 중의원 해산, 10월 22일 총선거 실시, 생사를 가르는 카드를 던진다. 항모전단, 핵잠수함이 몰려들고, 북이 “부득불 군사적 대응”을 경고하는 등 북미 간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10월 8일 아베는 일본 기자클럽의 여야 당수 토론에서 “북한이 핵으로 일본 열도를 소멸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국난이다"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그런 아베가 10월 13일 북의 “부득불 군사적 대응” 발언을 듣고 가슴이 설레지 않았을까? 10월 16~18일 미 항모전단의 동해 북상을 전후로 북에서 미사일이라도 올라오면, 그만큼 선거 승리도 가까워진다. “17일 밤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8일 오전 일정을 모두 비웠다는 소식이 전해져 북한이 도발하는 것 아니냐며 한바탕 소동을 치르기도 했습니다(한국일보. 10.21)”
북은 침묵했다. 그러나 아베는 22일 총선에서 대승했다. “회사원인 나카무라 테루히코(中村輝彦ㆍ45)씨는 “북한과 미국의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일본의 정권이 바뀌면 위험하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베 총리밖에 없다”고 말했다(한국일보. 10.19)”
7. 60일 동결에 대한 대답, 테러지원국 재지정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을 앞둔 10월 24일 이 지역을 관할하는 7함대 작전지역에 기존 레이건함에, 루스벨트함과 니미츠함을 추가 배치했다. 그리고 29일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B-2 스텔스 폭격기를 태평양으로 출격시키고, 그 사진을 공개했다. 외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력으로 하는 것, 협상력의 근원은 군사력임을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다.
11월 3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아시아 매체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2차 대전이후 지난 70년간 강대국들이 충돌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미‧중 전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정상회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협상력 높이기다. 11월 6일 제주 인근 해역에서 한국, 미국, 호주 3국 합동훈련, 11월 7일 한반도 동해에서 미국, 일본, 인도 3국 합동훈련이 벌어지는 가운데 트럼프는 11월 8일 중국에 도착한다.
앞서 그는 11월 6일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미국 무기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사길 바란다”며 아베의 동의를 받았고, 7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에서는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이런 장비들을 주문하시는 것으로 말씀해 주셨다. 한국에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역시 무기를 팔았다. 봄부터 뿌린 한반도 전쟁위기의 씨앗을 수확하는 또 다른 장면이다.
11월 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2535억 달러(약 282조원) 규모 무역협정을 체결,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중국 상무부장이 282조원의 대미 투자 약속을 하면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액수”라고 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에 찍힌 한국의 무기 구매 및 투자 액수는 총 100조원에 이른다. 중국에서 3을 뽑았다면 우리에게선 1을 빼냈다. 중국과 우리 덩치를 비교하면 출혈이 도를 넘는다.
11월 11일 한반도 동해 NLL(북방한계선) 근접 해상에서 미 항모 3척과 이지스함 11척 등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시작한다. “항공모함 3척이 오늘부터 14일까지 우리 해군과 동해상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일본 해상 자위대도 12일, 이들 미 해군 전력과 공동으로 훈련에 나선다. 다만 한미일 3국의 대규모 연합훈련은 실시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중앙일보. 11.11)” 사실상의 한‧미‧일 해상훈련이다.
11월 13일 레이건 항모 훈련 상황이 언론에 공개됐고 제5항모강습단장 마크 돌턴 준장이 기자회견을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대규모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우리는 훈련 중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봄부터 지은 농사는 다 수확했으니,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뜻이다.
북이 핵, 미사일을 동결한지 꼭 60일이 되는 11월 14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월 30일 “북한이 60일 동안 핵,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말하고, 틸러슨 국무장관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슬쩍 받쳐주면서 힘을 얻게 된 이른바 ‘60일 시계’ 얘기다. 북이 60일을 참으면 미국이 대화에 나설까?
동결 59일째인 11월 13일 트럼프는 “15일에 무역, 북한 등에 대한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미가 ‘60일 동결’을 조건으로 대화로 넘어가기로 물밑 합의를 했다는 추측 기사가 나오고, 15일 트럼프의 입을 고대하는 눈들이 늘었다. 그리고 11월 20일 트럼프는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 게다가 12월 4일부터 8일까지 미 공군기 150 여대에 우리 공군기 90 여대 등 240 여대가 참가하는 한‧미 공군훈련을 한다고 발표됐다. 일본과 한국에 배치된 미 공군기들을 거의 모두 동원하는 초대형훈련이다.
북은 11월 29일 화성-15형 ICBM을 시험 발사했다. 75일 만에 동결을 깬 것이다. 최대고도 4,475㎞에 비행시간은 약 53분이다. 7월 28일 화성-14형 2차 발사 당시 최대고도 약 3,700km, 비행시간 45분에 비해 훨씬 고도화됐다. 북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12월 미국의 전투기 150 여대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으면 북은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미국이 가만 놔둘까?
8. 희망, 평창올림픽 휴전결의안
11월 13일 유엔 총회는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의결했다. 내년 2월 9-25일 평창 겨울올림픽과 3월 9-18일 겨울패럴림픽 기간에,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7일 뒤까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적대행위를 중단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미국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이 결의를 준수한다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취소되거나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엔 총회 결의는 구속력이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결정하면 강제력이 생기지만 유엔 회원국 모두의 결의에는 그런 힘이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올 봄 칼빈슨 항모전단을 되돌렸을 때 중국도 압박을 받아 일보 후퇴했고, 일본도 자장에 들어 아베 지지율 상승, 개헌 동력 확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트럼프발 북풍의 한가운데를 뚫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그 힘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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