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반미투쟁 참가자들의 소회를 밝히다 | |||||||||||||||||||||||||||
기사입력: 2017/12/20 [09:2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지난 17일 ‘조국과 민족은 그대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2017 반미투쟁보고 및 격려모임에서 참가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느꼈던 진심어린 소회를 전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청년, 대학생 등이 다양한 형식으로 참신하고, 재치 있게 대중적인 반미투쟁을 펼쳐나갔던 성과들을 뜻 깊게 평가했습니다. 특히 한반도 디톡스 청소년 대원은 설렘 반, 불안감 반에서 나섰던 반미 디톡스 활동이었지만, 이후 당당함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솔직 담백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에 한반도 디톡스 통일선봉대, 사드기지 진입 투쟁, 대학생 반전버스킹, 트럼프 참수 퍼포먼스, 방미 트럼프탄핵 청년단 등의 활동을 펼친 대원들의 후기를 전합니다.
● 한반도 디톡스 청소년 대원 후기
‘한반도 디톡스(Detox) 통일선봉대(이하 통일선봉대)’는 지난 8월 7일부터 15일까지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과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 처음엔 사실 학교 빠지고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는 가벼운 기대감과 설렘 반, 행사나 공연 같은 걸 해야할 거라는 불안감이 반이었어요.
솔직히 청소년 팀이 따로 없었으면 안갔을거예요. 공동체 생활을, 특히 어른들 사이에 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거든요. 어색하고, 재미없고...
그래서 초반에는 별로 도움되는 것 같지도 않고, 폐만 끼치는 것 같아 불편했어요. 해야 할 일도 잘 모르겠고...
주한미군이 나가야 하는 이유, 사드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 통일의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방법 등등을 찾아 청소년 팀 나름대로 공부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통일 부채 만들기 체험을 열었던 일이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일이었죠. 그만큼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건, 입을 떼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번 해보고 나니, 점점 쉬워졌고, 이제와 보면 정말 좋은 경험이더라고요. 그 경험 덕분에 낯선 사람 앞에서 더 당당해졌고, 학교에서 발표할 때도 더 여유로워졌고, 제 자신에게 더 자신감도 생겼어요.
이후로도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되던, 어떤 직업을 갖게 되던. 저는 집회가 열린다면 언제든 광장으로 갈 거고, 이모 삼촌들과 계속 같이 있을 거예요.
● 한반도 디톡스 대원 후기
운동 늦깎이에게 일찍이 그리고 진득하게 찾아와서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슬럼프’ 운동이 재미가 없다니!? 나는 쓸모없는 놈이야. 저 동지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내 마음을 털어놓으면 나를 더 싫어하게 될거야...
이랬습니다. 극복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지만 매번 실패.
그런 와중에 슬럼프 극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반미 통일선봉대 디톡스>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날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대원들 한명 한명의 각자 다른 장점이 모이고 모여서 전체 디톡스를 빛내는 것을 매일 매일 몸으로 심장으로 느꼈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칭찬’이었습니다.
특히 한반도 디톡스 대장님이 동지들의 좋은 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거기에 감복한 대원의 장점이 더욱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또 매일 일과를 마치고 ‘모범대원 뽑기’를 했습니다. 각자가 모범대원을 추천하여 최다 득표를 한 사람이 모범대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원들은 누구나 똑같이 ‘내가 오늘은 꼭 모범으로 뽑힐거야!’가 아니라 누구를 모범대원으로 할지를 매번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짠 것도 아닌데 모범대원은 매번 가장 묵묵히 열정적으로 하루를 보낸 대원에게 고루고루 돌아갔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칭찬을 하고 상대방을 높여주고 하다 보니 모든 대원들의 하나하나의 성향이 긍정적으로 발휘되어서 디톡스 전체가 발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디톡스 대원들이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서명을 받고,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가 하면, 매일같이 밤을 새며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노래를 만들고, 손재주를 발휘해서 동지를 챙기고 작품을 만들고... 특히 대장님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잠도 잘 못자고 매번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었을 텐데 항상 밝은 표정으로 디톡스의 길을 열어나갔습니다. 이렇듯 책임감, 집단주의, 신념, 동지애, 헌신성을 발휘한 디톡스 대원 한명 한명과 활동 하나 하나에 김승교(민주인권 변호사) 의장님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저는 디톡스 활동을 하며 저의 새로운 모습을 찾았습니다. 동지들이 저의 어딘가 깊은 곳에 있는 좋은 점들을 끄집어내어 알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운동의 기본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동지를 사랑하는 것에 제 한 몸을 아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잘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못나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게 되니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비로소 운동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편해졌습니다. 더 풍성해지고. 더 다가가게 되고. 상대방도 저를 더욱 편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항상 ‘민중을 위해, 조국을 위해’라는 잣대를 가지고(많이 어렵긴 합니다) 저를 솔직히 드러내고, 저에게 더욱 집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전에는 주어진 사업 따위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억지로 꾸역꾸역 집행하곤 했는데, 이제는 제 것이 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뀐 저의 모습에 생경함이 많이 비춰졌는지 동지 간에 갈등이 생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으로 비춰져야겠다는 욕심이 어느새 비워져 있었습니다.
디톡스에서 얻었던 이러한 귀중한 가르침들 덕분에 슬럼프에서 벗어났습니다. 부산에서 저만 전일 결합으로 디톡스를 갔다 온 것도 부산 동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항상 디톡스의 교훈을 바탕으로 부산 운동에 어떻게 좋은 영향을 줄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무엇보다 동지들에게 푸욱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동지들이 힘든 것은 없는지 먼저 살피고 이야기 들어주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또 제 이야기도 마음 터놓고 하면서 술을 마시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다시 슬럼프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틈틈이 정세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있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많을 것 같습니다. 디톡스에서 배운 대로 묵묵하게 제 길을 신명나게 뚜벅뚜벅 걸어 나갈 생각입니다.
동지를 위해! 민중을 위해! 조국을 위해!
● 트럼프 참수 퍼포먼스 참가자 후기
안중근 의열단 소속 청년들은 북을 상대로 참수작전, 완전파괴 등의 거친 말을 쏟아내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트럼프 참수작전’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 오랜만에 이렇게 '의열단'이라는 이름으로 인사를 드리니까 반갑기도 하고 오래 쉬었는지 어색한 느낌도 같이 듭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많은 선배님들께서 의열단 활동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즐겁고 어려움 없이 활동했던 것 같은데, 처음 의열단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참수'라는 단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여서 그런지 과격하게도 느껴지고,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미 대사관 바로 앞에서 보란 듯이 트럼프를 참수하다가 연행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많이 들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을 때 '일제강점기 때는 항일 투쟁이 독립운동이었다면 지금은 반미투쟁이 독립운동이다'라는 선배님의 말씀, 그리고 연행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진짜 트럼프한테 한 방 먹여 봐야겠다, 열심히 해봐야겠다 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참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하면서, 마음도 뜨거워지고 정말 여러모로 트럼프가 이 지구에서 있어선 안될 놈이라는 걸 제대로 느꼈습니다. 전쟁광 미치광이, 양키 일베, 또라이 등 트럼프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이 전쟁분위기 고조를 멈추지 않는 미치광이 트럼프를 보면서 '우리도 다른 식으로 한번 미쳐보자' 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사실 결의도 하고 준비도 많이 했지만, 막상 미 대사관 앞에서 확성기를 등에 메니 한편으로는 긴장도 조금 됐습니다. 미 대사관 앞에서도 하고, 국방부 앞에서도 한 차례 진행했었는데요, 매번 발언을 할 때마다 긴장이 됐었지만 갈아버린다던가, 총을 쏜다던가, 진짜 눈앞에 트럼프가 있는 것처럼 감정이입을 하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나중엔 긴장하기보다 오히려 퍼포먼스를 즐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의열단을 수행한 날, 발언을 마치고 한 퍼포먼스였던 권총 퍼포먼스를 하고 나니 진짜 트럼프를 향해 총을 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신나기도 했는데요, 내가 이렇게 쏜 총을 트럼프는 알기는 할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워싱턴 주미대사관 국감장에서 저와 동지들이 함께 한 트럼프 참수대회 동영상이 재생되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참수를 매번 할 때도 트럼프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었는데 생각치도 못했던 국감장에서까지 우리의 투쟁이 보여졌다는게 많이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참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더 큰 퍼포먼스를 위해 준비중입니다. 그동안 큰 관심과 응원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주사드기지 진입 투쟁 후기
☞ 무거운 공기, 낯선 동지들과 겸언 쩍은 인사 뒤에 둘러앉은 첫 대면장. 좁은 방, 희뿌연 불빛사이로 몇 안 되는 우리 사이를 이어주고 있던 건, 작은 종이에 슥슥 멋없이 채워진 약도와 빨간 화살표. 보안 때문에 짧게 줄인 글과 말 속에서 흐르던 어색한 긴장감. 황량한 도시의 밤을 헤맨 끝에 어느 골, 작은 집에서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기실, 광주에서 출발할 때까진 '기지 진입 투쟁'이 말이 실체로 다가오지 않았었습니다. 예의,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투쟁이려니.
하물며 그 밤, 사전답사까지 먼저 한 동지들의 입에서 간간히 나오는 말들이 더해지니 더욱 막연했지요.
"천연의 요새다", "주민들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다" "뚫을 만한 단서를 찾고자 종일 답사를 했지만 길이 분명치 않다. 이 쪽은 절벽이요, 저 쪽은 요소요소가 막혀있다. 철조망과 초소, 적외선카메라 등등"
하지만, 그가 종이 위에 끄려 적는 우리의 목표.
1진입 2철조망 3연행시 투쟁
첫날 안되면 비박을 해서라도 간다.
그 밤까지도 그 목표는 종이 위에 쓰여진 글씨일 뿐이였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처음 목표한 길이 끊어짐을 확인하고, 절벽뿐이라던 두 번째 길을 에돌아 올라타던 중 가느다란 빗줄기속에서 적외선 카메라와 초소의 실체를 확인했지요.
그렇게 우리가 넘어야 할 그 산의 실체를 접하니 비로소 온 몸의 세포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더군요.
결국, 우리가 가야할 길이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이어야 함을 몸으로 느꼈나봅니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위에서 어느 순간 "못 갈 길도 아닌데" 외마디가 튀어 나오더군요. 그렇게 우린 빗속을 구르고 뒹굴며 짐승도 발자욱을 낼 수 없을 길을 한참 헤쳐갔습니다. 아니, 만들어갔지요.
몇 시간을 탔을까요. 굵어진 빗방울 사이로 산모기가 옷 속을 헤집을 때쯤 더 이상의 전진이 어렵도록 날이 어두워집니다. 그가 이젠 물었지요. 비박을 하고 새벽에 이동하는 게 어떻겠냐며. 이번엔, 전원의 의견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한결 분명해진 목표를 몸으로 자각하면서, 성공을 위한 방책을 확인한 일보후퇴.
그렇게 다음 날, 우리는 해냈습니다.
이중삼중 철조망을 짓이겨 넘으며,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던 투쟁을 목표한대로 성사해냈지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던 부대 지휘관들의 모습, 단봉하나 들지 않은 우리의 외침에 주눅 든 눈빛으로 고개도 들기 힘겨워한 앳띤 병사들. 왜 우리의 목표가 '실제 진입' 이었는지를 견주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장에서 나온 뒤, 평가자리에서 동지들이 말합니다.
"이건 도저히 안 되는 투쟁이다. 그걸 확인시켜 주겠다는 오기로 끝까지 했다. 그런데 결국, 기지 안이더라"
"말도 안 되는 절벽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만 내미는 동지의 손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더라"
놀랐지요.
다들 결사의 각오로 모인 줄만 알았는데, 왠걸. 나처럼 목표를 가벼이 여기기도 하고 투쟁방향에 대한 의구심, 조직에 대한 나름의 불신까지...
아, 우리 분명히 출발선에서 다 같은 마음은 아니였던 겁니다.
함께 길을 뚫으며 어느 덧, 마음이 모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투쟁의 길이 눈에 훤히 보이지 않아 불안하면서도, 방책이 시원스레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해하면서도, 집행을 위한 세련된 대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미심쩍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해냅니다.
그 원천, 그 이유. 무엇이었을까요?
끝으로.
산을 내려오는 길, 멧돼지와 대면까지 하고서도 진입한 동지에게 폐가 되면 안 된다며 한 달음으로 굴러 내려온 동지들은 그 날 밤을 온전히 비를 맞으며 김천서 앞을 지켰습니다. 연행된 동지들이 따뜻한 유치장에서 배부르게 단 잠 잘 때.
그렇게 우린 하나였지요.
● 방미 트럼프탄핵 청년단 후기
☞ 지난 10/24부터 11/8까지, 15박 16일간의 시간동안 정말로 많고 많은 추억과 경험, 생각과 의미들을 남긴 방탄청년단 활동이었다. 그 방탄청년단 활동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했었나, 나의 운동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규정하기 어려웠고 복잡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나름대로 수기라는 것을 써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탄청년단 덕분에 이제는 고민이 들더라도 그저 주저하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방탄청년단에 활동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마음은 그리 건강하지 않았다. 4년째에 접어들어 운동이 너무 좋기도 하고 또 너무 두렵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 운동의 ‘처음의 마음’은 내 곁으로 삶으로 다가왔던 동지애와 실천이었다. 그렇게 운동을 접한 이후 평화, 자주, 민주, 통일 등 가볍지 않은 그 단어들의 지향과 가치가 스며든 세상을 상상하며 가슴이 뛰고, 마음속에 함께 기뻐할 사랑하는 얼굴들이 떠올라 벅차고, 자신의 꿈과 목표가 되어 앞으로 내달리게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실망과 같은 감정이 이따금씩 들고, 왠지 모르게 사람들 속에만 있으면 드는 부끄러움과 불안도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일을 버거워하곤 했다. 스스로 나의 발전과 운동에 있어서 일정정도 벽과 한계를 지으며 ‘내가 방탄청년단 활동을 맡아서 할 자격이 있을까‘, ’나보다 훨씬 더 앞서서 노력하는 동지들 앞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투쟁 앞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생각했다. 내 문제를 자주 회피하고 주저한 것에 대한 위기감도 들었다. 그런데 점점 방탄청년단은 그런 나의 고민과 상황을 뛰어넘게 하는 기회라는 직감이 들게 했다. 평소에 내가 의지하는 동지들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 동지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운동을 처음 만나게 해준 실천과 동지애는 여전히 나로 하여금 사람들과 호흡하게 하고 단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동지애로 마음이 얼마나 뜨겁게 달궈지고 실천이라는 망치로 얼마나 단련될지, 약간 두려우면서도 떨리는 마음으로 방탄청년단을 준비했다.
방탄청년단의 과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처음부터 녹록치는 않았다. 예상치 못한 전원 입국 거부 상황에 있었을 땐 많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정말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방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다. 입국거부라는 소식을 듣고 공항 바닥에 둘러앉아 화를 누르는 요가(?)도 하고, 토론을 나누며 기자회견을 가졌던 바로 그 때 나는 그 상황을 한계 지으며 감정을 억누르며 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는 ‘한 두 명도 아니고, 전원 입국 거부는 말이 안 돼!!!’ 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고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떤 실천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걸까’하고 머릿속이 까맣기만 했다. 하지만 동지들은 솔직하게 고민도 슬픔도 분노도 드러내 보여주었다. 각자 어려운 상황에 모였기에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진실된 마음에 나도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는 내 자신과 동지들한테 얼마나 솔직했고 진심을 드러냈나?’ 우리는 그렇게 달궈지고 있었다. 아무리 막아내려 할수록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더욱 뭉치는 우리였다.
그렇게 돌입하게 된 14박 15일간의 농성. 농성 중에는 매일 학습과 실천의 연속이었는데 덕분에 내 생에 이렇게 많은 실천들을 매일, 빠르게, 진행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매일 촛불을 진행할 때, 특히 초반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했고 주저함도 극복해내고 싶었다. 학습과 실천과 동지들이 없었다면 마이크 잡고 노래 하나, 발언 하나하기 벅차하면서도 기자회견 발언구성을 준비해보고 사회를 맡도록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학습의 필요성은 너무 많이 강조된 만큼 내가 놓쳐왔던 영양분이었다.
왜 트럼프 탄핵을 외치는가 부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자본을 숭상하며 인간을 노예화하고 파괴하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다시금 깨달았다. 인류의 투쟁은 세계 각국에서 제국주의의 침탈에 저항하며 민중해방의 역사를 진보시켰다. 시대를 밝혀가는 도도한 역사를 통해 내가 사람들 속에서 주저하지 말고 바로 서야 할 이유를 찾았다. 바로 그 길에 부지런히 함께 웃으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방탄청년단이었다. 우리 동지들과 함께한 실천은 미국과 수구 세력들의 방해공작에도 노래와 춤, 그림과 예술품, 퍼포먼스,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은 영상제작까지 한데 어우러진 예술이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과 외쳤던 노트럼프존! 선언, 함께 춤췄던 임피치스타일은 방탄청년단의 작품이다. 결국엔 방
미까지 기어코 성공해내어 광화문에서도 뉴욕에서도 반트럼프 반전평화로 함께한 기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겨졌고 당당한 자주의 목소리로 역사에 남았다.
나에게 방탄청년단은 운동에서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두운 시대를 양심으로 사람사랑으로 묵묵히 밝혀나가는 당당하고 유쾌한 청년들이다. 내가 병든 사회에서 깊게 박힌 스스로의 불안과 불신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안보이게 누구보다 헌신하고 마음 채워준 방탄청년단이다. 이번엔 내가 누군가의 처음의 마음이 되고자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동지들처럼 항상 준비된 일꾼으로 후배들, 사람들 삶에 함께하고 실천하고 싶다.
● 반전버스킹 피스어게인 후기
전세계에 도처에서 미제를 쓸어버리자!
☞ 반전버스킹을 하게된 계기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죠. 처음에 들었을때는 “전국을 돌아야한다고????” 하는 생각에 주저주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세를 보며 우리는 뭐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말다 까먹었다 생각났다 했었던 찰나! 그래! 지금 이런거 필요한 것 같아! 라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3일을 하려고 한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국순회버스킹 이름을 걸고 3일 가는게 너무 말만 거창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고, 너무 씽 일정으로만 잡아놔서 더 많은 단위의 참가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날짜를 5일로 늘렸습니다.
물론 중요한건 주축이였던 씽 단원들의 의지와 열의였죠. 다행히 반미반전의 의지가 매우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지금 이 버스킹이 의미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진행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들레(진보 예술인모임)의 적극 결합으로 버스킹이 풍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무도 필요한 재정도 시스템도 걱정도 더 풍성풍성 ᄏᄏᄏ) 처음은 미래에서 이틀참가를 결정하시고, 그 다음엔 베란다항해에서 이틀이였다가 삼일로 결의를 높여주셨죠.
대구, 수원을 가고 지역선배들의 후원과 사랑을 받고 그리고 생각보다 높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속에 첫주 버스킹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두 번째 주는 베란다항해 팀의 결합으로 진.짜. 반미반전분위기 흥성흥성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얼굴밟기, 전세계에서 일으킨 미국의 침략전쟁들 걸개는 버스킹의 메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춘천에서는 가장 많은 단위와 사람이 참가해주었고 강원청지(강원도 청년과지성 단체)에서 풍선나눠주기 등의 마당사업을 준비해와서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흥성거리게 되었죠.
반전버스킹의 성과는 과연 이 버스킹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생각해봤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을 반미전사로 만들자는 취지는 아니잖아요. 북미대결에 원인을 누가 제공하고 있는지, 올바른 해결책이 뭔지, 미국이 얼마나 나쁜 나라인지, 알리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고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반북반공적대분위기에 짓눌려있는 사회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어", "내가 틀리지 않았어” 라는 용기와 응원을 드리는게 목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잘 전달되었다면 성과겠죠!
두번째 성과는 전국대학생노래패연합 단위들의 결합입니다. 처음엔 하루이틀, 혹은 불참이였던 데들이 버스킹을 계속 보면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예술의 가장 강한 힘은 선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드는 힘, 그런 역할을 한 버스킹이였다면 좋겠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 2017년 반미투쟁을 진행하면서 얻었던 투쟁 정신
늙다리 미치광이가 누구입니까?
지구상 만악의 근원지는 어디입니까?
만악의 근원지에 늙다리 미치광이가 대통령으로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시기 우리는 정말 열심히 싸웠습니다. 전체적인 체계를 신속하게 정비하고 확실한 투쟁방향을 잡고 전일적인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을 갔을 뿐인데 뒤돌아보니 정말 큰일을 해낸 것 같습니다.
조기대선과 정권교체로 희망의 열기가 높아지고 변화의 기대가 솟구치고 있을 때 우리는 이 땅 만악의 근원지를 뿌리채 뽑아버릴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인 통일을 위해 미국의 본질을 폭로하고 미치광이 트럼프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반도 해독투쟁을 제안하고 진행했습니다.
한반도 디톡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반미냐?’ ‘미국이나 북한이나 똑같은데 미국만 규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된다’ ‘미국에게 잘못 보이면 문재인 정부가 더 힘들어 질 수 있다’는 우려와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는 선명한 반미와 반 트럼프 구호를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섰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지금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고조는 미국 때문에 생긴 것이고, 한반도 전쟁위기는 트럼프 때문이다” 맞는 말 아닌가요?
한국사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한반도 디톡스는 이남사회에서 진보운동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줬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미국이고 투쟁의 대상은 미국이다. 그리고 그 수장인 트럼프를 강력히 규탄한다.
전국을 돌며 잠재되어 있던 반미투쟁의 의지를 끄집어 내줬습니다. 그 결과 8.15대회장과 트럼프 방한 시기에 자신 있는 반미, 반 트럼프 투쟁을 전국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우리는 트럼프 참수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곳곳에서 의열단이 조직되고 미국대사관 여기저기에서 트럼프 참수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참수라는 말이 좀 거칠긴 합니다. 잘 쓰지 않은 표현이기도 하고 상상하게 되면끔찍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너무 무섭다!’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이런 우려와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봅시다. 북한을 상대로 참수작전을 수행한다고 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서 미국한테 그럴 때에는 너무한 표현이다고 하면 말이 되는 겁니까? 우리는 트럼프 참수작전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방법으로 임의의 시각에 저돌적으로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그것도 미국대사관 앞에서 말이죠.
우리가 진행한 참수작전은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킨 트럼프에게 내리는 형벌이며 조만간 그렇게 될 것 이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또한 이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놈들이 별거 아니다, 트럼프를 규탄하는 방법이 이렇게도 많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신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미국이라는 존재가 별거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사드기지 타격투쟁!
미국놈들이 얼마나 놀랬을까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건데 건강한 청년들이 산을 타고 철조망을 넘어왔을 때 미국놈들은 오금을 저렸을 겁니다. 항일유격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군기지를 타격한 투쟁과 같습니다.
이후 미국놈들은 사드배치를 자신감 있게 추진하지 못하잖아요. 국가 간 협상으로 절차를 밞겠다고는 하지만 이런 투쟁이 더 크게 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있는 사드도 빼야 한다는 것을 직감 했을 겁니다. 우리는 잔악무도한 일제를 몰아내고 독재정권을 무너트린 민족입니다. 투쟁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쯤은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 투쟁을 통해 싸움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미국놈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끝까지 쫒아간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맘만 먹으면 사드기지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가는 길이 험난하고 위험했겠지만 우리는 사드기지를 기필코 타격했습니다.
방탄청년단!
방탄청년단이 미국본토에 직접 온다고 하니 트럼프가 얼마나 쫄았겠습니까? 트럼프 머리를 자르고 손발을 자르고 불을 지르고 미군기지를 단숨에 넘나들던 청년들이 미국백악관 앞에 온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도 성난 호랑이로 보였을 겁니다.
그러니 출국 금지죠. 광화문 광장에 오자마자 미국대사관 앞에서의 노숙 농성. 미국놈들과 트럼프는 잠을 못 잤을 겁니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의미 있는 공개적인 행보를 하지 못했던 것도 방탄청년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체 대오가 흐트러짐 없이 옹골차게 진행한 투쟁을 통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반미의 함성을 만들 수 있었고, 반미열정을 광장으로 모아낼 수 있었습니다.
방탄 청년단은 반미투쟁이 과거 운동권의 아이템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그 멋을 실컷 보여줄 수 있었던 투쟁이었습니다.
한반도 디톡스, 참수작전, 사드기지 타격투쟁, 방탄청년단 미국을 정신없이 몰아부친 연속타격과 연쇄폭발로 그로기상태(권투에서 심한 타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투쟁을 우리가 왜 했겠습니까?
우리가 돋보이고 싶어서? 페이스북에 포스팅할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만악의 근원인 미국놈들과 그 수장인 트럼프를 끝짱 내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미국과 싸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트럼프를 없애버리는 것은 시대적 사명입니다. 반미, 반 트럼프 투쟁은 옳고 그름의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민족으로 살 것인가? 자주적인 당당한 민족으로 살것인가 하는 운명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당당한 나라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살기 위해 자주로운 평화통일 국가를 위해 미국놈들을 몰아내고 트럼프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논쟁 꺼리도 아닙니다. 이 싸움을 나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하반기 투쟁을 이렇게 성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옆에 있는 동지가 함께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누가 동지이고 누가 동지가 아닌가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둔 분들이 동지이고 우리를 지지해주시는 분들, 7천만 겨레가 우리의 동지입니다. 동지가 있는 한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맙시다. 우리는 이길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트럼프를 없애고 미국놈들을 몰아내고 우리 민족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맘 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길 때까지 싸워야 우리가 승리자가 됩니다. 아직도 미군들은 서울 종로에, 용산에, 동두천에, 평택에, 대구에, 부산에, 광주에, 군산에, 제주도에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외세의 군화발에 이 강토가 여전히 짖밟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투쟁을 멈추는 순간 이놈들은 살아납니다. 각자 활동하고 있는 단체와 지역에서 반미, 반 트럼프 교육교양활동을 진행해야 합니다. 반미, 반 트럼프에 대한 입장이 흔들려서는 절대 안됩니다. 또한 기회가 있을때 마다 SNS 선전선동활동과 거리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행동합니다. 우리도 배우고 대중들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끊임없이 진행해야 합니다.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을 싫어합니다. 다만 무서워서, 어쩔 수 없어서 속으로만 앓고 있는 것뿐입니다. 혼자서 속만 태우는 우리 국민들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돗자리도 되어 주고, 나팔수도 되어줍시다.
2017년 투쟁에 만족하지 말고 우리 민족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더 큰 싸움을 만들어갑시다.
반미, 반 트럼프 투쟁을 진행하시느라 동지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 큰 싸움을 위해 쉼 없이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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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2017 반미투쟁 참가자들의 소회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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