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최순실, 1961년 시작된 '박정희·전경련 신화' 동반 몰락을 재촉하다
2016.12.09 17:09:52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결론에 이르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있다. 헌재가 탄핵 소추 의결서를 인용하게 될지 아직 알수 없지만, 의회의 탄핵 가결 자체만으로 다양한 정치적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구체제의 개혁, 즉 정치 개혁과, 사회 개혁의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反의회주의자 박근혜, 의회 단두대에 서다…차기 대통령에 귀감 될 것
'선거의 여왕'도, 박근혜 대통령의 '공포 정치'도 탄핵안 가결을 막지 못했다.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다섯 차례나 지냈지만 의회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대중을 직접 상대해, 메시지와 이미지를 기획하는 데 능수능란했던 정치인이었다.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히틀러가 의회를 통한 정치가 아니라 대중을 직접 움직이는 방식의 정치를 선호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파동'에서 '정치 기술자'인 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여전히 의회를 무시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의회를 철저하게 폄하해 왔다. 사실상 '통법부' 수준으로 여겨왔던 것은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다. 최순실 국정 농단 파동이 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3차례의 담화문을 통해 대중 앞에 직접 나섰다. 탄핵이 논의되는 상황에서도 의회를 향한 진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국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개헌을 던지고, 임기 단축 시점을 결정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중을 직접 설득하려 했다.'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 지시와 같은 공작성 짙은 정치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국회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민의를 위임받아 정국을 운영하는 대리통치 기구다. 국민을 상대로 한 선거에서 연전연승을 거둬왔던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미 몰락의 기미를 읽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통'으로 이미 총선 결과 심판을 받았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나, 노동 개악 등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4월 총선 결과는 강력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민의를 받든 의회가 만들어낸 탄핵 소추 의결서를 송달받게 됐다.
박 대통령 탄핵 사건은,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치인들로 하여금 자각하게 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는 결이 다르다. 당시 국회의 탄핵 소추는 실패했고, 민심은 탄핵 세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심을 거스른 탄핵이었다. 지금은 민심에 기반한 탄핵이다. 234표라는 탄핵 동참 의원의 숫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에 대해서도 강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을 가진 의회의 힘을 본 정치인들, 특히 예비 대통령들에게는 경각심이 생길 만한 일이다.
물론 의회 정치가 담아내지 못한 '촛불 민심'은 더 큰 주제로 다가올 것이다. '촛불 민심'에 등 떠밀린 의회의 역할과 정치의 위상을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라운드 제로'는 마련됐다.
'박정희 신화'와 그 상징, '전경련 신화' 동시에 무너뜨린 박근혜와 촛불
박 대통령 탄핵의 큰 의미 중 하나는 '박정희 신화'의 붕괴를 이끌어냈다는 데에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뿌리가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 유착'에 가 닿아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은 박정희, 박근혜 모녀의 신화를 붕괴시킴과 동시에, 그 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정경 유착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특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다수 재벌 총수들이 전경련의 폐해를 인정하고,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겠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의 쾌거 중 하나다. 청문회장에서 전경련 해체를 목청높여 주장했던 의원 중 한 사람이 보수 정치인인 하태경 의원이라는 점도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전경련과 박정희 체제,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이 신화는 한 뿌리를 공유한다. '정경 유착'의 본격적인 역사는 1961년 설립된 전경련의 모체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시작됐다. 이 단체는 1968년 회원사를 늘리고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조직을 확장한다.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삼성 명예회장인 고(故) 이병철 씨였다.
전경련의 설립 목적은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데 두었다. 그러나 전경련은 본 목적보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군부 정치 권력과 결탁을 통한 이권 수호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버이연합 등 친정부 반공 단체에 돈을 지원해 사실상 '관제 데모'를 기획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우리 역사의 독재자를 재평가하는 작업에 돈을 쏟아 부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정권의 출발점 역시 1961년 5.16쿠데타다. 박정희 정권과 전경련, 그리고 정경유착은 샴 쌍둥이와 같은 관계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조부인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이 주도한 전경련의 역사를, 그의 손자인 이 부회장이 끊게 된 것이고, 박정희 정권의 구태 유물이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의 종언으로 끝맺음 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정경 유착에 구멍이 뚫렸다. 고리가 약해졌다. 이는 사회 개혁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괴기스러운 '동화'의 끝, 그리고 '끝 이후'
2012년, 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한 언론인은 이렇게 평가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일종의 서양식 동화(fairy tale)다. 그것도 '판타지 동화'의 세계, 혹은 '잔혹 동화'의 세계다. "공주님은 결국, 아버지 왕의 원수를 갚고 궁궐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답니다'류의 이야기다. 동화의 원전은 대개 '잔혹 스토리'인데, 이는 원래 동화가 민담이나, 전설을 아이들 용으로 가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대한민국은 '노인들의 동화'가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동화'가 민낯을 드러냈다. 동화의 원전 '잔혹 스토리'의 결말은 이제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결말 이후'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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