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겁거든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땅의 흙 같은 진실만 마음에 담아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가는 길 멀다 생각 되거든
이 길 먼저 걸었을 이들의 고되었을 여정 먼저 기억하라
처음부터 길이었던 적 없는 거친 들
메마른 대지에 쬐는 뙤약볕 타는 갈증
이보다 더 고되고 힘겹게 걸었을 그들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땅의 흙 같은 진실만 마음에 담아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가는 길 멀다 생각 되거든
이 길 먼저 걸었을 이들의 고되었을 여정 먼저 기억하라
처음부터 길이었던 적 없는 거친 들
메마른 대지에 쬐는 뙤약볕 타는 갈증
이보다 더 고되고 힘겹게 걸었을 그들
남이 무어라 하거든 물어라
언제 최선을 다해 참여한 적 있더냐
언제 스스로 피맺히게 외쳐 본 적 있더냐
최선을 다한 참여가 힘을 만들고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그 바뀐 힘이 세상을 편하게 하리니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어둔 하늘 별 초롱한 꿈을 가슴에 품어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2016년 12월 29일 - 김근태 한반도재단 전 이사장을 기리며
어떤 길을 선택해 걷든 그 길은 선택한 사람이 결과까지 책임을 질 일이다. 하지만 어떤 길이나 다양한 변수와 장애물이 있다. 극복하는 이들이 있고, 굴복하는 이들이 있다. 더러 아예 쉬운 길만 골라 걷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장애물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런 삶의 장애물을 넘어서 바른 길을 끝까지 걷는 이들의 삶은 향기롭고, 먼 훗날 역사란 페이지에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 빛난다.
언제 최선을 다해 참여한 적 있더냐
언제 스스로 피맺히게 외쳐 본 적 있더냐
최선을 다한 참여가 힘을 만들고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그 바뀐 힘이 세상을 편하게 하리니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어둔 하늘 별 초롱한 꿈을 가슴에 품어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2016년 12월 29일 - 김근태 한반도재단 전 이사장을 기리며
어떤 길을 선택해 걷든 그 길은 선택한 사람이 결과까지 책임을 질 일이다. 하지만 어떤 길이나 다양한 변수와 장애물이 있다. 극복하는 이들이 있고, 굴복하는 이들이 있다. 더러 아예 쉬운 길만 골라 걷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장애물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런 삶의 장애물을 넘어서 바른 길을 끝까지 걷는 이들의 삶은 향기롭고, 먼 훗날 역사란 페이지에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 빛난다.
▲ 김근태 추모문화제 故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받은 행사 안내 팸플릿의 뒷면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는 말은 지금 대한민국에 촛불을 든 국민들의 모습 그대로다. 작은 외침이 모여 함성이 되고 역사는 그 함성에 의해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어 방향을 결정할 것이 분명하다. | |
ⓒ 정덕수 |
"12월 30일 새벽 5시 31분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께서 서울대병원에서 결국 이승의 끈을 놓으셨습니다.
향연 64세의 일기를 끝으로 이제 그 장엄했던 생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신 것입니다.
한반도재단 이사장이시기도 한 김근태 고문은 양지보다는 음지에 머물며 투쟁하던 1980년대 운동권 세대의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리영희 선생의 빈소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던 김근태 고문께서는 여전히 어눌한 말투와 간간이 떨리는 손을 내밀어 식사를 하던 제게 "어, 왔구나" 한 마디 인사와 함께 했습니다.
검정색 양복엔 콧물이 흘러 허옇게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수행을 하는 젊은 분이 서둘러 옷맵시를 고쳐주셨지만 그런 모습이 되레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저지른 악행의 후유증이셨습니다.
식사를 하다말고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섰던 저는 그런 김근태 이사장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게 다시는 뵐 수 없는 마지막 모습이란 걸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참언론인으로 불리시던 리영희 선생의 장례예식장이란 자리와, 20여 년간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며 수배와 옥살이를 하신 분과의 대면이기에 더 착잡한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9시에 쓴 글의 첫 부분이다.
그로부터 이제야 5년이 흘렀다. 묻는다.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을 기억하시나요?" 더러 <남영동 1985> 영화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들도 극히 일부에서 기억할 이름 김근태! 그에 대해 '민주주의자'란 또 다른 호칭은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이들에게 똑바로 기억되어야 할 이름 중 하나다.
벌써 5년이라니...
그런데 리영희 선생께서 영면에 드신 지도 어느새 6년이 넘었다.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오로지 그 길을 위해 걸으신 분들이 그동안 많이 이 세상을 등지셨다.
그 5년,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 속에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드는 세상이 됐다. 분명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추상같은 말씀을 세상에 던졌음에도 많은 사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선택한 박근혜로 인해 세상은 더 많은 분열과 고통을 겪으며 신음한다.
▲ 민중가수들 손병휘를 비롯한 많은 민중가수들이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진행한 <민주주의의 대합창 “Occup 2017!”>에서 첫 번째 부른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였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 정말 좋겠네”가 울려 퍼지며 시작된 추모 콘서트는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 |
ⓒ 정덕수 |
▲ 민중가수 마지막 곡이 끝나고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시대의 민중가수들을 손병휘 가수가 일일이 소개한 뒤 다 함께 부른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를 합창했다. | |
ⓒ 정덕수 |
지난 28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가 열려 광장에서 함께 노숙하는 민중가수 손병휘님의 초청으로 다녀왔다. 그곳엔 여전히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피맺힌 함성과 절규가 흐르고 있었다.
▲ 김근태 리영희 선생의 추모식장에서 문상을 마치고 식사를 할 때 등을 누군가 쳤다.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어, 왔구나”란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 하시던 모습을 다시금 되살려 놓은 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 시작은 故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화면에 비쳐졌다. 상투적인 인사 한 마디 드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배웅했던 6년 전의 마지막 만남을 떠 올리며 눈물샘부터 터졌다. | |
ⓒ 정덕수 |
첫 시작에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시작부터 울컥 눈물샘이 터졌다. "어, 왔구나" 한 마디 막연하게 남길 수밖에 없었던 민주주의자 김근태, 그에게 "건강은요?"란 상투적인 인사도, "건강 좋아보이십니다"라는 다소 과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던 나. 그런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이상한 현상을 봤다. 남몰래 눈물을 감췄다.
그런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을 기려 제정한 상을 이번에 처음으로 시상한다. 이 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활동을 전개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명칭은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은 (사)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가 받았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에 남기신 말씀이다. 추도 미사와 추도식이나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29일)은 다녀오지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이 김근태란 이름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 2011년 12월 30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모시고 빈소로 향하자, 한명숙 전 총리와 노회찬 당시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고인을 넋을 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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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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