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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new처음으로 시신을 목격한 이후 한 동안은 트라우마로 남아 힘든 시간도 보냈다. 술을 마시면서 해소해 보려고 노력도 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 이종인 화재조사관 대한민국 최고의 화재조사관 부천소방서 이종인 소방관(소방위. 49) | |
ⓒ 이건 |
다 타버린 건물 속에서 외롭게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화재조사관들이다.
화재조사관은 화재 원인을 결정하고, 사람의 잘못을 규명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법정에서 진술도 한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결과가 판이해지기 때문에 그들의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불에 타 뒤섞여 버린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을 집요하게 파헤쳐야 하는 이 직업은 그야말로 다양한 직업이 하나로 어우러진 전문가 중에 전문가다.
때로는 탐정과 같은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하고, 사실에 근거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차례 실험을 반복해야 하는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이 수반돼야 하는 이 직업은 결코 게으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산적해 있는 업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밀려드는 자문요청, 강의, 언론 인터뷰 등으로 분주한 이종인 소방관을 지난 12월 6일 어렵게 만났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화재조사관으로서의 직업관, 보람과 고충, 그리고 전문가 정신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구조대와 구급대가 '소방의 꽃', 화재조사 분야는 한때 한직으로 취급
- 먼저 지난 해 소방안전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한다. 특별승진도 했다고 들었다.
"주위 동료들의 격려와 도움이 제일 컸다. 개인적으로 실적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료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감사하다." (웃음)
- 맨 처음 소방관이 된 것은 언제인가?
"1997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됐다. 임용된 이후 화재진압 대원과 화재조사관으로 현장에서만 19년 10개월을 근무했다."
- 화재조사관이 된 계기가 있다면?
"2000년도에 직장 선배의 권유로 화재조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당시는 구조대와 구급대가 '소방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던 때다. 화재조사 분야는 한직으로 분류돼 소방관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개인적으로 공학도 출신인 데다가 화재원인을 발굴했을 때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개척해 보자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4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4년 3월 정식으로 화재조사 업무를 시작했다."
- 화재현장 특성상 화재조사관도 화재진압대원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안전과 건강에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에서 어떤 애로사항이 있으며, 화재조사관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는 인력보강이다. 아무래도 혼자 현장을 조사하다보면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개연성이 크다. 또한 화재로 피해를 입은 민원인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2명이 한 조가 돼서 화재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화재조사 보고기한도 충분한 조사와 검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주어지면 좋겠다.
두 번째는 화재현장 조사에 적합한 기능성 장비개발과 지급이 필요하다고 본다. 화재조사관은 화재현장에 대한 사진촬영과 발굴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화재진압 대원들과는 달리 공기호흡기 착용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방독마스크나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는데, 문제는 이 제품들이 모든 유해물질들을 효과적으로 걸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중앙소방학교와 공동으로 화재현장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와 방독.방진마스크 필터의 적응성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특정제품의 필터 외에는 걸러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방진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화재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유해물질에 화재조사관이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폐 기능 저하, 진폐증 등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재현장 조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안전장비가 개발·보급됐으면 좋겠다."
피해를 입은 민원인의 발화부 변경 요청, 거절했더니 2개월 동안 괴롭혀
- 불에 탄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정신적 충격이 대단했을 텐데……
"맨 처음 소사체, 즉 불에 탄 시신을 봤을 때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망자는 성인이었는데 팔목과 무릎 이하가 이미 불에 소실된 상태라서 전체적인 신체 사이즈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시신을 목격한 이후 한 동안은 트라우마로 남아 힘든 시간도 보냈다. 술을 마시면서 해소해 보려고 노력도 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지금은 힘든 일이 생기면 전문가와의 상담, 등산, 드라이브 여행, 명상 등 건강한 여가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
-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정도로 좌절했던 경우는 없었나?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으로 기억한다. 화재로 피해를 입은 한 민원인이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화재가 발생한 지점(발화부)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조사한 사건도 아닐 뿐만 아니라, 발화부를 임의로 바꾸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때부터 그 사람이 나를 2개월 동안이나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시청,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란 곳에는 모두 다 악성민원을 제기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화재조사도 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조사까지 받다보니 그때는 솔직히 다른 부서로 보직을 변경할까 고민도 했다."
- 4억이나 되는 배상책임을 진 한 노인의 누명을 벗겨준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2년 동안이나 조사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 사건은 화재 발화부가 바뀌면서 피해자가 갑자기 가해자로 바뀐 사건이었다. 그 당시 피해액이 대략 17억 5천만 원 정도로 기억난다. 한 건물에 3명의 세입자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상황이었는데 맨 처음 화재는 식당에서 발생했다.
식당 주인이 피해를 본 노인(당시 20평 정도의 벌꿀 창고 운영)에게 변상을 해 주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화재가 노인의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손해배상까지 해야 할 위기에 몰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화재조사관이 찍은 자료사진과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초 화재는 식당에서 발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물건들이 불에 녹는 온도가 다른데 이 원리를 이용해 불이 지나간 길을 확인했고, 유리창 파편이 떨어진 장소도 조사하는데 참고했다.
그 후 조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됐으며, 본인 또한 증인으로 출석해 화재가 시작된 장소를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와 자료들을 제시했고 마침내 승소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시던 그 노부부를 생각하면 이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 화재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화재조사권을 가진 소방이 간혹 현장에서 불협화음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화재현장에서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해 잡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화재조사든, 화재수사든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화재조사와 수사 시스템을 구축하는지가 관건이 되어야지 국민을 놓고 기관끼리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화재원인을 찾았을 때의 희열감, "말로 표현할 수 없어"
- 올 해로 13년차 화재조사관이다. 그동안 화재조사와 관련된 책도 집필했고, 후배 소방관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재조사관이라는 신망도 두텁다. 책임감도 느낄 텐데 소감이 어떤가?
"2012년에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화재조사 첫걸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화재조사가 굉장히 방대한 영역이어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려고 매 순간 노력한다. 지금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분야의 교수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일에 대해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 전국 소방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어떤 내용들을 강의하는가?
"몇 가지 과목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발화기기별 화재>, <제조물 책임법>, <특별사법경찰관 양성반>, <과태료 및 소송관련 업무>, 그리고 <화재원인별 감식요령> 등이다."
- 화재조사관으로서 추구하는 가치나 직업관이 있다면?
"한 마디로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것이다. 개인 생각을 가지고만 조사업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인맥이나 지연 등에 흔들리지 않고 화재조사의 기본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화재조사관이라는 직업은 어떤 매력이 있는가?
"화재원인을 찾았을 때의 희열감이 무엇보다도 크다. 화재현장 감식, 화재의 패턴, 관계자 진술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검토해 화재의 원인이 명확해졌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다른 하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분야가 있다는 것이 즐겁다."
- 화재조사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요건은 어떻게 되나?
"먼저 12주 과정의 <화재조사관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화재조사관 시험에 합격한 뒤 보직을 받으면 화재조사관으로 근무할 수 있다."
- 화재조사관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접근하면 안 된다. 겉멋만 부리다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화재조사관이 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탐구성이 강해야 하고 화재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 이종인 화재조사관의 향후 계획이나 꿈을 들어보자.
"우선은 지금의 내 일에 충실하는 것이다. 퇴직 이후에도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퇴직한 화재조사관들이 모임이나 학회를 통해서 후배 조사관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그들의 멘토가 된다. 나 역시 그런 교류 역할을 하고 싶고 항상 중심을 지킬 수 있는 화재조사관으로 남고 싶다."
- 오늘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기대한다.
이종인 소방관은 19년차 소방관으로서 현재 전국 소방학교에서 화재조사와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화재조사 첫걸음>과 <화재감식평가기사-공저>가 있으며, 대법원 심리전문위원(화재조사 분야)과 주요 방송국 화재조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이 수반돼야 하는 이 직업은 결코 게으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산적해 있는 업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밀려드는 자문요청, 강의, 언론 인터뷰 등으로 분주한 이종인 소방관을 지난 12월 6일 어렵게 만났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화재조사관으로서의 직업관, 보람과 고충, 그리고 전문가 정신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구조대와 구급대가 '소방의 꽃', 화재조사 분야는 한때 한직으로 취급
- 먼저 지난 해 소방안전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한다. 특별승진도 했다고 들었다.
"주위 동료들의 격려와 도움이 제일 컸다. 개인적으로 실적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료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와서 감사하다." (웃음)
- 맨 처음 소방관이 된 것은 언제인가?
"1997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됐다. 임용된 이후 화재진압 대원과 화재조사관으로 현장에서만 19년 10개월을 근무했다."
- 화재조사관이 된 계기가 있다면?
"2000년도에 직장 선배의 권유로 화재조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당시는 구조대와 구급대가 '소방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던 때다. 화재조사 분야는 한직으로 분류돼 소방관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개인적으로 공학도 출신인 데다가 화재원인을 발굴했을 때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개척해 보자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4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4년 3월 정식으로 화재조사 업무를 시작했다."
▲ 이종인 화재조사관 이종인 화재조사관이 화재현장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 |
ⓒ 이건 |
- 화재현장 특성상 화재조사관도 화재진압대원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안전과 건강에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에서 어떤 애로사항이 있으며, 화재조사관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는 인력보강이다. 아무래도 혼자 현장을 조사하다보면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개연성이 크다. 또한 화재로 피해를 입은 민원인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2명이 한 조가 돼서 화재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화재조사 보고기한도 충분한 조사와 검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주어지면 좋겠다.
두 번째는 화재현장 조사에 적합한 기능성 장비개발과 지급이 필요하다고 본다. 화재조사관은 화재현장에 대한 사진촬영과 발굴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화재진압 대원들과는 달리 공기호흡기 착용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방독마스크나 방진마스크를 착용하는데, 문제는 이 제품들이 모든 유해물질들을 효과적으로 걸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중앙소방학교와 공동으로 화재현장에서 배출되는 유해가스와 방독.방진마스크 필터의 적응성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특정제품의 필터 외에는 걸러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방진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화재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유해물질에 화재조사관이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폐 기능 저하, 진폐증 등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재현장 조사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안전장비가 개발·보급됐으면 좋겠다."
피해를 입은 민원인의 발화부 변경 요청, 거절했더니 2개월 동안 괴롭혀
- 불에 탄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정신적 충격이 대단했을 텐데……
"맨 처음 소사체, 즉 불에 탄 시신을 봤을 때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망자는 성인이었는데 팔목과 무릎 이하가 이미 불에 소실된 상태라서 전체적인 신체 사이즈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매우 작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시신을 목격한 이후 한 동안은 트라우마로 남아 힘든 시간도 보냈다. 술을 마시면서 해소해 보려고 노력도 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지금은 힘든 일이 생기면 전문가와의 상담, 등산, 드라이브 여행, 명상 등 건강한 여가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
-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정도로 좌절했던 경우는 없었나?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으로 기억한다. 화재로 피해를 입은 한 민원인이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화재가 발생한 지점(발화부)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조사한 사건도 아닐 뿐만 아니라, 발화부를 임의로 바꾸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때부터 그 사람이 나를 2개월 동안이나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시청,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란 곳에는 모두 다 악성민원을 제기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화재조사도 하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조사까지 받다보니 그때는 솔직히 다른 부서로 보직을 변경할까 고민도 했다."
- 4억이나 되는 배상책임을 진 한 노인의 누명을 벗겨준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려 2년 동안이나 조사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 사건은 화재 발화부가 바뀌면서 피해자가 갑자기 가해자로 바뀐 사건이었다. 그 당시 피해액이 대략 17억 5천만 원 정도로 기억난다. 한 건물에 3명의 세입자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상황이었는데 맨 처음 화재는 식당에서 발생했다.
식당 주인이 피해를 본 노인(당시 20평 정도의 벌꿀 창고 운영)에게 변상을 해 주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화재가 노인의 창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손해배상까지 해야 할 위기에 몰렸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화재조사관이 찍은 자료사진과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초 화재는 식당에서 발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물건들이 불에 녹는 온도가 다른데 이 원리를 이용해 불이 지나간 길을 확인했고, 유리창 파편이 떨어진 장소도 조사하는데 참고했다.
그 후 조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됐으며, 본인 또한 증인으로 출석해 화재가 시작된 장소를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와 자료들을 제시했고 마침내 승소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시던 그 노부부를 생각하면 이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 화재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화재조사권을 가진 소방이 간혹 현장에서 불협화음을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화재현장에서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해 잡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화재조사든, 화재수사든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화재조사와 수사 시스템을 구축하는지가 관건이 되어야지 국민을 놓고 기관끼리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이종인 화재조사관 이종인 화재조사관이 화재조사를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
ⓒ 이건 |
화재원인을 찾았을 때의 희열감, "말로 표현할 수 없어"
- 올 해로 13년차 화재조사관이다. 그동안 화재조사와 관련된 책도 집필했고, 후배 소방관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재조사관이라는 신망도 두텁다. 책임감도 느낄 텐데 소감이 어떤가?
"2012년에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 <화재조사 첫걸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화재조사가 굉장히 방대한 영역이어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려고 매 순간 노력한다. 지금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분야의 교수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일에 대해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 전국 소방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어떤 내용들을 강의하는가?
"몇 가지 과목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발화기기별 화재>, <제조물 책임법>, <특별사법경찰관 양성반>, <과태료 및 소송관련 업무>, 그리고 <화재원인별 감식요령> 등이다."
- 화재조사관으로서 추구하는 가치나 직업관이 있다면?
"한 마디로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것이다. 개인 생각을 가지고만 조사업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인맥이나 지연 등에 흔들리지 않고 화재조사의 기본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화재조사관이라는 직업은 어떤 매력이 있는가?
"화재원인을 찾았을 때의 희열감이 무엇보다도 크다. 화재현장 감식, 화재의 패턴, 관계자 진술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검토해 화재의 원인이 명확해졌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다른 하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분야가 있다는 것이 즐겁다."
- 화재조사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요건은 어떻게 되나?
"먼저 12주 과정의 <화재조사관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화재조사관 시험에 합격한 뒤 보직을 받으면 화재조사관으로 근무할 수 있다."
- 화재조사관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접근하면 안 된다. 겉멋만 부리다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화재조사관이 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탐구성이 강해야 하고 화재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 이종인 화재조사관의 향후 계획이나 꿈을 들어보자.
"우선은 지금의 내 일에 충실하는 것이다. 퇴직 이후에도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퇴직한 화재조사관들이 모임이나 학회를 통해서 후배 조사관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그들의 멘토가 된다. 나 역시 그런 교류 역할을 하고 싶고 항상 중심을 지킬 수 있는 화재조사관으로 남고 싶다."
- 오늘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기대한다.
이종인 소방관은 19년차 소방관으로서 현재 전국 소방학교에서 화재조사와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화재조사 첫걸음>과 <화재감식평가기사-공저>가 있으며, 대법원 심리전문위원(화재조사 분야)과 주요 방송국 화재조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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