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는 왜 넓적한가, 다윈 골탕 먹인 진화의 비밀
태어난 직후에는 다른 물고기처럼 좌우 대칭, 18일째부터 ‘변신’ 시작
다윈 애먹인 진화론의 맹점…게놈 분석으로 레티노산이 방아쇠 구실 밝혀
» 넙치는 알에서 깬 직후 얼굴 한쪽으로 두 눈이 모이고 다른쪽은 색소마저 사라지는 변신을 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변신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open cage
넙치(광어)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괴상한 체형을 지녔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좌우 대칭인 데 비해 넙치는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몰려 있다. 그에 따라 입이 비뚤었고 헤엄칠 때도 다른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드는데 견줘 상하로 움직인다.
놀랍게도 알에서 깨어난 지 몇 주일 동안 어린 넙치는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좌우 대칭의 체형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돌연 얼굴의 골격이 변하면서 한쪽 눈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대변신이 이뤄진다. 다 자란 넙치는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모여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쪽 얼굴과 몸의 색소마저 사라진다.
» 알에서 깬 넙치의 변신 과정. 오른쪽 막대의 숫자는 부화 뒤 경과한 날짜이다. <네이처 지네틱스> 2016
부화 10일 뒤에도 다른 어종의 새끼 물고기처럼 얼굴 양쪽에 위치한 눈으로 몸을 세우고 헤엄치던 넙치는 18일째부터 몸 양쪽에 색소가 늘어나면서 변신을 준비한다. 이어 3주일째부터 몸의 오른쪽 색소가 짙어지면서 눈의 이동이 시작된다. 25일째 변신은 절정에 이르고 29일이 되면 전형적인 넙치의 모습이 된다.
넙치는 진화생물학자에게는 악몽 같은 물고기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넙치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실제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거부하는 창조론자에게 넙치의 사례는 진화론을 공격하는 만만한 주제였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에 대한 비판에 답변하는 내용을 담은 '이론의 어려움'이란 장을 두었다. 그는 여기서 넙치 문제를 다뤘다. 어린 넙치가 넓적해지는 몸 때문에 바닥을 향하게 된 눈을 반대쪽으로 옮기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눈이 얼굴 반대편으로 옮겨갔다고 다윈은 보았다. 이 내용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 높은 곳의 잎을 따먹으려 노력하다가 기린의 목이 길어졌듯이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생물이 점진적으로 변화해 새로운 종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넙치는 어떤가.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몰린 넙치의 체형은 바다 밑바닥에 숨어 위쪽 먹이를 사냥하기에 적합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좌우 대칭에서 비대칭으로 변화하는 중간 단계, 곧 눈 하나가 어정쩡한 위치에 달린 넙치는 자연 선택은커녕 살아남기도 힘들지 않겠는가.
» 약 5000만년 전 넙치 조상의 화석. 왼쪽 눈이 미처 중앙을 넘어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전의 중간 단계를 나타내는 화석이다. 매트 프리드만
창조론자의 이런 공격에 쐐기를 박은 건 200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매트 프리드먼 영국 옥스퍼드대 고생물학자의 연구결과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눈이 일반 물고기와 넙치의 중간 위치에 달린 물고기 화석을 발견해, 넙치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님을 보였다.
넙치의 치어는 눈이 돌아가고 몸의 색소가 변하는 것은 물론 헤엄치는 동작이 바뀌는 변신을 한다. 이런 변화를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한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 눈이 얼굴 한쪽으로 몰리기 전 단계의 넙치 치어. NOAA
중국, 독일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네틱스> 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넙치의 게놈을 해독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넙치 치어가 변신하는 과정에 활성화하는 유전자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변신의 방아쇠를 당기는 구실을 하는 물질이 레티노산임을 밝혀냈다.
연구자의 하나인 만프레드 샤르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생화학자는 “레티노산이 피부 색소의 변화를 일으키며, 갑상선 호르몬과 작용해 눈이 얼굴 한쪽으로 이동하도록 만든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 넙치의 변태 과정. 맨위는 변태 직전의 치어, 가운데는 눈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중간 단계, 아래는 변화 뒤의 성체. Songlin Chen
흥미롭게 빛이 이런 변신에 핵심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눈 속에서 빛을 잡아내는 똑같은 색소가 넙치 치어의 피부에도 발현되는 것을 알아냈다. 샤르틀은 “색소를 통해 밝기의 차이를 감지하면 그에 따라 리티노산의 농도를 조절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넙치 치어가 갑상선 호르몬과 레티노산의 협동 작용으로 변신하는 것은 곤충의 변태 과정을 연상시킨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angwei Shao et al, The genome and transcriptome of Japanese flounder provide insights into flatfish asymmetry, Nature Genetics, doi:10.1038/ng.373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다윈 애먹인 진화론의 맹점…게놈 분석으로 레티노산이 방아쇠 구실 밝혀
» 넙치는 알에서 깬 직후 얼굴 한쪽으로 두 눈이 모이고 다른쪽은 색소마저 사라지는 변신을 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변신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open cage
넙치(광어)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괴상한 체형을 지녔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좌우 대칭인 데 비해 넙치는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몰려 있다. 그에 따라 입이 비뚤었고 헤엄칠 때도 다른 물고기가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드는데 견줘 상하로 움직인다.
놀랍게도 알에서 깨어난 지 몇 주일 동안 어린 넙치는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좌우 대칭의 체형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돌연 얼굴의 골격이 변하면서 한쪽 눈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대변신이 이뤄진다. 다 자란 넙치는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모여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쪽 얼굴과 몸의 색소마저 사라진다.
» 알에서 깬 넙치의 변신 과정. 오른쪽 막대의 숫자는 부화 뒤 경과한 날짜이다. <네이처 지네틱스> 2016
부화 10일 뒤에도 다른 어종의 새끼 물고기처럼 얼굴 양쪽에 위치한 눈으로 몸을 세우고 헤엄치던 넙치는 18일째부터 몸 양쪽에 색소가 늘어나면서 변신을 준비한다. 이어 3주일째부터 몸의 오른쪽 색소가 짙어지면서 눈의 이동이 시작된다. 25일째 변신은 절정에 이르고 29일이 되면 전형적인 넙치의 모습이 된다.
넙치는 진화생물학자에게는 악몽 같은 물고기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넙치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실제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거부하는 창조론자에게 넙치의 사례는 진화론을 공격하는 만만한 주제였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에 대한 비판에 답변하는 내용을 담은 '이론의 어려움'이란 장을 두었다. 그는 여기서 넙치 문제를 다뤘다. 어린 넙치가 넓적해지는 몸 때문에 바닥을 향하게 된 눈을 반대쪽으로 옮기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눈이 얼굴 반대편으로 옮겨갔다고 다윈은 보았다. 이 내용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 높은 곳의 잎을 따먹으려 노력하다가 기린의 목이 길어졌듯이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생물이 점진적으로 변화해 새로운 종으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넙치는 어떤가. 얼굴 한쪽에 두 눈이 몰린 넙치의 체형은 바다 밑바닥에 숨어 위쪽 먹이를 사냥하기에 적합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좌우 대칭에서 비대칭으로 변화하는 중간 단계, 곧 눈 하나가 어정쩡한 위치에 달린 넙치는 자연 선택은커녕 살아남기도 힘들지 않겠는가.
» 약 5000만년 전 넙치 조상의 화석. 왼쪽 눈이 미처 중앙을 넘어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전의 중간 단계를 나타내는 화석이다. 매트 프리드만
창조론자의 이런 공격에 쐐기를 박은 건 200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매트 프리드먼 영국 옥스퍼드대 고생물학자의 연구결과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눈이 일반 물고기와 넙치의 중간 위치에 달린 물고기 화석을 발견해, 넙치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님을 보였다.
넙치의 치어는 눈이 돌아가고 몸의 색소가 변하는 것은 물론 헤엄치는 동작이 바뀌는 변신을 한다. 이런 변화를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한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 눈이 얼굴 한쪽으로 몰리기 전 단계의 넙치 치어. NOAA
중국, 독일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네틱스> 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넙치의 게놈을 해독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넙치 치어가 변신하는 과정에 활성화하는 유전자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변신의 방아쇠를 당기는 구실을 하는 물질이 레티노산임을 밝혀냈다.
연구자의 하나인 만프레드 샤르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생화학자는 “레티노산이 피부 색소의 변화를 일으키며, 갑상선 호르몬과 작용해 눈이 얼굴 한쪽으로 이동하도록 만든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 넙치의 변태 과정. 맨위는 변태 직전의 치어, 가운데는 눈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중간 단계, 아래는 변화 뒤의 성체. Songlin Chen
흥미롭게 빛이 이런 변신에 핵심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눈 속에서 빛을 잡아내는 똑같은 색소가 넙치 치어의 피부에도 발현되는 것을 알아냈다. 샤르틀은 “색소를 통해 밝기의 차이를 감지하면 그에 따라 리티노산의 농도를 조절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넙치 치어가 갑상선 호르몬과 레티노산의 협동 작용으로 변신하는 것은 곤충의 변태 과정을 연상시킨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angwei Shao et al, The genome and transcriptome of Japanese flounder provide insights into flatfish asymmetry, Nature Genetics, doi:10.1038/ng.373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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