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산재사업장의 대통령 방문과 한솔제지 산재사망
-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김종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17일 근로자가 사망한 한솔제지 신탄진공장 사고현장을 방문해 살펴보
고 있다. 2025.07.17. (사진=고용노동부찌는 무더위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에어컨 하나 제대로 없이 일하는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해당한다. 지난 7월 9일 경북 구미에서 이주노동자만 단축근무를 시키지 않아 베트남이주노동자가 첫 출근날 앉은 채로 사망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산재사망은 특정 직종의 문제이거나 기후 위기의 문제가 원인이 아니다. 경영주의 안전 의무 준수와 정부의 노동정책에 영향을 받는다.
일주일 전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가 일하다 교반기(파지를 물과 함께 넣어 불리면서 으깨는 기계)에 빨려 들어가 숨졌다. 그러나 회사는 숨진 사실조차 몰랐다. 8시간이 지나서야,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고서야, 그제서야 산재 사망사고를 알게 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CCTV에는 오후 3시40분께 자기 가슴 높이 정도 크기의 구겨진 파지를 들어 옮기다가 30㎝ 투입구에 노동자가 빠지는 모습이 잡혔다. 옆의 동료는 등지고 있어 못봤다지만, 아무도 신입노동자가 보이지 않았는데도 찾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회사가 얼마나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소홀히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교반기에는 사고를 막는 안전장치가 없었다.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87조 9항 3호)은 교반기의 개구부에 사람의 신체가 들어가면 자동으로 기계가 멈추는 장치를 설치하고, 기계 입구에는 추락방지를 위해 안전난간·울타리·수직형 추락방지망·덮개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신탄진공장에는 그러한 장치가 없었다. 안전장치만 설치되어 있었어도 살 수 있는 목숨이었다. 이른바 ‘후진국형 재해’(추락, 끼임 사고)다.
한솔제지는 범삼성가인 한솔그룹에 속하는데 지난해 총 2조 120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계속 성장세에 있는 업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인 사업체다. 이렇게 큰 기업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시켜서 노동자를 죽게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참담하게 만든다. 돈이 없어서 안전장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했기에 안전장치를 구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솔제지 신탄진공장에서는 2022년 7월에도 하청 노동자가 활성탄 더미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2019년 4월에는 충남 서천의 한솔제지 장항에서도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반복된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저 기업에만 있는가!대통령의 산재사업장 SPC 방문과 산재의 구조적 뿌리
우리는 비슷한 기업을 안다. 파리바게뜨, 삼립빵, 샤니 등 한국의 제빵, 요식업계를 아우르고 있는 SPC그룹이다. 여러 노동자들이 빵을 만들다 죽었고, 그래서 SPC 허영인회장은 2023년 국회 청문회에까지 나와야 했다. 그러나 일터가 바뀌지 않으니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고 올해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피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며 불매운동을 했었다.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SPC그룹 허영인 회장 등 임원진에게 사고 경위와 근로 환경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2025.07.25. ⓒ뉴시스
그래서일까. 이재명 대통령이 며칠 전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에서 참여했다. 3년간 일어난 산재사망사고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김범수 SPC삼립 대표에게 “왜 12시간씩 일을 시키냐”,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풀로 12시간씩 일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틀 후인 7월 27일 SPC는 긴급 대표이사 협의체를 개최하고 8시간 초과 야근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한 생산시스템 전면 개편안을 발표했다.
산재 사업장 SPC방문과 이후 기업의 노동정책 변화를 보면서,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대통령이 일일이 산재사업장을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여러 정책을 이미 제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솔제지를 쓰지 않겠다고, 피묻은 종이는 쓰지 않겠다고 불매운동을 하면, 여론 때문에 대통령이 한솔제지에 가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그 많은 죽음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그 정책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가 일하다 매해 2천 명이 넘게 죽는 게 아닌가.
특히 기업주들의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으나 실효성이 없다. 검찰은 제대로 기소도 안 하고 사법부는 늦장 재판을 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원청경영주는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올해 초 매일노동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율은 46%(866건 중 160건만 기소의견)며, 재판으로 경영책임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약 14.3%(5건)에 불과하다. 지난 3년간 전체 수사대상(866건)으로 넓히면 0.5%의 경영책임자만 처벌을 받았다. 법은 있으나 법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오늘 국무회의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과 근로감독관 확충, 안전비용보다 노동자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업주의 경영정책의 문제 등이 짚어졌다고 한다. 확실히 이전 정부보다 나아진 태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법제도를 개정해야 하며, 검찰의 기소 해태를 강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SPC만이 아니라 한솔제지처럼 산재가 반복된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과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나아가 죽음의 외주화, 죽음의 이주화를 낳는 다단계 하도급 등 고용형태의 불평등, 비정규직 노동자문제와 이주노동제도도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사례 몇가지가 아니라 근본적 대책과 집행이 필요한 때다. 제공) ⓒ뉴
시스 “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응원하기 - 발행 2025-07-29 19: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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