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연말을 앞두고 크고 작은 모임이 잇따르면서 술자리가 많아지는 때다. ‘술배와 밥배는 따로 있다’고 말할 만큼 우리 민족은 예부터 술을 즐겼다. 이제 ‘국민주’로 불릴 만한 ‘소주’도 그중 하나다. 우리 역사에서 소주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사>로 알려져 있다. 이후의 많은 문헌에도 소주가 등장하는데, 표기는 하나같이 ‘燒酒’다.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도 “곡주 따위를 끓여서 얻는 증류식 술”로 ‘燒酒’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현재 시중의 상점이나 음식점 등에서 파는 ‘희석식 소주’는 한자를 ‘燒酎’로 적는다. 요즘 술병에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지만 이전 술병의 상표에는 ‘燒酎’로 적혀 있었다. 아울러 속칭 ‘문화재’급으로 불리는 증류주들 중에는 술병에 ‘燒酎’를 큼직하게 써 놓거나 소개글에 ‘燒酎’로 적어 놓은 것이 적지 않다.
이처럼 소주의 한자를 燒酒가 아니라 燒酎로 적는 데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일본의 잔재라고 꼬집는다. 우리 옛 문헌에 없던 ‘燒酎’가 1909년에 일본인의 주도로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일본에서는 예부터 증류주를 가리킬 때 燒酎를 써왔다. 酎는 ‘전국술 주’자로, 전국술이란 “군물(쓸데없는 물)을 타지 아니한 진국의 술”이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술 빚는 비법을 재현했다고 자랑하면서 우리 문헌에 나오는 燒酒 대신 일본식 한자어 燒酎를 쓰는 것은 영 마뜩지 앓다. 술맛 뚝 떨어지게 하는 일이다.
한편 많은 사람이 즐기는 소주이지만, 그만큼 많이 틀리는 말이 있다. “안주 없이 먹는 소주”를 일컬을 때 쓰는 ‘깡소주’다. ‘깡’은 “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거나 안주를 마련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소주만 마시는 것과 ‘악착같이 버티는 오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 깡소주는 ‘강소주’가 바른말이다. 이때의 ‘강’은 “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그것만으로 이루어진’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따라서 “김치 쪼가리에 깡술만 마셨다”라고 할 때의 ‘깡술’도 ‘강술’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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