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마를 보다가 ‘고명딸’에 대한 뜻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드라마의 전개상 매우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행여나 이 고운말이 잘못 전해질까 염려되어 다시 소개하려고 한다. ‘고명딸’은 아들 많은 집의 외(동)딸을 말한다.
창제: 아버님이 당신을 아끼시잖아.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이라고. 내가 성에 안 차시는 거지.
화영: 고명딸이 뭐? 칭찬이야? 벼슬이야? 당신 고명이 뭔지 몰라?
창제: 아, 왜 몰라? 알지. 떡국이나 갈비찜 같은 데 올라가는 예쁜 계란 지단 그런 거.
화영: 그럼 그게 무슨 뜻이겠어? ‘아버지한테 메인디시(Main Dish)는 오빠들이다. 너는 딸이니까 그냥 구색 맞추기 장식용으로 만족해라’ 지금 경고하신 거잖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4화 中- |
고명(웃고명)이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버섯, 실고추, 지단, 대추, 밤, 호두, 은행, 잣가루, 깨소금, 미나리, 당근, 파 따위를 쓴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이 고명에 딸을 합성한 것이니 딸을 업신여겨 중요하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 갖가지 고명을 얹은 떡국. © 구글 이미지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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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의 자식을 부를 때, 특히 윗사람의 딸을 부를 때 ‘높임’을 뜻하는 접미사 ‘-님’을 붙인다. ‘아드님, 따님’이 그것이다. 이처럼 윗사람의 ‘고명딸’을 부를 때 ‘고명따님’이라고 한다. 만일 ‘고명딸’이 부정적인 의미라면 윗사람의 딸을 그리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고명딸’을 생각하면 ‘귀한 딸’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고명딸’은 ‘고명딸아기’라 하여 귀엽게 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고명딸’은 음식을 더욱 빛나게 해 주고 맛도 더하여 주는 ‘고명’처럼, 딸아이 하나로 집안이 밝아지고 부모에게 기쁨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남독녀(無男獨女)인 외동딸이 더 귀하겠지만, 아들이 많은 집에서 딸만 하나라면 얼마나 귀하고 예쁘겠는가? 사실 이것은 머릿속에 학습된 추측일 뿐이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자란 나는 ‘고명딸’을 들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들을 일이 없다. 요즘 사람들도 적게 낳으니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이라는 ‘고명딸’은 앞으로 사전적으로나 존재하지 않을까?
‘고명딸’처럼 내가 딸이었지만 들어본 바가 없는 호칭이 또 있다. ‘고명따님’의 ‘따님’처럼 윗사람의 귀한 딸을 높여 부르는 말의 한자어들이다. 그 중 우리가 흔히 들어본 호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들을 부르는 말이다. 바로 영애(令愛)이다. 그래서 ‘큰 따님’은 ‘큰 영애’, ‘작은 따님’은 ‘작은 영애’라고 불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 큰 영애(박근혜 전 대통령) 구국여성봉사단 강원도 시군지부 결단대회 참석차 춘천역 도착
-춘천디지털기록관 (1977년 10월 18일)- |
▲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 영애로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 © 춘천디지털기록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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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표현으로 한자어 ‘우루머리 영(令)’에 ‘예쁘다’ 또는 ‘여자’의 의미를 가진 것은 모두 붙여서 윗사람의 딸을 높이는 말로 쓰였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영교(令嬌), 영녀(令女), 영랑(令娘), 영양(令孃), 영원(令媛) 등이 그것이다. 같은 말로 ‘규애(閨愛), 애옥(愛玉), 옥녀(玉女)’가 있다.
김나영 중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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