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인 합동분향소가 14일 서울 녹사평역 앞 광장에 차려졌다. 참사 47일 만이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청소년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피해자 중심의 참사 수습과 심리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일부 신문은 이들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대책회의는 14일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3번출구 앞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유족이 동의 뜻을 밝힌 희생자 70여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숨진 158명 중 76명의 영정사진과 이름이 분향소에 놓였고, 16명은 이름만 공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일 출범한 유가족 협의회는 창립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참사 피해자들끼리 소통할 통로와 희생자 추모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고, 이에 유가족협의회가 자체적으로 분향소 설치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참사 이튿날인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5일 밤 12시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는 30여곳의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며 유가족들의 의사 확인 없이 분향소를 차렸고,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라 밝혔다가 애도기간 마지막 날에야 ‘사고’를 ‘참사’로 바꿨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헌화를 마친 뒤 시민들이 추모했다. 한 유족은 “우리들이 아이들 찾아 헤맬 때 용산구청, 경찰서, 행안부, 대통령실, 저 아이들 158명 얼굴 눈동자 똑바로 보십시오.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극우단체 회원들이 유튜브 생중계를 하며 2차 가해를 가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분향 도중 보수단체 회원 등 일부 시민이 욕설을 퍼붓다 격분한 유족 측 관계자와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를 겪은 고등학생 A군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범죄 혐의점, 유서는 업었다. A군은 10월29일 참사 당일 친구 두 명을 잃었다. 서울시교육청은 A군이 교내 심리 상담과 병행해 매주 두 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이후 학교에 복귀했지만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국가적 비극을 정쟁화하고 온-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2차가해도 독약”이라며 “이태원 참사 역시 이태껏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 하나 없는 데다, ”나라 구하다 죽었느냐“며 희생자들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정치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A군은 특히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군 어머니는 이날 MBC와 인터뷰하며 ‘아들이 11월 중순 정도에 울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연예인 보러 갔다가 죽은 것 아니냐고 모욕하는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내더라’고 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사건을 다루며 “생존자 및 유족에 대한 심리치료와 상담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치료·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데, 국민의힘에서 쏟아지는 막말과 2차 가해가 오히려 상처만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수도권을 관할하는 국가트라우마센터의 경우 심리상담을 제안한 유족·부상자·목격자 620여명 가운데 12%가 상담을 거절했다. 한겨레는 “정신건강 ‘고위험군’인 생존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아무런 치료와 상담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락처가 없는 이들한테는 상담 권유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향신문도 “참사를 정쟁적 사안으로 대하는 여권의 태도, 거기에서 비롯된 일부 여권 인사들의 막말이 제대로 된 수습과 치유를 저해하고 유족과 생존자의 심리적 외상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 권성동·송언석 의원의 막말을 비판하며 “최근의 막말이 국민의힘 공식 입장인지”를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권성동 의원은 유족들이 협의회를 꾸리자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막말을 했다. 송언석 의원은 근거 없이 참사 희생자와 마약 관련성을 언급해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경향신문은 사설 ‘이태원 참사 10대 생존자의 죽음, ‘애도 없는 정치’의 책임’에서 “온전한 회복에는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고, 진정한 애도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 규명과 사과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며 “그러나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158명이 숨진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 후폭풍을 낳을 것을 우려한 정부·여당은 파장 축소에만 급급했다.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극구 꺼리던 정부는 참사 발생 한 달 만에 일방적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해체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러한 2차 가해가 노리는 것은 피해자를 침묵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며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치가 답할 차례다.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를 경질하고,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6일 참사 49재를 맞아 오후 6시부터 참사 현장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13개 지역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도 같은 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10·29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를 봉행한다.
윤 “문케어 폐기”에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 폐기를 공식화한 것을 놓고 신문들이 전날에 이어 사설을 냈다. ‘문재인 케어’는 환자가 100% 부담하던 3800여개 진료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이다. 일부 신문은 ‘건보 지출 증가’를 이유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출이 곧 환자 입장에선 보장성 강화이자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면서 폐기를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보장성 강화(보장률 상승)는 곧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낮아졌다는 걸 의미”한다며 “지금처럼 ‘지출 효율화’만 강조하다가는 가뜩이나 취약한 건보 보장성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적잖다”고 했다.
한겨레는 “2017년 62.7%였던 건보 보장률(총 진료비 대비 건보 부담 비율)이 2020년 65.3%로 높아졌다. 특히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과 아동·노인·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케어’의 목표는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것이었으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가) ‘지출 조정’만 내세울 뿐, 건보 재정 확충을 통해 보장성을 높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재정 위기를 거듭 강조하면서도 ‘건보 국고 지원’(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 의무 이행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게 단적인 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건보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0%)과 견줘 여전히 낮다. ‘재정 효율’을 이유로 보장성을 낮출 때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팩트체크’ 코너에서 윤 대통령의 건보 재정 파탄 발언을 검증했다. 한겨레는 재정 누수가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감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는 문케어로 인한 재정 누수 금액을 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건보 재정에서 한해 진료비로 지출하는 약 100조원의 0.2%에 불과하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문재인 케어가 건보 근간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근거로 ‘건보 지출 증가’를 들었다. 건보 지출 증가가 국민들에게는 곧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문케어 추진 이후 건보 지출 증가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올해 상반기에만 건보 가입자의 진료비 총액이 50조원을 넘었고 연말까지 100조원을 넘길 게 확실시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장성 확대로 불필요한 검사가 남용되고 의료쇼핑이 횡행한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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