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2-05-10 17:27수정 :2022-05-11 02:42
“다수 힘으로 상대 의견 억압
반지성주의로 민주주의 위기”
향후 마이웨이식 국정운영 우려
“번영과 풍요는 자유의 확대”
신자유주의적 성장 앞세워
윤석열 대통령의 10일 취임사는 자유의 확대를 중심축으로 성장 우선주의와 대북 상호주의가 부각된 강한 보수 색채였다. 특히 민주주의 위기 원인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해, 향후 국정운영에서 협치보다는 비타협적인 방식을 취하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반지성주의’를 언급했다.
그는 “(민주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며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당선자가 반지성주의 극복을 언급한 것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 펴낸 저서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저자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하려고 이 개념을 사용했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편견이나 진영논리 등이 반지성주의의 예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 체계를 개선하겠다며 외국인 혐오를 자극하고,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등 ‘진실 왜곡’으로 표심을 자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윤 대통령가 피아를 지성과 반지성으로 구분한 것은 협치나 타협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대통령은 확증 편향에 갇힌 채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반지성주의로 짚었는데 그게 자신의 모습”이라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것은 자기 편향적인 모습이 아닌가. 취임사가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0.73%포인트차로 당선됐음에도 향후 국정운영에서 설득보다는 마이웨이식 행보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실제 이날 취임사에서는 각계가 최우선 과제로 뽑은 국민 통합이나 화합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한 것과 견줘서도 대조적이다.
윤 대통령이 자유 확대를 표방한 신자유주의적 성장 우선주의를 내건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는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자유의 확대”라며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은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 지출이나 복지 확대가 아닌 보수 경제학이 내세우는 낙수 효과를 경제적 불평등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던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도 정부의 역할 축소를 주장하며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상호 협력이나 관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빠른 성장’으로 해결된다는 것은 다소 황당하다”며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고 해법 제시도 제대로 안 됐다”고 평가했다. 최창열 용인대 교수도 “불평등이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 기득권이 어떻게 양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아쉽다”며 “야당을 존중한다는 말도 빠져 있다”고 말했다. 취임사의 대부분이 구체적인 방법론없이 추상적인 표현으로 채워져 공허하다는 평도 나왔다. 이날 취임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간판 구호였던 공정은 3회 언급되는데 그쳤고, 상식이나 통합, 협치는 없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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