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상민·원희룡 검증보도에 기자 개인 고소·고발 이어져
“검증 대상인 정치인이 기자 개인 형사고소하는 문화 안돼” 우려
윤석열 내각에 인선된 후보자들이 한겨레 내각 검증팀 기자들을 상대로 잇달아 고소·고발에 나섰다. 인사 검증 보도를 상대로 한 이례적인 법적 대응에 언론시민사회에선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입장을 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4일 ‘자녀의 엄마찬스 스펙쌓기’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 A, B, C 기자를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자신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연루 논란을 다룬 한겨레 보도를 이유로 D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검증 보도와 관련해서도 우익단체가 한겨레 기자 3명을 고발했다. 자유청년연합 장기정 대표는 지난 29일 한겨레 E, F, G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발해 사건이 서초경찰서에 이관됐다. 한겨레는 원희룡 후보자의 제주도지사 시절 △업무추진비 명세서 허위작성 △정치후원금 보은 인사 △오등봉 개발 특혜 등 의혹을 단독 보도해왔다.
정부 내각 발표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뤄지는 언론의 의혹 및 검증 보도에 검증 대상인 후보 당사자들이 기자 개인을 형사고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정치인 검증 보도는 언론자유 측면에서, 특히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한 검증 국면에서 폭넓고 강력하게 보호돼야 한다. 정치인이자 검증의 대상인 인물이 직접 나서 언론인을 고소할 때 보도 위축으로 인한 피해는 공동체 전체가 입게 된다”며 “정치집단이 고소·고발을 남용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시민들의 고발까지 부추기는 효과가 나타난 것 같아 우려 된다”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의 기자 고소에 11일 성명을 내고 “장관 후보자가 자신을 향한 검증보도에 고소장부터 내미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태이다. 언론에 대한 형사소송은 후속보도를 위축시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연대는 “기사에 이미 후보자 측 반론이 포함되어 있고, 해당 언론사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은 상황에서 기어이 형사고소에 나선 것은 언론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한겨레는 한 후보자 딸의 “기업의 도움으로 우리가 노트북 50여 대를 기증할 수 있었다”는 언론 인터뷰를 근거로 부제에 ‘딸 명의 기부’라고 밝혔으나, 기업 명의의 기부라는 후보자 항의를 수용해 부제를 지운 바 있다.
언론연대는 이어 “한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고소 취하 의사를 묻는 질의에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며 ‘악의적으로, 명확하게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기사를 썼다)’고 단정해 말했다”며 “전체적인 사실관계와 보도 취지에 비춰보아도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법률가인 한 후보자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 자녀의 스펙 쌓기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다른 언론의 사설을 예로 들었다. 한국일보는 10일 사설을 내 “미국 대학 입시를 위해 부모와 가족까지 동원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9일 “자녀를 향한 검증을 불편해 하거나 반발하기보단 겸허한 자세로 충분히 설명”할 것을 요구했고 동아일보는 10일 “딸·재산 의혹 국민 눈높이에서 겸허하게 해명하라”고 밝혔다.
언론연대는 그러면서 “한 후보자의 언론 고소는 민주당 (언론중재법) 법안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며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법안에 대해 꾸준히 독소조항을 지적해왔다”고 했다. 언론연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보다 명확해졌다”며 “국회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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